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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2) 요한묵시록 저자, 요한
‘요한묵시록은 누가 썼을까’라는 물음에 우리는 주로 역사의 한 인물을 찾으려 애쓴다. 예컨대, 파트모스섬에 갇힌 사도 요한을 떠올리는 것이다. 2세기의 유스티노나 이레네오 교부의 증언을 시작으로 교회는 사도 요한을 요한묵시록의 저자로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요한이라는 이름은 ‘원로 요한’ 혹은 ‘마르코라는 요한’(사도 12,12.25; 13,13 참조)으로도 소개되기에 역사적 저자에 대한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혼재되어 흩어진다. 물론 여기에 ‘요한복음의 저자와 요한묵시록의 저자가 같은 요한인가’라는 질문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현대 주석학의 발전으로 요한묵시록이 한 시대, 한 사람의 작품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게 된 이후 요한묵시록은 이른바 ‘요한계 학파’라는 어떠한 사상을 공유하는 하나의 ‘공동체적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여,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역사의 한 인물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요한묵시록이라는 책이 소개하는 저자의 문학적 실루엣이다. 요한이라 명명된 저자는 ‘하느님의 종’(묵시 1,1 참조)이자 ‘환난을 함께 겪는 형제이고 동반자’(묵시 1,9 참조)이다. 또한 자신이 본 것을 직접 써 내려가는 작가의 면모 또한 요한으로 소개된다.(묵시 1,11.19 참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요한은 모든 민족에게 ‘예언’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기도 한다.(묵시 10,11 참조) 그러나 그는 파트모스섬에 갇혀 있다. 형제와 함께 환난을 겪고 형제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써 보내야 하고, 나아가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요한은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떨어져 있다.
그의 공간적 단절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증언은 역설적이게도 두 가지 대립 개념을 하나의 통합적 사유로 조망하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증언 때문에 요한은 ‘환난’을 겪고 있고, 그럼에도 증언을 통해 독자들을 행복으로 이끌고자 한다는 것.(묵시 1,3;22,7 참조)
요한이라는 인물의 묘사는 물리적 거리감을 기반으로 한 어느 영웅의 희생적이고 특별한 삶을 기리는 데 소용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환난’을 ‘함께’ 겪는 형제적 일치가 하느님과 어린양이신 예수님과의 일치가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요한묵시록을 읽는 수많은 형제와의 일치로 확장되고, 그 일치를 요한은 ‘행복’이라는 단어로 환치해서 소개하고 있다.
요컨대, 요한은 특정 시공간의 범주를 뛰어넘어 신과 인간의 일치를 위해 보고 쓰고 선포하는 행복의 매개체다. 요한을 따라 요한묵시록을 읽어나가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환시는 신과 인간의 일치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장치가 된다. 요한이 처음 본 ‘사람의 아들’이 대표적 경우다.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묵시 1,17-18) 요한이 본 것은 특별하고 생소한, 그리하여 흔한 유다의 묵시문학들이 제공하는 천상의 화려함에 있지 않다.
다만, 여느 ‘사람’, 그 ‘사람’을 통해 신적 신비를 보게 될 뿐이다. 종말의 시대에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람의 아들’(다니 7장 참조)을 예수님께 적용한 요한묵시록은 신적 신비를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환시는 사람에 대한 사유, 예수님을 통해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신적 가치가 사람의 가치 안에서 어떻게 사유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다시 요한이 갇힌 파트모스섬이라는 공간과 요한의 선포가 끝없이 펼쳐질 무한한 공간의 연결성에 대해 사유해 보자. 한 사람이 겪는 환난의 공간이 행복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사유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으로 머물게 된 환난의 공간에서 요한은 이미 형제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요한은 파트모스라는 단절의 공간에서 이미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그리하여 모든 대립과 단절을 뛰어넘는 ‘사람의 아들’을 보았고 전하게 된다. 단절이 초월이 되고 환난이 행복이 될 수 있는 건, 놀랍게도 철저하게 한 공간에 머물며 자신이 보고 듣고 쓰는 것에 집중한 요한 덕택이다.
