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러브 미
조성자
오늘 뉴스에 어버이날 부모들이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가 떴다. 두 번째가 전화, 세 번째가 편지라 한다. 말의 홍수시대에 살면서도 전화와 편지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엄마 사랑해를 듣고 싶은 것이다. 두 유 러브 미?
그러니까 그 러브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것은 아니고, 부모 자식 간의 것인데 여하간에 “사랑해”라고 표현한다. 언제부턴가 이 ‘사랑해’라는 말이 변신을 해서 막무가내로 쓰이는가 싶다. 하와이의 ‘알로아’처럼 전라도의 ‘거시기’처럼 열 가지 이상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가슴 뛰게 하는 원본이 엄연히 있었거늘,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또 한 것이다. 대략 1980년 이후의 사태 같은데 컬러텔레비전이 들어오고 드라마가 생기고 할리우드 영화를 접한 때가 아닌가 싶다. 변신 전의 ‘사랑해’를 편의상 A라고 부르고 요즘 쓰이는 문어발식 ‘사랑해’를 B라고 해보자. A가 원조다.
A는 내가 클 때만 해도 몹시 귀했다. 최소한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는 주변에서 이 말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말은 어찌나 귀한지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그중 일인이 벅차오르는 가슴의 열정을 어찌하지 못할 때,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을 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면서 기와 혼을 다하여 하는 말이었다. 그 둘만의 언어여서 주변 사람은 모르기 십상이다. 아마도 평생 한 사람에게 할 수 있거나, 슬픈 역사가 끼어있을 경우 두 번쯤 하는 말이었다. 그 이상은 결코 말하지 못했다. 남자고 여자고 말이다.
돌이켜보니 A는 나보다 윗세대에서는 더욱 희귀한 말이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시골에 사는 장수 노부부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프로를 하는데 보면, 잘 단장시켜서 두 사람에게 서로 사랑고백을 하도록 만든다. 어색하기 그지없어 하며 칠십팔십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랑해”를 말한다. 아마 평생 처음 말해 본 경우일 것이다.
B를 세분해 보자면 먼저 부모님께 말하는 ‘사랑해’가 있다. 어버이날의 sns 글들도 거의 불효를 후회하는 글들이 많은데, 그중 다수는 부모님 살아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랬다. 한 번쯤은 얼굴을 보며 아버지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할 것이었다. 말을 하나 안 하나 진실은 있지만 말로 표현할 때 나의 부모가 더 행복하셨을 것이므로. 자주 하지 않고 딱 한 번 말했었더라면 한다. 이런저런 말도 많이 했으련만 사랑한다는 말은 안 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흔하디 흔한 B로 탈바꿈할 줄 차마 몰랐던 것이다.
B 중엔 친구나 지인에게 보내는 말도 있다. 핸드폰의 역할이 막중한 경우다. 하트 모양의 기호와 이모티콘의 등장으로 이제 우리는 일초도 고민하지 않고 ‘사랑해’를 남발한다. 연락해주어서 사랑하고 송금해줘서 사랑하고 모임에 못 가게 돼서 또 사랑하고 좋은 주말 보내라고 하니 또 사랑한다. 모르면 몰라도 내가 폰으로 날린 하트가 천 개도 넘을 듯하다. 엄청난 사랑이다.
이리도 B가 넘쳐나다 보니 A는 맥을 못 춘다. 진실을 심장 가득 담고 “사랑해”를 말해도 어제 폰에서 받은 “고객님 사랑합니다”와 다른 티를 내도록 노력을 가해야만 한다. A가 A처럼 들리지 않으니 혼돈스럽고 야속한 마음까지 든다. 윗사람에겐 “존경해”랄지, “좋아합니다” 해왔더라면 좋을걸. 자식에게라면 “소중해” 또는 “이쁘다” 정도로 다른 표현을 쓰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사랑해”를 쓰고 보니 연인들이나 부부들이 쓰는 “사랑해”마저 원래의 뜻이나 품위를 잃어버린 것이다. rara sunt cara라고 귀한 것이 값진 법. 이제 흔해빠진 “사랑해”로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마저도 자극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벤트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것인가, 말로는 약하니.
이미 팽배한 B가 원본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수 없기에, 그리고 솔직히 말해 연로한 나로서 A를 다시 쓸 일도 요원하기에, 나만이라도 슬쩍 빠져나가서 다른 말로 써 볼까 생각 중이다. 가령, 친구지간에는 “자네는 소중해”, “고맙네” 등을 쓰고 자식들에겐 “니가 좋아”, “예쁘다”, “널 보면 기뻐” 등으로 B를 대체할까 한다. 아니면 A의 단어를 아예 바꿔서 “은애합니다”랄지 “나의 마음에 그대가 있습니다”라고 하든가. 쓸 일이 생긴다면 말이다.
변해 버린 말을 놓고 내 속으로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 무수한 사람들이 사랑을 주고받고 있을 것이니 나 혼자만의 헛공상이다. 하기야 진정 A에 빠져있는 두 사람이라면 “사랑해”라고 말하기 전과 후에 그 말을 한 자와 그 말을 들은 자 사이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니 안심은 된다.
A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추억도 할 겸, 우리 가요에서 최고의 사랑 노래라 꼽는 <꽃과 나비>를 듣는다. 박인수 노래 중 으뜸이다. 저절로 “사랑해”가 뿜어져 나오는 환희의 순간이다.
꽃과 나비
새파란 하늘 위에
빨간 해님 춤을 추네
무지개다리 위에
노랑새가 시를 지어
노래하네
나비 꽃을 찾아서
날아 한없이 가네
멀리 꽃잎이 피면
사랑 노래 들리네
울긋불긋 꽃과 나비
모두 엉켜서 속삭이네
2022년봄
광주문인협회지
102호에 실린 작품임.
첫댓글 '은애합니다'라는말을
쓸일이있으면좋겠네 ㅎ
재미있고도 기발한글로
절로웃음짓게해주는
성자야~♡해 ^^
ㅇㅋ 글못쓴지3년이시.저건 3년전 쓴것. 요즘은 영감신이 강림 안해. 암래도 건강한 여인이 좋겄제.ㅋㅋ
영감신이 강림하기를 바램
자비: 엄마가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마음
사랑: 상대적인것
사랑하기에 ㅇㅇ 한다 라는말
이해가 안되요
멍하니 세상 흘러가는대로 사는 것과
언어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가지며 아파하는 지성은 참 부러운 일인데
아무려나 가슴이 움직이지를 않아요 ~
건강이최고여요,만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