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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마철에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인사와 나의 대답은 이렇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날씨도 안 좋은데 어데를 갔다 오능교?”
“아 예, 잠시 구름 속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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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수국. 이끼계곡에 물안개가 내린 풍경이 몽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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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그렇다. 얼마 전 태풍 ‘너구리’가 제주 먼 바다로 다가오던 날도 행여나 멀리서라도 태풍의 눈이 보일까 하고 지리산 형제봉에 올랐다. 바람이 점차 거세지더니 먹구름이 비를 퍼부었다. 우비를 단단히 입고 배낭 속에 비닐로 싼 카메라를 챙긴 채 아무도 오르지 않는 산정에 올랐다.
산정의 구름 속에 갇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절대고독의 순간을 만나면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언젠가 내 곁에 잠시 앉았던 사람들, 울고 웃다가 지나간 사람들, 다시 올 사람들, 영영 오지 못할 사람들, 아직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 수많은 인연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 흰 손을 내민다. 차라리 두 눈을 감고 구름, 그 산안개의 입자들에 촉촉한 맨얼굴을 내밀면 그들의 눈빛과 냄새가 몰려온다, 스쳐 지나간다.
그리하여 오히려 날이 궂으면 산으로 간다. 청명청명 맑은 날이면 가시거리는 좋지만 사실은 내면의 그 아무것도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 맑고 밝으면 시각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일종의 당달봉사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오히려 안개 속이나 한밤중에 더 많은 감각과 생각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지 모른다.
장마철 산행에 깊이 빠지면서 자주 ‘청학동 전설’이나 ‘무릉도원’ 혹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실감한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을 방문하는 꿈을 꾸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한 후 그리게 했다는 몽유도원도는 말 그대로 꿈속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날마다 장마철 형제봉의 구름 속에서 이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먹구름, 그 지독한 산안개 속에서도 얼굴을 반쯤 가린, 아니 얼굴을 반쯤 내민 털중나리 두 송이, 그리고 붉은빛 선연한 지리터리풀을 만나는 것은 실로 꿈결 같은 일이다.
두려워서, 두렵다 못해 먹구름을 피하며 살다 보면 난데없이, 피할 겨를도 없이 폭우를 맞게 된다. 돌이켜보니 지난 생이 그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발상의 전환, 인식의 전환을 해 차라리 ‘먹구름 우산’ 하나를 장만한 것이다. 역발상을 해보면 먹구름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우산이 아닌가. 한 번 젖은 나무와 돌은 더 이상 젖지 않고, 한 번 젖은 자 또한 더 이상 젖지 않는 법이다. 비와 먹구름, 산안개에 깊이 빠지고 보니 날마다 장마철 산정이 그리워졌다.
구름 속의 산책이 아니라 아예 푹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때까지, 이 세상에서 순식간에 지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카메라를 품고 있다가 지독한 산안개가 밀려오면 그 속에서 얼굴을 슬쩍슬쩍 내미는 야생화를 마구 찍었다. 숨 막히는 통정, 오래 꿈꾸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몽유운무화’(夢遊雲霧花) 혹은 ‘몽유운무도’라고나 할까.
비와 먹구름, 산안개에 빠지면 오히려 장마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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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여름의 대표적인 야생화인 금꿩의다리. 2 백두대간 중심부 능선에서 만나 솔나리. 3 담양 대나무숲의 흰망대버섯. 아침 빗속에서 단 25분 만에 피는 모습이 죽순처럼 흰 망사치마를 입는 게 보일 정도다. 4 지난해와 올해 7번이나 찾아가서 본 희귀식물인 칠보치마. 5 타래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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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산으로 간다. 하산이 아니라 입산이다. 먹구름을 기다리며, 깊은 계곡 물안개를 기다리며 초기 입산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리하여 산안개 피어나는 이끼계곡에서 꿈에도 그리던 한 컷을 찍기도 했다. 비록 흔한 야생화 산수국이지만 어쩌면 산수국이어서 더욱 몽환적일지도 모른다. 구름 속의 털중나리, 지리터리풀, 그리고 이끼계곡 산안개 속의 산수국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산신령이 있다면 그의 몸은 아마도 이렇게 보일 것이다.