하나의 공간에서 수많은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초월적 지식이나 정보 때문만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제한적이고 한계적이라 해서 천상의 하느님을 읽어낼 수 없다는 것에 요한묵시록의 저자 요한은 저항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굳이 우리가 천상적 삶과 거기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염두에 두는 입장에 선다면, 모든 인간적 삶과 거기서 오는 행복은 얼마간 부족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요한은 달랐다. 시공간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제 삶의 환난을 기꺼이 짊어지며,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은 진솔하고 담담히 적어 내려갔을 뿐이다.
요한은 자신의 시공간과 다른 또 하나의 시공간을 꿈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어진 시공간을 저만의 왕국으로 만들지 않았다. 갇혀 있으되 열려 있는, 고요하되 수많은 말들이 이곳저곳에 울려 퍼지는, 그러한 자리를 요한은 파트모스에서 만들어 갔다. 제 삶에 두 발을 디디고 굳건히 서 있을 때, 하늘의 계시는 가장 찬란하고 완전하게 온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제 삶에 가장 순수하고 진솔할 때, 하늘의 계시는 가장 선명한 행복으로 그 삶 안에 육화할 것이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54)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다리, 세례자 요한
튀르키예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에 파병했고, 튀르키예군은 유엔군 안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고 후퇴를 모르는 군대라는 칭송을 받았다. 지금도 튀르키예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형제의 나라라며 친근감을 보이고 있다. 수도 이스탄불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연결하는 보스포루스대교가 유명하다.
2016년에는 튀르키예의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이틀 만에 실패했다. 당시에 인기가 하락한 에르도안 대통령을 축출하려던 시도는 불발로 그쳤다. 당시 쿠데타가 실패한 데에는 SNS가 큰 역할을 했다. SNS로 시민들은 거리로 일시에 쏟아져 나와서 보스포루스대교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군사 작전에서 보안이 생명인데 쿠데타군과 시민들의 대치가 개인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되었다. 방송국 몇 곳을 장악한 쿠데타군은 모든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었다. 보스포루스대교에서 쿠데타군의 탱크를 막아서는 수많은 시민들은 세계에 아주 큰 인상을 남겼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 불린다. 성경에서 보면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고, 아버지는 제사장인 즈카리야,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다. 요한은 어린 시절부터 광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시험과 시련의 장소이기도 했다.(탈출 15,22-26) 동시에 하느님과의 친교 장소로 그분의 보호와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였다.(탈출 16,32) 신약성경에서 광야는 고행이나 수련, 정화, 기도의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극기 생활을 하면서 회개와 세례를 촉구했다.
군중들은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 혹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인물로 믿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고하고 그 표지로서 세례를 받을 것을 외쳤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고 회개의 필요성이 절박하다고 생각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고 생활에서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 외에는 징수하지 않아야 하고 군인들은 무력한 백성들을 억압하여 착복하는 것을 금지했다.
세례자 요한의 교훈들은 당시에 만연한 과중한 징세와 권력의 남용이 공공연한 부패한 사회상의 반영이라고 수 있다. 예수님도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자 요한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마르 1,7-8)라고 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한 구약이 마지막 예언자가 된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왕에게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에 대해서 책망을 하며 정권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결국 사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세례 운동은 이후에도 한참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1) 계시와 상상
신악성경의 마지막인 ‘요한묵시록’을 1장부터 차근차근 읽어가며 묵상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프랑스 리옹가톨릭대학교에서 요한묵시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대구대교구 문화홍보국장)와 함께 신앙인의 믿음과 삶의 문제를 질문하면서 지금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성찰해 본다.
