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작품 전시
네델란드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를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0,000점으로 이번에 전시 되고 있는 작품은
그의 삶에서 어둡고 고독한 어린시절을 말해 주는 듯 색체가 어둡고 탁했다.
하지만 작품의 영감을 얻게된 스토리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더니즘에서
그리고 작가 자신이 나이 들어가면서 작품에 남기고자 했던 많은 것들을
돌아 보면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매일 읽고 쓰면서 무엇을 남길것인가 하는
숙제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병든 아이 Edvard Munch: The Sick Child. Drypoint, 1894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르바드 뭉크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절규>로 유명한 뭉크. 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슬픈 감정이 들까. ‘절규’에서 손으로 뺨을 감싸며 내지르며 어떤 슬픔을 쏟아내고 있을까. 아니면, 어떤 공포가 그를 엄습하고 있을까.
올해로 사망한지 80주기가 되는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대표작들이 한국에서 전시되고 있다. 표현주의의 선구자이자 유럽 현대 미술의 대표주자인 뭉크는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 등 인간의 심오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가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지난 5월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회에 소개된 뭉크의 작품을 통해 인간 에드바르 뭉크의 슬픔을 좇아본다.
뭉크의 유년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뭉크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뭉크는 침대 곁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다. 9년 뒤 그의 누나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남동생도 결핵으로 고생했고, 여동생 로라는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갇혔다. 뭉크의 조부도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년시절 내내 병약했던 그는 결핵을 가까스로 이겨냈지만 기관지염에 오래 시달렸고 평생 발작이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절규>를 작업할 당시 그는 길을 건너 높은 곳에 오르는 일조차 쉽게 하지 못했다. 먼지를 들이마시는 것, 외풍에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일기장에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내가 요람에 누워 지낼 때부터 내 곁을 지키던 천사들이다. 그들은 그 때부터 평생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적었다.
어머니의 부재와 어릴 때부터의 병약함, 그리고 과도하게 종교에 집착한 아버지의 영향은 뭉크의 작품 세계를 결정지었다.
수줍음 많고, 외롭고 과민한 청년 뭉크는 ‘노르웨이 최고의 미남’ 소리를 들었단다. 1890년대 삼십대 초반의 뭉크는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붙인 제목만 봐도 그의 정신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절망>, <죽은 자의 침대 옆에서>(1892), <절규>(1893), <불안>(1894), <죽음의 발버둥>(1895)을 그렸다. 마치 프로이드의 그림판 같다.
병든 아이 Edvard Munch: The Sick Child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병든 아이>는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소녀와 실의에 빠져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뭉크의 누나 소피를 간호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이 그림은 뭉크가 23세 때인 1886년 크리스티아니아(오늘날의 오슬로)에서 열린 연례 가을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뭉크는 이후 이 그림을 석판인쇄(lithography), 드라이포인트, 에칭 등 여러 가지 버전으로 거듭 만든다. 거친 그림 방식은 많은 사람에게 비판과 열광적 반응을 받으며 뭉크가 예술가로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뭉크 스스로 이 그림에 대해 ”‘병든 아이’는 내 예술에 있어서 돌파구였다. 그 이후로 제가 한 일의 대부분은 이 그림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894년 드라이포인트로 그린 <병든 아이>를 만나볼 수 있다. 다른 버전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작품 아랫부분에 있다. 나무가 스케치되어 있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과 자연의 삶을 대조한 것인지, 아니면 ‘소피’가 보는 환각일지는 관람객의 마음일 듯. 그리고 ‘병든 아이’의 모습만 그린 또 다른 작품들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그림 속 모델은 당시 11살 이었던 베치 닐센이라는 빨간 머리 소녀라고 한다. 소녀의 남동생이 다리 다쳐 아버지의 진료실을 찾아왔었고, 남동생의 고통을 슬픔에 잠겨 지켜보던 소녀를 보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다) 하얀 베개와 빨간 머리는 8년 전 죽은 소피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한 모양이다.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 1896-7 ⓒPrivate Collection, Norway courtesy of Peder Lund.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1892)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도 근심으로 가득한다. 어느 봄날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와 짙은 색 드레스 차림의 여자들의 모습은 마치 좀비 같다. 그들의 눈은 휘둥그레 하고 얼굴도 해골에 피부만 입혀놓은 것 같다. 한쪽에서 홀로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뭉크 자신이다. 이 그림에 대해 뭉크는 “외면적인 모습보단 인간의 고통과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 화가의 임무는 가장 깊은 곳의 감정과 영혼, 비애, 그리고 환희를 담아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을 비롯해 전 세계 23개 기관과 갤러리, 개인 소장가들에게 대여한 뭉크의 대표작들이 총출동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회는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에드바르 뭉크 작품 전시
이헌 조미경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작품 전시에 갔었다.
뭉크는 어린시절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화가다.
에드바르 뭉크 작품 전시
이헌 조미경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작품 전시에 갔었다.
뭉크는 어린시절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화가다.
그런 그의 작품을 관람 하기 위해 찾은 예술의 전당에는 예술을 사랑 하는 많은 관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뭉크 절규라는 작품외에는 아는게 없는 나였다.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관람 하고 있지만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의 고뇌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성장 과정 그리고 작품의 변천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뭉크의 생전에 약 30,000개의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이 글을 쓰는 작가인 나에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하는 작가의 세계와 예술 활동을 하는 화가의 경우에도
평생동안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어쩌면 고독하고 외로운 직업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