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다윗 왕의 화양연화 》
시 7:1~10
〈 화양연화 〉
오늘 설교 제목은《 다윗 왕의 화양연화 》입니다.
‘화양연화’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말합니다.
《 다윗 왕의 화양연화 》는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했던 시절입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시는 성도 여러분도 ‘나의 화양연화’는 어느 때였는지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 ‘나의 화양연화는?’이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서인지, 딱히 ‘언제다’라고 짚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생에서 다윗의 화양연화는 언제일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화양연화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남의 인생은 왈가왈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위로 형이 최소한 일곱 명 이상인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막둥이가 귀염둥이지만 고대 중동은 정반대였습니다.
막둥이는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하는 천덕꾸러기입니다.
형들은 폼을 잡고 멋을 부리는 동안, 막둥이는 양을 치고, 외양간 똥을 치워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열 일곱 살쯤 되었을 때 다윗에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사무엘이 자기 집을 방문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왕의 재목으로 점찍었습니다.
다윗은 이때 하나님의 영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이스라엘 서남쪽 블레셋의 골리앗이 쳐들어왔을 때, 물맷돌 다섯 개로 당당히 맞섭니다.
그중 하나를 날려 블레셋의 이마에 꽂았습니다. 급소를 맞은 블레셋은 허물어졌습니다.
나라를 구한 것입니다. 온 국민이 다윗을 칭송합니다.
왕 사울보다 소년 다윗의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이에 사울 왕이 위기를 느낍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고자 추격하지만, 다윗은 위기를 벗어납니다.
다윗은 위기를 벗어나 유다지파의 왕이 되고, 이스라엘 온 백성의 왕으로 추대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은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 이러한 다윗의 생애 중 화양연화는 어느 때였을까요?
〈 다윗 왕의 화양연화 〉
많은 사람이 다윗의 화양연화라면, 다윗이 왕으로서 선정을 베풀던 시기를 꼽을 것입니다.
다윗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앙을 받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한국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지낸 시기는 역사적으로는 황금기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기가 다윗 생애의 화양연화였을까요? ~ 저는 관점을 달리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 나라는 태평성대를 맞이했으나, 그의 인생은 배배 꼬였습니다.
밧세바를 성폭행하여 왕비로 삼으면서 가문의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 다윗 생애 중 화양연화로서 저는 먼저 두 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쓰러뜨리던 때입니다.
둘째는,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 다니던, 그 시기를 꼽고 싶습니다.
두 시기 모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성령이 충만했던 시기’라서 그렇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그 때를 다윗의 화양연화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다윗은 국민의 열화같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 국민적 성원이 왕을 훨씬 능가했습니다.
☞ 그러나 저는 다윗이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 왕을 살려주었을 때가 아닌가 합니다!
사울 왕은 군사 3천 명을 이끌고 다윗을 죽이고자 추격하는 중입니다.
다윗이 엔게디의 한 동굴에 숨어 있을 때, 사울 왕이 용변을 보고자 그 동굴로 들어옵니다.
용변을 보는데 호위병사가 따라 들어올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마음만 먹으면 사울 왕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울을 내가 죽일 수 없다!” 참으로 성령충만입니다.
똥 누고 있는 사울 왕 곁에 살며시 다가가 옷자락을 베어냅니다.
사울은 이것도 모르고 볼일 다 보고 나갑니다. 이때의 다윗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때가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화양연화로 저는 주장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살려줄 뿐 아니라, 자신이 사울 왕의 옷 자락 벤 것조차 괴로워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에 온전하게 사로잡혀 있다는 반증입니다.
저는 이 때의 다윗이 그의 인생에서 최고로 하나님과 가까웠던 시기로 보고싶습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얼마나 은혜가 충만합니까?
자기 자신은 돌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는 것만이 최고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란 바로 이런 것인 줄 믿습니다.
시편 7편은 바로 이때, 다윗이 최고조로 성령에 감동되어 있으면서 쓴 시편입니다.
☞ 시편 7편을 쓸 때, 성령충만! 최고조에 이른 때, 바로 다윗의 화양연화입니다!
