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6년 9월 20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오랫만에 탁구 삼총사가 만났습니다.
탁구 삼촘사........
독특한 상황을 함께 겪으며 탁구로 다진 우정은 영혼의 닻이 되었습니다.
모두 운동을 좋아하는 성향은
탁구 동호인의 교제를 나누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페의 글을 통한 삼겹줄로 엮인 복음의 전사여서
뿌리 깊은 사역의 동력을 가진 동역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탁구와 함께 나누는 교제는 허물없는 대화로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운데
우리 허 강도사님께서 언드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허득 공의 후손인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언드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허득 공은
우리 나라 최초 자생적으로 설립한 소래교회를 세운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와 함께
백령도의 중화동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1898년도에 설립된 중화동 교회는
백령도 진의 참사로 있었던 허득 공이 당시 유배 온 김성진 황학영 장지영 등과 함께
허득 공의 한학 서당에서 중화동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훗날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사람이 된 서경조가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백령도는 1832년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로는 처음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으며
1865년 토마스 선교사가 성경책을 나눠주며 두 달 동안 머무르며 선교한 것이
50년만에 열매를 맺어 중화동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개신교는 1884년 알렌 선교사가 입국하기 50여년 전에
백령도에서 귀츨라프 선교사가 선교 활동을 하였고
대동강변에서 1866년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가 1865년에 백령도에 두 달 동안 머무르면서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선교사에 의해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우리 나라에서 소래 교회를 이어 자생적으로 세워진 두 번째 교회인
백령도의 중화동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언드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소래 교회를 세운 서상륜의 형제 서경조와 함께 중화동 교회를 설립한 허득 공은
슬하에 4남 2여를 두었는데 그 손자로 허간 목사와 허응숙 목사가 있으며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 받은 허성묵도 허득 공의 손자입니다.
글을 쓰는 중 허강도사님이 "백령도에서의 기독교 기원"이라는
이상규 고신대 교수가 쓴 논문을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허득 공의 후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슬하에 4아들을 두었는데, 허근, 허식, 허익, 허권입니다.
장남 허근의 아들이 허간인데, 후일 목사가 되어 백령도복음화에 기여하였고
황해노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허간의 아들로는 허태운 등이 있습니다.
허득의 차남 허식은 5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허백이었고,
허백은 태섭, 태걸, 태협, 태식 등 4남매를 두었습니다.
장남 태섭은 인천 학익동교회 장로가 되어 교회를 위해 귀한 봉사를 감당했는데,
슬하에는 6남매를 두었는데 경환,경찬,경보, 그의 막내 아들이 허경보입니다.
장남 태섭의 막내 아들 허경보는 울산동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1993년 9월 2일에는 집사로 장립하였고,
2005년 6월 18일에는 장로로 장립을 받고 현재 당회서기로 봉사하는 한편
교회 여러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허경보 장로님은 허찬용 강도사님의 부친인데
몇 년전 교회당 건축을 할 때 3억원을 헌금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선조를 둔 허 강도사님은
10월달 가을 정기 노회에서 4남매의 아버지로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중화동 교회를 설립한 허득 공의 직계 후손으로
목사 안수를 받는 감회는 남다를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6대가 믿음의 가정이요, 그 자녀들까지 7대가 예수 믿는 가정이라면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같이하는 뿌리 깊은 신앙의 가정,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허 강도사님은 휼륭한 장로인 아버지와 권사인 어머니를 두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오토바이 라운딩을 즐기며 바이커로 도발적인 험난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21살에 중국 단기 선교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잠자던 신앙의 영이 깨어 선교에 눈을 뜨고
사명감으로 중국에 그대로 정착하여 선교사의 일을 도우며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해병대 헌병을 군복무를 험난하게 보내고 더욱 강인한 전사의 정신으로
선교사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총신을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다산 교회 부교역자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4년 동안 다산 교회의 부교역자의 생활은 20년 사역의 담임 목사가 쫓겨나고고
새로운 담임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과, 그 후 질풍노도의 광풍이 대작하는 풀무의 연단을 받고 있습니다.
사역의 빛과 그늘을 모두 경함하는 그 가운데서 받게 되는 목사 안수는
해병대 헌병보다 더 험난한 사역의 훈련을 오롯이 받은 결실이요, 그 열매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위 하늘에서 온 편지라는 중국의 영성과 복음과의 큰 충돌의 과정을 겪으면서
허득 공의 6대손이라는 명성에 부끄럽지 않는 복음 사역자로 독실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한국 교회의 기원과 그 역사를 같이 하는 허득 공의 후손으로
남다른 사역의 훈련을 받고 받는 목사 안수여서
각처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뿌리 깊은 신앙의 열매를 맺어 자라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어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한국 교회의 기둥이 되며,
허득 공과 같은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빛나는 사역을 훌륭히 잘 감당할 것입니다.
뿌리 깊은 신앙을 가진 나무로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이룰 것입니다.
마침내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는 에스겔의 메시야 예언을 따라
참 좋은 언약의 일꾼이 되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풍성히 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