태풍 너구리가 숲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자 이른 새벽에 일어나 12년 전에 살던 섬진강변 옛집 마고실마을을 지나 구례의 오산 사성암에 올랐다. 오산은 형제봉, 왕시루봉, 구재봉과 더불어 ‘섬진강과 지리산 조망 1번지’다. 구름이 걷히는 동안 노란 원추리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고 드디어 하늘말나리가 고개를 쳐들고 섬진강 너머 지리산 노고단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한동안 구름 속을 헤매다 보니 온몸에, 마음에 막 곰팡이들이 피어나고, 푸른 이끼들이 자라고, 온갖 버섯들이 돋으려다 쨍한 하늘에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숲속 그늘진 곳을 둘러보니 등색각시비녀버섯이 노란 양산을 펼쳐들고 있다. 다가오는 무더위에 나도 이런 양산 하나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봉과 오산 사성암을 오르내리다 최근에는 장마철 전후 며칠째 구재봉에 올라 멋진 노을을 기다리기도 했다. 하동군 악양면의 구재봉 활공장은 여름철 섬진강의 노을을 볼 수 있는 최고의 뷰포인트다. 하지만 섬진강 노을은 매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숱하게 자주 가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제대로 보여 준다. 며칠째 너무 구름이 많다 보니 노을이 지다가 말았다. 오래 전에 찍은 김인호 시인의 붉은 섬진강 사진 같은 장면을 목격하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처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다.
명색이 시인인데 이왕지사 단 한 글자의 획을 긋더라도 저무는 섬진강처럼 때를 기다렸다가 일필휘지로 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섬진강의 일이니 미몽에 빠져 일평생 단 한 글자도 못 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족필(足筆)을 주장한다. 내 몸이 직접 가서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는, 코로, 귀로, 혀로 느끼지 않고는 쓰지 않을 것이다. 잘 모르는 천재보다는 천천히 제대로 아는 둔재가 되고 싶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이승의 날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의 졸시 ‘족필(足筆)’은 그런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내 인생에 족필 한 자루와 카메라, 그리고 적토마인 모터사이클이 있으니 무어 더 필요한 게 있겠는가. 어디든 달려간 뒤 멀쩡한 두 다리로 최대한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느끼고, 사진으로 담고, 글로 받아 적으니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이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산에 오르다 조금 상투적이 되면 발길 돌려 남해 바다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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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치마 만나러 갔다 식충식물 끈끈이주걱 군락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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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남해에 칠보치마를 만나러 갔다가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 군락지를 찾는 행운을 만끽했다. 2 닭의난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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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희귀식물인 칠보치마를 다시 보고 싶었다. 얼핏 보면 그리 예쁘지 않은데 자세히 보면 볼수록 참 앙증맞고 기품이 있는 야생화다. 사람 또한 그럴 것이다. 남도의 이 어여쁜 칠보치마들을 만나러 지난해와 올해 일곱 번이나 갔다. 맨 처음 발견된 경기도 칠보산에선 불행하게도 멸종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곳엔 멸종위기 2급의 개체수가 좀 많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강원도에서 만난 봄날의 처녀치마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치마꽃이다. 이 꽃을 만나러 갔다가 뜻밖에도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 군락지를 발견하고 닭의난초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특산종인 일월비비추를 만나러 지리산 깊은 계곡의 폭포를 찾아가기도 했다. 폭포 버전의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보기 힘든 변이종 흰일월비비추를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일월비비추의 꽃말은 ‘신비의 사랑’ 혹은 ‘신비한 사람’이다. 홍분청아(紅粉靑蛾)! 홍분은 붉은 연지와 분, 청아는 푸른 눈썹(아미)이니 아리따운 여인, 미녀를 뜻하는 말이다. 꽃봉오리가 여인들이 머리를 말아 올리던 비녀를 닮았다고 해서 비녀비비추라 부르기도 한다. 그 꽃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가신 어머님의 비녀는 다 어디로 갔을까?’
고향 문경의 선산에 누워 계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다가 남해안 어느 무덤가를 찾아갔다. 그 무덤가에 타래난초가 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1년 만에 다시 그 무덤 그 자리에서 만나도 온몸을 배배꼬며 수줍은 듯 반겨 주었다. 땀 뻘뻘 흘리며 어머님께 참회의 108배를 하듯 잘 모르는 조상의 무덤에 엎드려 찍었다. 이 아리따운 타래난초와는 달리 마음이 꽈배기처럼 배배꼬인 사람을 보면 참으로 난감하지만, 온몸이 이렇게 부끄러운 듯 배배꼬이면 와락 안아 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나이가 들면서 너무 무감각해졌다. 너무 그립다 못해 온몸이 배배꼬이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타래난초의 꽃말은 추억, 그리고 소녀라는 것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겼다.