〈 시편 7편의 이해 〉
시편 7편은 이처럼 다윗의 화양연화를 알고 읽을 때 은혜가 더욱 빵빵합니다.
시편 7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하나님의 영,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혀있을 때!
그때 나온 명시입니다.
(1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사울 왕이 똥 누울 때, 다윗은 자기가 직접 자기 목숨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믿음! 완벽합니다.
조금의 틈도 없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1절 말씀이 공연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화양연화, 얼마만큼 성령에 감동되어 있느냐가 판단 기준입니다.
다윗이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 왕을 살려주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화양연화이고, 그 상황에서 시편 7편이 나옵니다. 그래서 명시입니다. 할렐루야~
세상과 짝하며 살다가, 아쉬우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쓴 시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이렇게 한글자 한글자 적어내니 시 중의 시, 명시입니다.
3절 4절 5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결백을 호소합니다.
지금 저들이 죄 없는 나를 잡아 죽이려 합니다.
만일 그들이 주장하는 죄가 나에게 눈꼽만큼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징계하옵소서!
아, 과연 어떤 시인이 이렇게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아니면 이런 시를 쓸 자가 없습니다.
다윗의 성령충만, 누가 다윗을 따라가겠습니까?
화양연화, 사람의 인생에서 어느 한 때입니다.
안타깝지만, 다윗에게도 화양연화는 한 때, 한 시기였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부터 다윗은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밧세바를 강제로 취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죄악은 어찌 됩니까?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단 한 가지도 그냥 넘기시지 않았습니다.
☞ 다윗도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고난의 질곡을 통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 나의 방패 〉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사건으로 다윗의 가정사는 질곡에 빠지고 맙니다.
시편 7편 3~5절에서 탄원한 내용이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아픔을 당합니다.
(3~5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다윗이 이렇게 시를 읊을 때, 자신의 화양연화 시절에 읊었습니다. 그때는 그때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이 이러한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벌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아홉 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한 죄, 하나님은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모르지 않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자기의 죄를 지적했을 때, 그 즉시 통회자복하고 회개합니다.
밤에 침상을 띄울 만큼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합니다.
젊은 시절, 화양연화 시절,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편 7편을 읽으면서 다윗 인생 전체를 떠올리면서 읽으면 다윗은 위선자입니다.
시편 7편은 다윗이 참으로 성령에 충만하고 순전했던 시기에 적었습니다.
시편 7편은 후대 사람들의 화양연화 시절, 그 때에 읊을 수 있도록 전래되었습니다.
이 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대대로 노래하도록 시편에 수록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인생이 이러합니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있습니다.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다윗 왕의 화양연화, 그 시절 다윗의 믿음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 오늘 시편에서 백미는 10절입니다.
(10절)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방패는 사람이 만든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창이나 칼도 뚫지 못하는 방패를 만들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면서 어리석게도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칼과 창을 만들었다고 기고만장합니다.
그래서 모순(矛盾)입니다. 인간은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 만들지 못합니다!
☞ 나의 방패는 하나님께 있도다! 최고의 싯귀입니다!
〈 우리들의 화양연화 〉
다윗에게 화양연화가 있듯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는 줄 믿습니다.
그 때를 떠올리면서 시편 7편을 음미합니다.
참으로 귀한 시편입니다.
다윗에게 인생 우여곡절과 고난과 질고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런 때에 읽기 합당한 다윗의 시편이 또 풍성합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시편 7편을 읽으면서 우리가 초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던 순수 신앙을 품었던 우리 신앙의 화양연화입니다.
시편 7편은 우리 신앙의 화양연화를 음미하게 해 줍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시절이 화양연화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영이 나를 휘어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우리 생애 중 황금기 곧, 화양연화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합니까?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다가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다윗 왕의 인생 황금기, 화양연화!
왕으로서 천하를 호령하던 때가 아닙니다.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호의호식하던 때가 아닙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엔게디 광야 동굴에 피신하여 숨조차 크게 못 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윗 왕에게는 바로 그 시절이 다윗 왕의 화양연화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인생이 고달프고 힘이 드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질곡의 시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만이 소망이 되어 주는 때,
지금이 당신의 화양연화, 지금이 여러분의 황금기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