오래 전 내가 섬기는 교회 성도들과의 여름수련회가 기억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약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서해바다의 한 섬 덕적도.
기간은 2011년 7월 28일(목)에서 30일(토)까지 2박 3일.
그 며칠 전부터 거의 폭포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강우량이 많았었고,
출발하는 목요일 아침 연안부두로 가는 내가 탄 차창은 거세게 내리치는 빗발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렵게 연안부두에 도착해서 승선하여 역시 검은 구름 아래 바다 위로 내리치는 비바람 속을 뚫고
세 시간 정도 항해하여 덕적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 다음 순간부터의 일정은 은혜와 추억의 현장이 되었다.
비도 내리지 않았고 태양도 나오지 않는 흐릿한 하늘은,
작열하는 태양 광선을 막아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펴놓으신 차일이었고,
귀환하는 날까지 이어진 그런 기후 조건은 우리에게 비와 더위와 불쾌함을 모두 피하게 해주었다.
오히려 공동체 모두는 아늑하고 포근한 행복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삼일 동안 우리가 다닌 곳은 능동자갈마당, 진리갯벌, 밧지름 해수욕장, 서포리해수욕장 등이었다.
"새파란 수평선 흰구름 흐르는 오늘도 즐거워라 조개잡이 하는 사람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유행했었던 박재란 씨의 외국 번역곡 '진주조개 잡이'다.
그때는 바다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처지라 막연히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장면이지만
결혼 후 인천에 와서는 수시로 다니면서 나 스스로가 여러번 갯벌까지 들어갔었다.
장봉도에서 그랬고, 덕적도, 신도 등 섬의 조개잡이는 항상 인상적이다.
덕적도에서는 교우들이 모두 세 번 갯벌로 들어갔는데 나는 그 중 야간에 밧지름 갯벌만을 동참했다.
조개잡이 하는 교우들 머리 위로 등불을 들어주는 역할.
그날 오전에는 또 다른 갯벌 밖에서 조개 채취하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기만 했던 것.
언제나 그렇듯 교우들과의 조개 채취 작업은 내게 두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첫째,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먼 실루엣이 나에겐 인생의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것.
태양 아래 드넓은 갯벌에서 일몰까지 허리를 굽혀 조개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게는 세상이라는 상황 속에서 목숨이 다하도록 각자의 인생을 실현하는 상징처럼 비친다는 말이다.
둘째,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동일한 조건 속에서 동일한 수고를 하는 일행을 보면서
공동체 의식이 더 절실해진다는 사실.
피도 섞이지 않았고 아무 인연도 없었던 자들이 섭리적 만남으로 그룹을 형성하여
공동의 신앙적 멍에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그들 모두는 이제 서로에게 머나먼 존재가 아니다.
같이 비를 맞으며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여정으로 같은 영역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비록 개인 단위로 돌아가 개인적 차원에서 각자는 각자의 결핍과 흠결을 가지고 있겠지만
태양 아래 적막하고 드넓은 갯벌에 그림자를 남기며 소리없이 동행하는 그들에겐 그런 것을 넘어선 가치가 있다.
이 소란하고 번잡스런 세계에서 기껏해야 개인적 욕심을 따라 움직이는 낱개가 아니라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한 주님 안에서 한 목적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허리를 숙이고 움직이는 존재들이라면
이 세상에서 더 고귀한 무엇을 바랄 수 있으랴.
주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과 내일, 그리고 살아있는 날까지 우리를 이런 조개잡이가 되게 해주시기를...
2025. 1. 21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은혜로운 조개잡이입니다.
저에게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