요한묵시록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상상’(想像)이란 단어에 집착한다. 실제로 요한묵시록은 ‘상상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을 근본주의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에게 이런 생각은 낯설고 불편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Ἀποκάλυψις Ιησοῦ Χριστοῦ)는 미래에 펼쳐질 사건들의 기록이 아니다. 예전부터 유다 사회 안에 켜켜이 쌓여 온 신앙의 흔적들을 주섬주섬 끌어모아 예수님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시 읽어낸 게 요한묵시록이다.
요한묵시록이 적혀진 시절(1세기 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들었고 알고, 그래서 믿고 있던 터였다. 그분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알고 싶어 요한묵시록을 쓰고 읽은 것이 아니라 그분을 두고 이 삶을, 이토록 애틋하나 힘겨운 삶을 어떻게 짊어지고 나갈까 ‘상상’하며 쓰고 읽고 간직한 게 요한묵시록이다.
대개 요한묵시록을 공부한, 혹은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은 주석서들을 찾기 마련이다. 주석서에 기록된 내용들의 대부분은 문법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역사적 상황에 대한 열거, 또 아니면 구약 이곳저곳에 요한묵시록과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이를테면, 글의 ‘지시적 기능’에 충실한 것이 요한묵시록을 바라보는 주석서들의 흔한 경향성이다.
이 단어는 원래 이런 뜻이다, 실제 역사에서 이 상징은 이렇게 읽혔다 등등 역사적 맥락 안에서 요한묵시록을 설명하려 하는 것이고, 대개의 신앙인 역시 요한묵시록의 수많은 상징들이 지시하는(가리키는) 사건이나 사람, 혹은 실제 상황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는 게 사실이다.
그런 주석서의 내용들은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쓰고자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글의 지시적 기능에 대해 간과할 수 없고 당연히 설명해야 하겠지만,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상징과 표현들을 적어 내려가야만 했던 요한묵시록의 공시적(共時的) ‘의도’에 있다. 이 ‘의도’는 한 시대, 한 시절의 이야기로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수많은 역사서들을 읽어나갈 때, 그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넘어 지금 우리 삶에 어떤 교훈이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지 우리는 묻게 된다. 요한묵시록도 마찬가지다. 1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요한묵시록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2000년 전 그들만이 아닌, 지금의 우리, 미래의 암묵적 독자들에게까지 열려 있다. 2000년 전 글인 요한묵시록이 당시 어떤 의미로 읽혔다는 주석적 분석은 필요한 것이나 지금과 미래의 모든 독자들이 그렇게만 읽어야 한다는 것은 꽤나 진부하고 게으른 일이 될 수 있다.
성 그레고리오 교황께서 말씀하셨듯 ‘성경은 읽는 이와 자라는’ 역동적인 생물체고 이것은 비단 성경뿐만 아니라 독자를 만나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어 놓는 모든 글의 본성이자 운명이다. 오늘날 글의 지시적 기능에 매몰된 주석서에 의존한 성경 읽기는 수많은 신앙인, 그리고 성경의 수많은 독자들의 다양한 읽기 앞에 필자 자신의 한계성과 편협함을 반성하는 게 옳다. 우리는 끝없이 요한묵시록을 읽을 것이고 그 읽기의 결과는 전혀 기대치 않은 신앙의 다양한 결과물들로 쏟아질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글의 문자적 의미와 지시적 의미에 치중한 ‘주석’의 작업 너머 오늘날 우리에게 이 상징과 표현들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고, 어떻게 살아내어야 할 것인지 캐묻는 ‘해석’의 작업이 필요하다. 달리 말해, ‘요한묵시록은 이 상징과 표현들을 통해 왜 이렇게 상상했을까’ 하는 지금 이 자리에서의 사회적 사유와 묵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한묵시록을 통해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고민하는 것은 지난 시대에 실제로 벌어진 역사의 흔적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예수님을 묻고 또 물어 얻어낸 것이 갈릴래아의 지형과 그분이 실제 하신 말씀, 혹은 그분의 연대기적 활동 흐름 정도라면, 요한묵시록을 해석해서 얻어낸 것은 천상과 지상, 태초와 종말의 시공간적 연대 안에 ‘어린양’으로서 늘 함께하시는 초월적 존재의 예수님이다. 역사의 예수님을 좇아가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요한묵시록의 시대를 살아간 신앙인들 안에 여전히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고 해석해서 얻어 낸 결과가 요한묵시록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읽어나갈 요한묵시록의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예수님은 지금 나에게 도대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시작하는 요한묵시록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의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도, 내일도 살아계신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읽혀져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 “요한묵시록은 어떻게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주는가?” 요한묵시록에 “행복하여라”라고 하는 말마디는 총 일곱 번 나온다. ‘일곱’이라는 숫자의 묵시문학적 가치는 ‘완전함, 풍성함’ 정도로 해석되는데, 요한묵시록은 자신의 독자들에게 완전하고 풍성한 ‘행복’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다.