이렇듯 야생화는 무덤가에도 피고 석회암 바위틈에도 자라고 깊은 계곡과 산정에도 피어난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메마르거나 습하면 또 그런 대로 체질에 맞게 제 몸, 제 꽃자리를 잡고 꽃을 피워 올린다. 그야말로 다르다고 서로를 억누르거나 깔보지 않는 다양성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내게 여름 야생화 중에 굳이 가장 아름다운 야생화를 들라면 금꿩의다리와 솔나리, 그리고 금강초롱이라고 목소리 낮춰 비밀처럼 얘기할 것이다. 왜냐면 다른 꽃들이 시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금꿩의다리는 보면 볼수록 정말 매력적인 여름꽃이다. 꽃말이 ‘키다리인형’인 이 꽃을 막상 찍으려 하면 만만치가 않다. 아주 미세한 바람에도 반응해 자꾸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실 ‘무엇을 찍느냐’도 중요하지만, 갈수록 ‘어떻게 찍느냐’가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귀한 꽃을 찾아내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흔한 야생화 또한 소홀히 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용과 형식을 얼마나 절묘하게 버무려내느냐 하는 숙제는 갈수록 참 어렵다. 식물학자도 아니고, 생태사진가도 아니고 야생화를 오래 찾아다니며 공부한 고수도 아니니 그저 시인의 눈으로 어떻게 형상화하느냐가 요즘의 고민이다. 대학 강의가 없는 방학을 맞았으니 그저 용맹 정진할 뿐, 내식대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재미도 참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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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구재봉에서 붉게 물든 섬진강 노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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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에는 전남 담양에 다녀왔다. 대담미술관에서 가수 이동원씨와 더불어 시노래 콘서트에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향수’, ‘가을편지’의 이동원은 백전노장의 가객다웠다. 가수와 시인 두 명이 진행하며 토크쇼를 겸해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했다. 모처럼 예약 초대된 100여 명의 관객들과 시와 노래로 호흡하는 멋진 무대였다.
그런데 사실 나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다. 콘서트도 아름답고 행복하지만, 그와 더불어 담양의 대숲에는 흰망태버섯이 필 때가 되었기에 온통 마음은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그리하여 그 좋아하는 술도 좀 자제한 뒤 이른 새벽에 벌떡 일어나 대숲으로 달려갔다. 아직 컴컴한 대숲을 헤매고 다니며 모기와의 혈전을 치렀다. 그러던 중 대숲 언저리에 영덕 대게의 붉은 집게발 하나가 솟아나 있는 것을 보았다. 세발버섯(게발버섯, 게발톱버섯)이었다. 한 컷 찍고 모기에게 두 방, 또 엎드려 한 컷 찍고 세 방, “어휴, 이 눔의 모기새끼들, 탁한 피가 뭐 그리 좋다고” 투절거리며 헌혈을 제대로 했다.
가수 이동원씨와 시노래 콘서트 초대
마침내 여명의 대숲에서 만난 흰 망태버섯. 대숲의 장마철을 기다린 이유가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이른 아침 빗속에서 하얀 망사치마를 입은 채 대숲을 환하게 밝힌다. 겨우 25분 정도에 다 피어나니 마치 죽순처럼 흰 망사치마를 입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하지만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순식간에 허물어져 내리는 하루살이 균류다. 망태버섯은 약이 되는 식용이지만 깊은 산 습한 곳에 사는, 더 화려한 노랑망태버섯은 독버섯이다.
그 다음날 지리산에 돌아와 이른 새벽부터 빗속에 길을 나서 나도수정초와 노랑망태버섯을 찾아 헤맸지만 허탕이었다. 하지만 절망할 것까지야 있겠는가. 마음을 주고 때를 기다리면 언젠가는 만나게 돼 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쨍하게 날이 개면 또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모터사이클을 타고 먼 길을 다녀왔다. 지난해 만나지 못해 1년간 마음 졸이며 때를 기다리던 꽃 때문이다. ‘새아씨’라는 꽃말을 지닌 ‘나리의 여왕’ 솔나리!
말 그대로 친견(親見)이었다.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것을 친견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솔나리보다 더 어른은 절대 아니니 내가 솔나리를 직접 보는 친견이 아니라 ‘새아씨’라는 꽃말을 가진 솔나리, 오묘한 분홍빛 ‘나리의 여왕’께서 친히 나를 보아 준 것이다.
