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었으면, 악(惡)을 행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 苟, 誠也. 志者, 心之所之也. 其心誠在於仁, 則必無爲惡之事矣. 苟는 ‘진실로’라는 말이다. 志라는 것은 마음이 가는 곳이다. 그 마음이 진실로 仁에 있다면, 곧 반드시 악을 행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如苟日新之苟 진실로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말의 苟(진실로)와 같다.
胡氏曰 苟字有二義 有以苟且爲言者 苟合苟美之類 是也 有以誠實爲言者 此章及苟子不欲之類 是也 호씨가 말하길, “苟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구차한 것을 말하는 것이 있으니, 구차하게 영합함이나 구차하게 미화함같은 부류가 바로 이것이다. 성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있는데, 이 장과 ‘진실로 당신이 하고자 하지 않다면’의 말 같은 부류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方志仁時 便無惡 若間斷不志仁時 惡又生 주자가 말하길, “바야흐로 仁에 뜻을 둘 때에 곧바로 악이 없어지지만, 만약 중간에 끊어져서 仁에 뜻을 두지 않을 적에, 악은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人心不可兩用 志於此 必遺於彼 所患者 無其志耳 夫仁者 此心之全德 誠志於仁 則必先存此心天理之公而去其人欲之私 惡念何自而生乎 면재황씨가 말하길, “사람의 마음이란 두 가지로 쓸 수가 없는 법이니, 여기에 뜻을 두었다면, 반드시 저것은 버려두는 것이다. 걱정할 것은 그저 그 뜻을 둠이 없는 것일 따름이다. 무릇 仁이라는 것은 이 마음의 온전한 덕이니, 진실로 仁에 뜻을 두었다면, 반드시 먼저 이 마음속 天理의 공정함을 보존해야 하여, 그 인욕의 사사로움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악한 생각이 어디로부터 생겨날 것인가?”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此是君子小人分路 猶向東行人一心向東去 無復有回轉向西之理 西行人亦然 잠실진씨가 말하길, “이것이 바로 군자와 소인의 갈림길이다. 마치 동쪽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한마음으로 동쪽을 향해서 가는 것이니, 더이상 회전하여 서쪽을 향해 갈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서쪽으로 가는 사람도 역시 그렇다.”라고 하였다.
勿軒熊氏曰 語言志有三 曰志學 曰志道 曰志仁 仁則直指本心 尤親切矣 물헌웅씨가 말하길, “논어에서 志를 말한 경우가 3번 있는데, 배움에 뜻을 두라고 말했고, 道에 뜻을 두라고 말했으며, 仁에 뜻을 두라고 말했다. 仁이란 본심을 곧장 가리킨 것이니, 더욱 친밀하고 절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苟志於仁 四字涵三意 志於仁與志於道不同 仁是道德之精純 志是志向之堅定 而又加以誠焉 則於爲惡之事 可保其必無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苟志於仁 이 4글자는 세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仁에 뜻을 두는 것은 道에 뜻을 두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고, 仁은 도덕의 精髓이고, 志는 지향이 굳세다는 것이며, 다시 여기에 誠을 더한다면, 악을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반드시 없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楊氏曰: “苟志於仁, 未必無過擧也, 然而爲惡則無矣.” 양씨는 말했다. “진실로 仁에 뜻을 두면, 반드시 지나친 행동거지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악을 행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朱子曰 志於仁 則雖有過差 不謂之惡 惟其不志於仁 是以至於有惡 此志字不可草草看 주자가 말하길, “仁에 뜻을 둔다면 비록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있을지라도, 이를 일컬어 악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직 그가 仁에 뜻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악이 있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 志자는 대충대충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過擧謂 或用意過當 或資質之偏 或氣壹之動志 無惡 則志爲之主也 志在於仁 則思慮自不到惡上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지나친 행동거지란 혹은 뜻을 씀이 적당한 수준을 지나치거나 혹은 자질이 치우쳤거나 혹은 氣가 전일하여 뜻을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악이 없다면, 志가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니, 仁에 뜻을 둔다면, 생각하는 것이 저절로 惡 위로 이르지는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通書解曰 有心悖理爲惡 無心失理爲過 통서에서 풀이하여 말하길, 마음이 있으면서도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악이 되고, 마음이 없이 이치를 잃는 것은 과실이 된다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