필자는 가톨릭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동안 이 두 질문에 계속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요한묵시록의 수많은 상징들을 통해 물을 것이고 그 물음의 답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행복한 삶으로 전해질 것인가 또한 물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의 끝이 또 다른 우리 삶을 ‘상상’하는 신앙의 기폭제이자 신앙의 사회학적 전망이 되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요한묵시록의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수많은 상상을 통해 간절한 기다림과 설렘으로 당신을 바라보길 원하신다. “그렇다, 내가 곧 간다.”(묵시 22,20) 요한묵시록의 끝이 이렇게 끝나는 건, 바로 상상의 자유로움을 위한 예수님의 배려가 아닐까. 이미 오셨지만, 아직 오셔야만 한다는 예수님은 그분을 이미 만났으나 아직 기다리는 우리 삶을 그분에 대한 상상과 해석의 풍요로움으로 가꾸길 나가길 바라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53) 고통 중에도 희망의 기도 드린 토빗
‘교황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1732-1809)은 열성적인 그리스도교인,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하이든은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는 작은 기도방이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이 그의 유한한 피조물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작은 기도방에서의 기도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이든은 동료 음악가에게 “나는 일에 지치게 될 때 작은 기도실로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제 경험으로 이 방법이 성공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기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하이든의 곡은 특별히 기쁨에 넘쳐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 역시 기도 중에 주님을 묵상할 때 무한한 기쁨이 넘쳐나며 행복으로 춤추는 악보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처럼 하이든의 곡들은 기도 자체였다. 1808년 그가 작곡한 <천지창조>가 비엔나에서 연주되었다. 연주가 끝나자 공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며 일어나 하이든에게 감격의 박수를 쳤다. 하이든은 “내가 아닙니다. 이 음악은 하느님에게 나온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말했다.
토빗기는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 시대에 티스베에서 포로로 끌려간 토빗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토빗 1,2 참조) 토빗은 살만에세르 시대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궁궐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관리였다. 이후 살만에세르가 죽고 그 아들 산헤립이 왕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비참하게 죽은 이스라엘 사람의 장례를 지내다 임금의 눈 밖에 나 벗어나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어느날 토빗은 낮잠을 자다가 불행하게도 새의 배설물에 의해 두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생활을 이어나가던 토빗은 자신의 어려운 생활을 하소연하는 기도를 하느님께 바쳤다. 기도를 들은 하느님은 라파엘 천사를 보내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토빗의 이야기는 사실 유배로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토빗기의 주제는 하느님의 섭리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있다. 보통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과 결과를 연결시킨다. 토빗서는 유배 시대, 특히 페르시아의 영향 아래 신앙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여 준다.
