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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출4:10-17)
2025, 2/2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4:10-17절 말씀으로“하나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설 명절 잘 보내셨지요? 건강한 여러분을 보니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2003년 홍콩정부가 반중활동과 정치행위를 금지하자 50만 명이 시위에 나섰고, 정부가 물러서자 중국이 개입해 홍콩의 자유화를 억압합니다. 그러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와 2019년 홍콩의 정치범을 중국으로 송환하는 법을 반대해 홍콩인구1/5이 참여한 대규모시위를 벌였지만 중국정부가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합니다.
이때 우리 정부와 언론이 중국 눈치를 보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자 홍콩인들이 교민들에게‘당신들이 오늘을 묵인하면 이 일이 반드시 여러분들의 내일이 될 것이다.’고 말했답니다. 홍콩인들은 그동안 자유를 누리다가 공산 독재체제에 자유를 빼앗기고 검열과 통제 속에 살아가자니 더 죽을 맛일 것입니다.
그런데 홍콩이 중국으로 흡수된 것은 중국이 홍콩선거에 무슨 짓을 했는지 친중파들이 선거에서 대거 당선돼 법을 개정하고 제정하여 합법적으로 홍콩을 중국으로 넘깁니다. 우리도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10절)
둘째로, 하나님은 전도자에게 할 말을 가르쳐주십니다.(12절)
셋째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15-16절)
그러면 본문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왜 겸손하게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10절)
본문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아멘.
요셉과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고센 땅에 정착한 후 이제 400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그곳에 살다보니 그곳이 고향이 되어버렸고, 애굽을 조국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써 애굽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도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자신을 나그네라고 칭했고, 요셉도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으로 가져가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흘러 때가 되매 이제 저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저들은 움직이질 않습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오랜 세월이 살다보니 애굽이 고향처럼 조국처럼 느껴져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올라갈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저들이 그곳에 진저리치게 만들면 됩니다. 그래서 바로왕이 저들이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노동 강도를 끌어올렸고, 그래도 안 되자 신생 남아까지 죽이는 혹독한 일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걸 볼 때 생각나는 말씀이 가시채를 뒷발질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항복하고 순종하는 길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반항한다면 나만 고통이고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백성들이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그에게 이스라엘을 이끌어낼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지금 4번째 거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하나님은 모세를 협박해 강제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우리의 인권과 자유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데 공산사회주의자는 겉으로는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지만 속으로는 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로 나눕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그들과 함께 못가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지금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무능하다는 이유입니다. 모세의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러분!!! 모세가 이렇게 자신의 무능을 핑계로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배경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신이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주의 일을 하려면 능력도 필요하고, 지혜도 있고, 말주변도 있어야한다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이지요.
혹시 여러분도 주의 일을 하거나 복음을 전할 때 그에 걸 맞는 능력이나 재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오해하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능력을 현저하게 제한하고 하나님을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의 능력은 측정자체가 불가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능력과 재주는 아무리 뛰어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해서 작은 핸드폰 안에 탑재된 AI에게 무엇을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알려줍니다. 아주 어려운 정치 시사 같은 걸 물어봐도 가지고 있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람들보다 더 정확한 답을 순식간에 내놓습니다.
이런 AI를 만들고 달나라를 가며, 무한한 우주를 탐험하는 업적을 이루어낸 인간들도 가뭄이나 폭우, 태풍이나 해일, 지진 등 자연의 무쌍한 변화와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대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과 우주만물 사람을 만드셨고, 그것들을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운행하셨으며, 태초부터 지금까지 오고가는 인간들 각 개개인의 삶과 인생전체를 동시에 장악하시고 움직이시는 최고의 능력자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능력과 재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만용이자 교만이며, 무모한 발상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데 왜 모세를 사용하셨고, 사도바울을 비롯한 12제자들은 왜 또 사용하셨으며, 우리를 사명자로 일꾼으로 쓰시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이 세상을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이 땅을 다스리라고 하심으로 이 땅을 통치할 권한을 위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해갈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자연현상이나 역사의 큰 흐름 같이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사역을 기본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의 큰 줄기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지만, 현실적으로 그 일의 발단, 진행, 결말의 주역은 여전히 인간들, 특히 일꾼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영적인 존재라 육적인 이 땅에서 일은 육적 존재인 우리가 맡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인데, 고전3: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절대 내가 한다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남을 섬기는 종의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내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내 뒤에서 나를 도우신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부르심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전도자에게 할 말을 가르쳐주십니다.(12절)
본문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아멘.
