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 2(레위기 3:1-5)19.08.25.주일낮설교
작은 우리에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웠습니다. 본래 개는 늑대과에, 고양이는 고양잇과에 속하는 동물로 서로 맞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둘이는 각각 한쪽 모서리를 차지하고 눈만 떴다 하면 덤비고 물고 싸워댔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엔 서로를 이해했는지 친숙해졌습니다. 뺨을 비비기도 하고 핥기도 하고 같이 눕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 닭 한 마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역시 처음엔 쪼고 덤비고 푸드덕거리고 야단이더니 이내 친숙해졌습니다.
동물들도 오래 함께 있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달라도 서로 용인하며 포용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화평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제사 종류는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충성을 바칠 때 드렸던 번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부숴 봉사하고자 할 때 드렸던 소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또한 이웃과 화해를 이루고자 할 때 드렸던 화목제가 있습니다. 죄 용서를 구하며 드렸던 속죄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배상하면서 드렸던 속건제가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불로 테워 드리던 화제가 있습니다.
흔들어서 드렸던 요제가 있습니다.
높이 쳐들어서 드렸던 거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쏟아 부어서 드린 전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렇게 다양한 제사 종류와 제사 방법을 사람들이 고안해 냈거나 사람들이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레위기 1:1을 보면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화목제란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여 온전케 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맞물려서 모든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1.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입니다.
1절은 화목제가 다른 제사와 다른 중요한 차이 중의 하나를 보여줍니다.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번제는 반드시 수컷으로만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제물로 암수 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흠이 없는 것이라는 단서는 따라 붙습니다.
화목제 제물은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까지도 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화목제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제물이 흠만 없다면 하나님과 화해하는 데 어떤 제한 조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만 해결한다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공로가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업가 '케네스 벨링'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빈민가를 지나던 중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벨링의 비서는, 빈민가 사람이 주운 지갑을 돌려줄 리 없다며 포기하자고 했지만, 벨링은 지갑을 주운 사람이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습니다. 비서는 '지갑에 명함이 있으니, 돌려줄 마음이 있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겁니다.'라고 종용했지만 벨링은 침착한 모습으로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졌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지갑을 주운 사람은 남루한 차림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이 돌려준 지갑에는 돈은 한 푼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지갑을 돌려준 소년이 주저하면서 말했습니다. "혹시 돈을 좀 주실 수 있나요?" 비서가 그럴 줄 알았다며 소년을 비웃었지만 벨링은 웃으며 소년에게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감사해요. 저에게 1달러만 주시면 돼요.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찾았지만, 전화를 걸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돈을 빌려줄 사람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니까 빌린 돈을 갚으려고요." 소년의 말에 벨링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내 지갑에 돈이 있었는데 왜 그 돈을 쓰지 않았니?"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건 제 돈이 아니잖아요. 남의 돈을 허락도 없이 쓰면 안 되잖아요." 소년의 맑은 눈을 본 비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동한 벨링은 이후 빈민가에서 학교에 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와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주운 물건은 주인에게 돌려줘야 해요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돼요.'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입니다.
2. 화목제는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입니다.
첫째, 차별이 없어야 이웃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1절).
화목제의 제물은 다른 제물과 달리 암컷이나 수컷의 차별이 없습니다. 다른 제사는 수컷으로 드려야 했는데 화목제는 암컷이나 수컷 상관없이 드렸습니다. 화목제의 제물이 차별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화목하시는데 차별이 없으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종의 차별을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 이름이 나옵니다. 그 이름 가운데 니게르라하는 시므온이 있는데 그 사람이 흑인이었습니다. 또 빌립이 성령에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하다가 에디오피아 여왕의 재무장관에게 복음을 증거했는데 그 사람 역시 흑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화목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하시지 않습니다. 수컷만 드렸던 다른 제사와는 달리 화목제에 있어서는 암컷이나 수컷을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갈 3:28에서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빈부귀천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부요한자라고 은혜를 더 주시고 가난한 자라고 덜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을 차별하지 몰라도 주님은 언제나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것들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미국의 경영 및 인사관리에 진리처럼 퍼져 있는 ‘웨이터의 법칙’이 있습니다. 2006년 웨이터의 법칙을 소개한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가까운 사람에겐 친절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거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 파트너가 되면 결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 파트너로 삼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식당 종업원과 버스 기사 등은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그들이 엑스트라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가족이고 영웅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매우 정중하게 그들을 맞이하고 대접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들은 바로 천사들이었습니다. 때로는 나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모습으로 천사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들을 소홀히 여기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를 업신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2)
우리 주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들도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화목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루려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며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차별은 화목을 깹니다.
첫째, 차별이 없어야 이웃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1절)
둘째, 감정과 생각이 죽어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3-4절).
화목제를 드릴 때 반드시 불살라서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내장과 콩팥과 간과 기름입니다. 유대인들은 콩팥을 영혼의 좌소로 봤습니다. 콩팥 안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콩팥과 내장과 간에 인간의 감정과 생각이 들어 있다고 봤습니다.
콩팥을 불살라 드리는 것은 나의 감정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앞에 굴복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처리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절대 누구하고도 화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이 죽어지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사람과의 화목을 위해서도 반드시 내 생각과 감정이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의사가 쓴 글을 봤습니다. 사람이 화를 내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해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하며, 경련성 질환 및 소화기 장애까지 유발되고. 심하면 피가 응고돼 졸도까지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분노를 품고 잠자리에 들면 혈관이 수축되어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키고 또 불면증뿐만 아니라 소위 가슴앓이나 화병이라고 하는 신경성 질환이 분노할 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육체 건강까지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아가 인간관계도 파괴시키는 장애물이 됩니다.
가인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 동생을 죽이고 누군가 나를 죽일 것만 같다고 스스로 불안에 떨었습니다. 분노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성을 파괴시킵니다.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 인격에 큰 상처를 입을 때가 많습니다. 분노는 결코 문제 해결의 답이 아닙니다. 인생의 황폐화를 가져오고 장애물을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버려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또 하나의 화목은 사람과 사람의 화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원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제사에 드려졌던 제물의 뒤처리에도 다른 제사와 크데 다릅니다. 다른 제사는 거의 대부분 하나님께 화제로 불살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부분은 제사장의 몫이 였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땅을 분배해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제사직에만 헌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고 남은 부분으로 생활하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화목제는 하나님께 내장과 기름을 태워서 드리고, 제사장에게는 요제로 드린 제물의 가슴부분과 전제로 드린 우편 뒷다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제사를 드린 사람과 가족과 이웃 모두가 함께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교제요, 성도간의 화평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화목제는 이 세상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한다고 화목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이 믿음의 공동체에서 화해를 이루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평화를 이룰 때 그 화목제가 온전하게 드려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면 이제 이웃과 화평을 이루어야 하고, 이 세상에서 화평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때에 진정 우리의 화목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