토빗은 자기의 개인적인 운명뿐만 아니라 유배를 당한 동포들의 운명도 예언자들의 빛으로 해석한다. 토빗은 때가 되면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고 예루살렘은 눈부시게 화려한 모습으로 재건되리라는 밝은 희망을 선포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 토빗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 책의 절정도 기도로 장식된다.(토빗 13장 참조) 포로 생활과 나그네 살이라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을 안고 미래를 향하면 시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행복에 이른다는 것을 알려준다.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기도하는 토빗의 모습은 유배지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 하늘나라를 향한 여정 중에 있는 기도하는 이의 전형이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목자와 동방 박사
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광야로 둘러싸인 고장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그곳에는 가축을 돌보는 목자들이 많았습니다. 광야에서 방목을 했던 건 왜냐면, 농부들이 목자들을 경계한 까닭입니다. 애써 경작한 밭을 가축이 와서 망칠까 봐 농부들이 경계하였기에(예레 12,10 참조), 이동 생활이 가능한 목자들이 인적 드문 광야로 방목지를 옮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는 늘 목자가 많았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맨 처음 접한 이들이 목자라는 루카 2,8-14의 서술도 퍽 자연스럽습니다.
한편, 마태 2장에서는 유다 임금의 탄생 소식을 접하고 맨 먼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이들이 동방 박사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에서 기준은 이스라엘이기에, 여기서 말하는 ‘동방’은 메소포타미아 방향입니다. 그리고 동방 박사는 페르시아의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계층으로 추정됩니다. ‘조로아스터’는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짜라투스투라’입니다. 동방 박사는 별의 움직임을 보고 시대의 흐름을 읽던 점성술사였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점성술사가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임금도 도구로 쓰시고(예레 25,9) 때로는 이방의 점술로도 사실을 알려주십니다(에제 21,26-28 참조).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다가(마태 2,1) 헤로데의 왕실에서 현인들의 조언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6절).
그래서 베들레헴에는 성지가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목자들이 밤새 양 떼를 지키다 천사에게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들판 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성탄 기념 성당’입니다.
예수 성탄 기념 성당은 성모님이 예수님을 낳으신 마구간 터에 지어진 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짓고, 6세기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재건한 곳입니다. 그런데 전쟁 많은 이스라엘에서 이 성당이 보존될 수 있었던 건 ‘동방 박사와 아기 예수’ 성화 덕분입니다. 7세기 페르시아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군인들은 성화 속의 동방 박사들이 페르시아 복장을 한 걸 보고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이 성당을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지가 보존된 이유가 참으로 극적이지요. 어찌 보면, 멀리서 메시아를 알아봤던 동방 박사들이 죽어서 그분의 탄생지를 지켜준 셈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임금에게 하듯 아기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하였습니다. 페르시아 왕실을 섬기던 그들이 초라한 아기에게 무릎을 꿇었음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먼 곳에서 구세주를 알아보고 찾아와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만나는 기쁨을 누린 동방 박사들은 이후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이방인들의 예표가 됩니다. 그리고 양 떼를 돌보다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달려온 목자들은 이후 선한 목자가 되어 당신의 양 떼를 돌보실 예수님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희년을 보다] 희년
우리 가톨릭교회는 새 세기를 시작하는 2000년을 ‘대희년’으로 기념하였습니다. 특히 한 천 년을 마무리하고 새 천년을 맞이한 해라 더욱 뜻깊었습니다. 이번에도 교황님은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를 발표하며 정기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 일깨우는 하느님의 사랑을 강렬히 체험하도록 모든 이를 초대하기 위하여” 결정하신 희년입니다. 이런 희년은 어떤 배경에서 시작된 관습일까요?