지리산에서 그 먼 곳까지 달려가 마침내 솔나리를 만났다. 알고 보니 바로 고향 뒷산 백두대간 중심부 능선에 살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에 경북과 충북의 고봉준령을 넘나들 때 얼핏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충청권 야생화 업계의 고수인 정택근 선생과 나의 야생화 사부인 김인호 시인의 조언이 큰 힘을 내게 했다. 백두대간 중심부를 땀 뻘뻘 흘리며 1박2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인 다른 곳으로 가 수많은 ‘나리의 여왕들’을 접견하고 왔다. 4박5일간 모터사이클을 타고 장장 1,500km를 달리고 산길 30km 이상을 걸었다. 덥고 힘들었지만 솔나리가 이렇게 환하게 맞아 주니 더없이 행복했다.
더구나 그 귀한 변이종 흰솔나리를 만나는 엄청난 행운을 맛봤다. 처음 지나갈 때는 못 봤는데, 험한 산길을 되돌아오다 딱 마주친 것이다. 백두대간 그 능선에서 언젠가 사라졌다는 풍문을 들었는데 뜻밖에 이렇게 마주치고 보니 꿈만 같았다. 단 사흘만 빨랐어도 꽃빛이 더 좋았겠지만, 이마저도 너무 과분한 게 아닌가. 그저 이렇게 단 한 포기라도 살아 있어 줘서 고맙고, 나의 무지몽매한 눈에 띄어 줘서 눈물겨웠다. 고은 시인의 시 ‘올라갈 때 못 본 꽃 내려올 때 보았네’를 절감했다.
꽃미남 혹은 야미남, 야생화에 미친 남자! 그렇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그곳에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고 해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 세상에는 친견할 만한 인물들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 편의 시] 먹구름 우산을 쓰고 달리다 -이원규
누군들 일단 피하고 싶지 않으랴
퉁퉁 불은 우동발 같은 소낙비
물까치들도 산중 외딴집 처마 밑으로 날아드는데
모터사이클 시동을 걸다가 서쪽 하늘을 본다
시속 43km로 몰려오는 먹구름
비옷을 입을까 저 구름을 우회할까
정면으로 깊숙이 통정하고 말 것인가
오후 3시의 시낭송 약속쯤이야
비구름의 명에 따라 스스로 취소하고
기수를 돌려 동쪽으로 달린다
바람보다 빨리 구름보다 빨리 속까지 다 젖기 전에
빗줄기의 결을 따라 시속 130km로 달린다
비바람이 물오른 수양버들 가지처럼
이마를 때린다 척척 목을 감는다
이 뭐꼬, 기가 막힌 문장이지만 질문이 필요 없다
왜 달마가 동쪽으로 갔는지
아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단지 소낙비를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
마침내 나는 앞바람 앞구름을 따라잡았으니
서서히 비가 그치고 동쪽 하늘이 환하다
그런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쯤인가
몽유병 환자처럼 하동을 지난 것만은 분명한데
구름의 길만 보고 달리다가 허걱
모터사이클을 세우고 뒤돌아본다. 다시
소낙비가 먹구름의 퉁퉁 불은 젖을 빨며 달려온다
담배 한 개비 치지직 꺼질 때까지 기다리다
천천히 속도를 늦춰 먹구름 우산을 덮어 쓴다
젖은 입술이 촉촉하다 모처럼 젖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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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맑고 밝으면 시각 중심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일종의 당달봉사가 되기 십상이다
요아나님, 잘 지내시죠? 늘 고마워요.
야생화의 이름은 정겹긴하지만
외워지진 잘안되네요
그리구 실물과 사진으로 보는모습이
헤깔려
우중 산행은 위험하니 아무쪼록
이시인님 조심 또조심하시라요
동감
요안나님 덕분에 잘 보고있습니다.
저번에 보내주신 책 -그남자의 연애사-
는 지구인님께 드렸습니다.
지구인님께서 보시고 다른분께 드릴겁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남편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편하게 잤다고
두고두고 말을 했습니다.
먹구름 우산을 덮어쓰고 바이크를 타시는 이시인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지는군요...
이제 글을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말하듯 노래하고.. 말하듯 글쓰고.. 생각을.. 눈에 보이는 걸 보는그대로 글쓰고..비가 몸에 닿으면 닿는 그대로 글쓰고...
진짜 글쟁이들은 이렇게 글쓰는군요....덧붙이지않고 쭉쭉글내려가는이들이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