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계의 수도권 전철 전선 완승기
제 11 편 - 따로 따로 노는 전광판
7호선을 타다 시원한 공기와 탁트인 전망을 선사해준 뚝섬유원지역과도 이제는 이별이다. (옥수역은 공기는 시원하나 동호대교 고가때문에 전망은 별로이다. 뚝섬유원지역은 청담대교 바로 아래에 건설되었으므로 고가도로가 옆전망을 가리지는 않는다)
당시 방학숙제로 박물관 답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로 전쟁기념관을 가기로 했다 (시간이 엄청나게 널럴했으므로...). 원래는 삼각지 표를 끊었으나, 환승의 귀차니즘으로 그냥 남영역으로 가기로 했다 (전쟁기념관은 삼각지역에서 지척간이나 남영역에서 내리면 H모 제과의 본사를 지나야 한다).
열차 42. 7호선 #7241 (온수행)
열차시각 : 뚝섬유원지 (14:58) ----------> 온수 (15:45)
특이사항 : 온수역 가운데 선로에 정차
사진을 편집하다보니 열차가 #7226이 되어버렸네요 (7226은 장암행입니다)... #7241입니다.
위의 노선도를 들여다보니 노선도가 이상하다. 분당선을 보면, 보정역이 없다(보정역은 2004년 11월 개업). 운영주체가 틀린데다가 임시역이라서 보기 좋게 무시가 되어 있다 (더욱이, 노선 안내에도 분당선 선릉 - 오리라고 되어 있다).
아까 왔던 고속터미널, 이수를 지나고 얼마간 달리다 보면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나오는데, 역명이 바뀐 지 30일이나 되었음에도 가리봉이라고 나온다. 안내방송에도, 전광판에도 그대로이다. 대신 역명판은 가산디지털단지이다. 역명이 바뀐데 대한 철공과 도철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철공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가산디지털단지라고 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애초에 역명 변경은 철공에서 앞장서서 한 것인 만큼).
이제, 종착역인 온수 하나 전 역인 천왕역에 도착했다. 우리 상식에서라면 한자를 天王이라고 써야 하나, 天旺이라고 쓰여 있다. 원래 旺(성할 왕)자는 일제 강점 전까지는 王으로 썼으나, 일본이 민족 정기를 꺾기 위해 日+王의 旺으로 바꾼 것이다. 의왕(儀旺)도 원래는 儀王이었으나, 이런 방식으로 바꾼 예이다. 광복 60년에 이렇게 지명의 한자 표기법부터 바꾸어 민족 정기를 살려야 할 것이다.
2면 3선인 온수역의 가운데에 열차가 섰다. 바로 앞에 에스컬레이터(맨 앞칸에 탔다)가 있으므로 환승 걱정을 덜어준다. 온수역은 맨 앞칸에서 내리고 인천방향의 맨 앞칸에서 탈 수 있는 환승구조이다. (2004년 1월에는 온수역에 눈꽃이 만발해 매우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나는, 그 비극이 시작되는 줄 모르고 있었다 (154번 사진의 역명판을 잘 각인하기 바랍니다).
열차 43. 1호선 #K206 (의정부북부행)
열차시각 : 온수 (15:50) ----------> 남영 (16:13)
특이사항 : 신길역 이전까지 전광판 오류 (두 역씩 전의 역이 나타남).
온수역을 출발하자 기겁하고야 말았다. 전광판에 역곡이라고 뜨지를 않던가!!! 순간 방방 뛰었다. 열차를 잘못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래역에서 실수했으면 이제는 실수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허나, 주변의 어떤 아줌마가 필자를 진정시켜 준다. "오류동 맞아요." 그 아줌마는 전광판 오류에 단련된 듯 한다. 아니, 오류가 난 전철을 타는 모든 시민들이 단련된 듯 하다. 이런 현상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전광판은 신길역에 와서야 정신을 차렸다.
한강철교와 용산을 거쳐, 전쟁기념관으로 가는 관문인 남영역에 도착했다. 남영역 출구는 서울역방향 기준 맨 앞에 있는 관계로, 맨 뒤에 탔던 필자는 힘들게 걸어야 한다.
남영역 출구의 박정희시대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화장실 표시는 신CI이지만, 화장실은 상당히 낙후된 상황...
고속터미널 -> 남영 : 900 X 2명
- 여기서부터는 전쟁 기념관 견학기이므로 전쟁 기념관 보고서를 그대로 쓰겠습니다 -
2005년 7월 30일 토요일. 나는 당시 수도권 전철 전선 완승을 하고 있었다. 7호선 종착역 온수역에서 전광판에 오류가 난 전철을 타고 남영역(南營驛)에서 내렸다. 개찰구와 ‘전철식당’을 뒤로 하고 남영동 거리를 걸었다. 도중에 투쟁중인 것으로 보였던 해태 본사와 미군 기지도 보였다. 미군 기지여서 그런지 전쟁기념관 후문에서도 봉(棒)을 든 경찰들도 보였다. 어쨌든 10분 정도 걸으니 ‘세계적인 명소 전쟁기념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도 보였다. 물론 전쟁기념관 후문이다. 전쟁이 뭐가 좋다고 세계적인 명소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쭉 들어가 보니 전우회관(戰友會館)이 보이게 된다. 그곳을 지나 돌아야 한다.