우리의 희년은,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 선언하신 “은혜로운 해”(루카 4,16-21)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에 기초합니다. 레위기 25장 9절부터 10절에 따르면, 희년은 오십 년마다 나팔을 불어 그 시작을 알려야 하는 해방의 해입니다. 백성이 가난 탓에 상속받은 땅을 팔고 자신까지 팔았어도 이 해에 자유를 되찾고 재산도 환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경제적 곤란에서 해방될 수 있으므로 희년(禧年), 곧 ‘복된 해’인 것입니다. 사실 가난해진 백성이 땅을 팔고 자신을 팔아도, 그의 형제나 친족이 나서서 언제든 대신 대가를 치르고 속량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가정의 재산을 대속하다 보면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기에, 희년에는 원주인에게 재산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본인도, 친족도 능력이 없어 되찾지 못한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희년에 그의 친족 또는 후견인처럼 행세하시어 땅을 대신 속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제도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온 땅의 주인이시며(레위 25,23) 이스라엘은 그분의 종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레위 25,55). 더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혹독한 종살이에서 구해 주셨으므로, 백성은 그때를 기억하여 하느님을 한결같이 섬기고 궁핍해진 형제들을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백성은 임금에게 만 탈렌트를 빚졌다가 탕감받은 자와 같고, 백성 가운데 가난해진 형제는 동료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와 같은 셈입니다(마태 18,23-35 ‘매정한 종의 비유’ 참조). 이에 이스라엘은 오십 년마다 토지의 소유권을 원위치시켜, 하느님이 땅의 원주인이자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천명해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우리가 ‘희년’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희년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약자 보호’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사회 보장 제도, 인권 보호, 평등한 기회 제공 등의 노력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이에 더해 우리는 교황님께서 칙서에서 강조하시듯 약자 구제 방안을 더 촘촘하게 마련하여 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의 덫에 걸린 형제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노력 속에서 교회에서 추구하는 시노달리타스, 곧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도 실제로 펼쳐갈 수 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구원의 희망
이스라엘에 가면, 우리말 성경과 구성이 다른 히브리어 성경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말 구약성경은 「말라키서」로 끝나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역대기」가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구세사의 흐름에 따라 구약성경을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나누고, 예언서에서 예고한 메시아를 신약성경에서 증언하는 형태입니다. 그에 비해 유다교에서는 오경(토라)이 가장 신성한 권위를 지니고, 예언서는 토라를 해석합니다. 그리고 성문서는 오경과 예언서를 해석한다는 의미로 마지막에 위치합니다. 이 성문서의 마지막 책이 「역대기」입니다.
「역대기」는 오늘 제1독서인 느헤 8장의 시대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된 책입니다. 「느헤미야기」는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배 뒤 귀향하여 예루살렘 재건을 시작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역대기」의 저작 시기도 유배 이후입니다. 특히 「역대기」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끝납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2역대 36,22-23). 곧 히브리어 성경은 페르시아 임금의 칙령으로 유다인들이 귀향하고, 성전 재건도 허락되는 내용으로 끝나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대목을 전체 성경의 마지막에 두었을까요?
이는 구약성경의 정경화 작업이 마무리되던 기원후 1세기의 상황과 관계됩니다. 기원후 66년 열혈당원들이 로마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진압하던 로마 장군 티투스는 유다인들의 명예이자 자랑인 성전을 파괴합니다. 우리 민족 역사에서, 일본군이 쳐들어와 명성황후를 시해한 상황과 비슷하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암울함 속에서 백성이 절망하지 않도록,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알려주고자 한 것입니다. 유다 왕국은 기원전 6세기에도 바빌론에 무너진 적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봉헌한 제1성전도 파괴되고, 많은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대제국 바빌론은 이후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에게 정복당합니다. 키루스 임금은 바빌론에 끌려온 이스라엘과 여러 소수 민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저마다 자기 신을 섬기고 신전도 지으라고 허가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최종 편집한 사람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 하였습니다. 대제국 바빌론도 주님의 계획 아래 무너졌으니, 제2성전과 관련해서도 구원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로마 역시 때가 되면 권세를 잃고, 이스라엘은 구원받으리라는 희망입니다. 역대기의 마지막 구절에는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라는 키루스의 명령이 나오는데요, 이는 이집트 탈출기의 언어를 떠올리게 합니다(탈출 13,18; 33,1 등). 곧 과거에 주님께서 이집트 탈출을 이끄셨듯이, 이번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 종살이에서 해방해 주시리라는 메시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바로 이런 목적에서 역대기를 마지막에 배치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