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12-14; 요한 2,1-11
+ 오소서, 성령님
비가 오는 바람에, 오늘 성모의 밤을 야외에서 하지 못하고 성전에서 해서 좀 섭섭하네요. 그죠? 그런데 아마 이것이 제 탓인 것 같은데요, 오늘 말씀을 매일 미사 4월호에 나오는 ‘사도들의 모후’ 성모님 신심 미사 말씀으로 정했는데, 제1독서를 보면 성모님과 제자들이 방으로 들어가거든요? “그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아마 이 구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우리 성당의 위층 방인 성전 안에서 성모의 밤을 봉헌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성모님을 모시고 성령 강림을 준비하면서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는데요, 다음 주 성령 강림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역시 성모님을 모시고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앞에 성모님을 모시고 있지만, 우리가 이 시간을 성모님께 봉헌한다기보다, 성모님과 함께 성령을 청하며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LED 초를 사용했는데 어떠셔요? 물론 야외에서 하면 촛불을 봉헌하겠지만, 실내인 점을 감안하여 LED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폐암으로 투병 중이시던 아버지를 병간하면서 병원에서 여러 날을 잤는데요, 다른 환자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담배는 물론 무엇을 태우는 것 자체가 제대로 환기하지 않으면 호흡기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300개의 초를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켜놓는 것은 여러분의 호흡기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이렇게 LED 초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라는데요, 거창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미루기 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확실한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소확행’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을 쓴 일본의 어느 수필가는 ‘갓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정돈된 속옷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자신의 ‘소확행’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는 최근 방송인 이경규 씨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였는데요, 이경규 씨는 ‘소확행’이 아니라 ‘대확행’ 즉 ‘크고 확실한 행복’을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도시락을 하나 싸준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행복해한다. 소확행이다.” 이경규 씨는 이것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아니예요. 어머님이 계시다는 자체로 행복한 거예요. 도시락 안 싸 줘도, 부모님이 계신 것만으로도 나는 고맙다.”
부모님을 여읜 분들은 이 말씀이 어떠한 의미인지 더 잘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차 ‘지금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여의신 분들은, 빈자리가 크시겠지만, 사랑하는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거기에서 ‘대확행’을 발견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에게 성모님이 계시다는 것은 ‘소확행’인가 ‘대확행’인가 생각하여 봅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통하여 묵주기도를 드리지만 내가 드린 지향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기도의 지향을 들어주시는 것을,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 주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머니가, 즉 성모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엄마한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히 얘기하듯, 우리는 성모님께 우리의 일상사를 얘기하기도 하고, 말을 갓 배운 어린 아기가 ‘엄마’, ‘엄마’하고 반복하듯 우리는 묵주기도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으시고 눈여겨보시며, 어려움을 함께하여 주십니다. 다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해도 어머니만 알 수 있는 그러한 일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성모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어느 혼주가 일부러 술을 부족하게 준비하겠습니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술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신랑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그것이 저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때란 ‘수난과 부활과 승천의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을 ‘여인’이라 부르시는데, ‘여인’이라는 칭호는 창세기에 나오는 ‘여인’, 즉 하와를 대체할 새로운 여인, 모든 인류의 어머니가 되실 성모님의 지위를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여인’이라 부르신 것은 요한복음에 두 차례 나오는데, 다른 한 번은 십자가 아래에 계신 성모님과 사랑하시던 제자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실 때입니다.
두 번 다 성모님은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서 모든 인류의 어머니실 뿐 아니라 당신 제자인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셔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제자 가운데 첫째가는 제자가 바로 성모님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네가 기적을 일으켜서 포도주를 좀 만들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대답을 들으신 후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청원 기도를 드리며, 우리에게 필요한 바를 말씀드릴 뿐 아니라, 예수님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시라고 일일이 지시하거나, 가르쳐드리거나, 설명하려 애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무엇이 부족한지만 말씀드리고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고 대답드릴 때처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간절히 묵주기도를 드린 다음에 성모님께 듣게 되는 대답일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꼭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 온전히 맡길 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니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는 말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고,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결혼 잔치는 무사히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메시아 시대에 대한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우리가 묵주기도 빛의 신비에서 이 신비를 기념하는 이유는, 이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기적이 예수님으로 인해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시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인류의 혼인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여러 제도와 축제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데, 오늘 복음에서는 가장 먼저 정결 예식을 바꾸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시지만, 원문을 직역하면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유다인들을 가리킵니다. 유다인들의 예식은 이제 그 기능을 다하였고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혼인은, 그들의 예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지적을 성모님은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때에 이루실 성체성사의 전조가 되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정결례에 쓰는 물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신 뒤 그것을 포도주로 바꾸심으로써, 단순히 몸만 깨끗하게 하던 정결례를 폐지하시고, 당신 피로 하느님과 우리와의 계약을 새롭게 맺으실 것임을 미리 보여 주십니다. 이 기적이 파스카 축제가 있기 얼마 전에 일어난 것이라는 말씀(요한 2,13) 또한 성체성사와의 연관성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카나에서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시는, 하느님과 우리의 혼인이 완성되는 성체성사의 표징이 됩니다.
성모님께서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예수님께 드린 말씀은, 단순히 가난한 신혼부부의 사정을 잘 보아달라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을 갈망하고 있는 가난한 인류가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청원의 말씀이며, 우리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려움을 주님께 전해주시는 전구의 말씀입니다.
시편의 말씀대로 우리가 “오직 하나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당신의 성전을 우러러보며,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그것이어니” (시편 26,(27),4) 성모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그것을 누리도록 빌어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시편 133,1)라는 말씀 안에서 올 한해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 성전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성모님의 밤을 지내는 것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대확행’입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확행’입니까.
성모님께서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확실한 행복’입니까.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확실한 행복’입니까.
성모님과 함께 우리 형제자매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성령 강림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초대 교회 제자들이 마주했던 그 뜨거운 성령 강림의 대확행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지오또, 카나의 혼인 잔치, 14세기
출처: Giotto - Scrovegni - -24- - Marriage at Cana - Wedding at Cana - Wikipedia
2026년 성모의 밤, 노은동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