이제 시원한 곳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에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북괴(北傀)와 싸우다 장렬히 간 영령들이 모셔져 있다. 아무래도 자신들은 천상으로 갔어도 자유와 평화를 유지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축복해 주면서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신 덕이 아닌가 싶다. 나도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가신 분들에게 묵념을 올린다. 그분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매표소를 거쳐 입구로 들어간다.
이제 넓은 홀로 들어간다.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넒은 원 안에 있는 흉상(胸像)2)들이다. 이 흉상들은 외침(外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인물들과 독립을 위해 희생된 분들, 자유와 평화를 위해 앞장서 싸우다 간 국군 장군들의 흉상이다. 흉상 아래에 쓰여진 그분들의 업적을 보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전시실로 들어간다.
첫 번째 전시실은 전쟁 역사실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전쟁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데, 각종 전쟁 무기와 방어기구 등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조선시대의 장군(將軍)들이 쓰는 검(劍)은 너무 무거워 보여서 어떻게 저런 검을 들 수 있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또, 무관(武官)과 문관(文官)의 흉배(胸背)도, 장군과 사병(士兵)의 복식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 사용했던 군기(軍旗)와 표장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19세기 후반의 우리나라(대한제국)와 열강(列强)들의 군사 정세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어쩌면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이국(異國)적인 다른 나라의 당시 군사력을 가늠해 보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약국(弱國)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서러움을 느껴본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일제의 침략을 벗어나 광복(光復)을 이루었다. 그러나 끝없는 이념 대립과 갈등으로 민족의 비극을 가져왔다. 다음 전시실에서는 이런 민족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를 배운다. 먼저 이러한 비극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서는 당시 남북의 국력을 비교해야 했다. 공군에서도 당시 남쪽에서는 훈련기만 있었다. 또한 탱크도 남쪽에는 없었지만 북쪽에서는 수십 대나 되는 탱크를 가지고 38선을 넘어 남침(南侵)할 수 있었다. 결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이 감행되었다. 그러나 학도병들의 노력과 국군의 투혼(鬪魂)으로 결국 공산화를 막아냈다. 이 전시실에서는 국군과 북괴군의 무기와 전시 상황에서의 피란민들의 생활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볼 곳은 우리 국군이 6. 25 이후 어떻게 자주국방이 가능할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국군 발전실이었다. 육, 해, 공군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지금의 국군 군기와 전투기, 군함 모형 내부에 들어가 보면서 국군의 활약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베트남이나 이라크 등지에 파병된 우리 군의 활약상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월남전에 파병된 우리 군의 전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다.
자, 이제 ‘관람 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제 마지막으로 국군과 북한군의 병기와 대형 장비들을 보면서 전시관 내부를 나선다.
이제 문을 닫은 기념관. 들어가려다가 폐관시간이 되어 아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다음 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가족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다음 일정인 KTX 특실을 타고 행신(幸信), 수색(水色) 등으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관악역(冠岳驛)으로 가야 하는데, 용산역으로 갈 것인지 아까 온 남영역으로 갈 것인지 망설였다. 그러기 위해 미군기지를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용산역이 더 가까워요, 남영역이 더 가까워요?”
“아무래도 남영역이 가깝지 않을까?”
기념관 바로 앞에 있는 삼각지역(三角地驛)을 지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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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전쟁기념관 관람기입니다. 사진 163, 164, 165, 166번은 견학기 사진이므로 결번하고 사진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11편은 여기서 마칩니다.
제 12편 '1급 고속철 간이역'을 기대해 주세요.
첫댓글 내용이 없네요?? 어케 된건지... ^^
원래 올리려던 것이 집에서 엄마가 컴퓨터 끄라고 해서 이렇게 된겁니다. 그전에는 올릴 때 오류가 나서 제목만 쓰고 저장하였다가, 내용을 쭈욱 써서 수정했습니다. 오늘 밤이면 올라갑니다.
댓글 안보고 한참 기다린...ㅡㅡ;;;
아~~ 그럼..엄마의 압박으로.. 그렇게 된 거군요~~ 에휴!!!
아직 안올리셨네요.,..
그렇군요-_-; 그럴땐 엄마 말 무시하고 올려보는 센스- -;; 아니면 화면만 꺼주던지 ㅋㅋ 본체 돌아가는 소리는 음악 크게 틀어놓으면 커버 될듯a
꼭 올려주십시오
발광의 압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