모세가 자신은 말주변이 없어서 하나님의 소명에 응할 수 없다고 거절하자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와 함께할 것이라고 확신을 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말주변이 없었던 모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주의 일을 감당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신앙인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이 할 말을 친히 가르쳐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거나 주의 말씀을 선포할 때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말씀을 가르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여러분도 가까운 지인을 만나 복음을 전할 때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오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아니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했지?’‘어떻게 내가 저런 말씀을 알고 있었지?’그러나 미안하지만 하나님이 복음을 잘 전하고 주의 일을 잘하라고 입에 적절한 말을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할 때‘내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알아냈을까?’하며 신기하게 생각할 때가 있는데, 마10:19-20절에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 내가 잘나고 똑똑하다고 뿌듯해하거나 우쭐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또 렘1:9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자 예레미야가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모세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도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내가 네 입술을 주장할 것이니 니가 말할 줄 모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말주변이 없다고, 성경지식이 부족하다고 복음전하는 것이나, 주의 일 하는 것에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역의 현장에서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주의 일을 해야 하나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음을 전하거나 주의 일을 할 때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능력과 말주변을 따지지만,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나와야 합니다.
올 한해는 그런 여러분이 되셔서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15-16절)
본문 15-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아멘.
이 말씀은 모세가 말주변이 없다고 핑계를 대자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 말씀하시자 모세가 그래도 저는 못갑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렇게 5번째 거절하자 하나님이 화를 내시며 형 아론을 조력자로 붙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무려 5번이나 밀당을 강행하는 모세의 강단도 대단하고,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내심도 대단합니다.
모세가 자신은 말주변이 없다고 소명을 거듭 거절함에도 하나님은 모세를 끝까지 설득해 마침내 그를 당신의 동역자로 삼습니다. 이제부터 이 두 사람은 서로 합심하여 이스라엘백성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는 사역은 감당하게 됩니다.
모세와 아론의 환상적인 콤비를 통해서 교훈을 받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형제들끼리 서로 합력하여 주의 일을 감당해가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똑똑해도 하나님 일도, 세상살이도 혼자서는 할 수가 없고, 또 세상을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벽하지 못해서 어느 것을 잘하면 다른 것을 못하고, 어떤 것을 잘 알면 또 다른 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야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일컬어‘사회적 동물’이라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사회성’이라 말하는데, 이 사회성이 떨어지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여러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당신을 본 따서 우리가 커뮤니티를 이루어 코이노니아 속에 살아가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보다 동물에게 더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은 병리적인 현상이고 성경적으로 잘못된 겁니다. 동물을 사람 대하듯이 대하고, 유모차에 태우고, 장례식까지 치루는 심정은 이해되지만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 관심을 사람에게 형제와 이웃에게 쏟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는 반드시 교제가 필요한데, 교회를 출석해도 교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5대 기능 중 하나가 바로 교제인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사회도 그렇지만 교회도 서로 협력하여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결점도 보완하고, 생기는 문제들도 빠르게 해결하며, 여러 많은 아이디어로 일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주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둘씩 짝 지워 보내셨고,(눅10:1) 사도바울도 전도여행을 다닐 때 혼자가 아니라 항상 동역자들과 함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왜 없겠습니까? 세상 사람은 결국 지옥 갈 것이니 별짓을 다하고 가야 덜 억울할 것이니 그렇다 치고 우리는 천국 가는 사람들이라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형제를 품고 사랑해야합니다.
꼬투리 잡아서 비난하고 헐뜯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하지 말고, 이해하고 섬기고 양보하셔야합니다. 안 그러면 나중에 천국 가서 난처해지게 됩니다. 그곳에서 안 만나면 모를까 날마다 볼 뗀데 어떻게 얼굴을 보겠습니까?
때문에 우리는 오늘 모세와 아론처럼 모두 한 하나님 안에서 동역자가 되어야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복음전하고, 함께 청소하고 봉사와 헌신도 하는 것입니다. 갈6: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서로 짐을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여 교회도 가정도 잘 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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