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시인(詩人)과 화가(畵家)
韋侯別我有所適(위후별아유소적),
나와 헤어져 어디론가 간다던 위언(韋偃),
*韋侯(위후) - 위언(韋偃). ‘侯’는 존칭이다. 別我(별아) - 나와 이별하다. 有所適(유소적) - 갈 곳이 있다.
知我憐渠畵無敵(지아연거화무적).
무적의 자기 그림 솜씨를 내가 좋아한단 걸 알고.
*憐(연·련) - 좋아하다. 그리워하다. 渠(거) - 그대. 畵無敵(화무적) - 그림에 적이 없다. 그림을 누구보다 잘 그린다는 뜻이다.
戱拈禿筆掃驊騮(희념독필소화류),
장난스레 몽당붓 잡고 붉은 준마를 그리자,
*戱拈(희념) - 장난 삼아 붓을 들다. 禿筆(독필) - 몽당붓. 털이 다 빠져 거의 쓸모없는 붓. 掃(소) - 그리다. 驊騮(화류) - 준마. 주나라 목왕穆王의 팔준마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준마를 말한다.
欻見騏驎出東壁(훌견기린출동벽).
한순간에 천리마가 동쪽 벽에 나타났네.
*欻見(훌견) - 문득 보이다. 騏驎(기린) - 준마. 천리마. ‘騏’는 청흑색 반점이 있는 말. ‘驎’은 물고기비늘 같은 무늬가 있는 말이다. 여기서는 ‘기린’의 뜻으로 볼 수 있다. 出(출) - 말이 나오다. 그림이 나타나다. 東壁(동벽) - 초당의 동쪽 벽.
一匹齕草一匹嘶(일필흘초일필시),
하나는 풀을 뜯고 하나는 울음 우는데,
*一匹(일필) - 말 한 마리. ‘필’은 말을 세는 양사. 齕草(흘초) - 풀을 씹다. 嘶(시) - 울다. (오문백마吳門白馬 《논형論衡》)
坐看千里當霜蹄(자간천리당상제).
순식간에 천리 길이 저들의 발굽 아래 놓일 기세.
*坐看(좌간) - 잠깐 사이. 앉아서 보다. 시인이 앉아서 본다는 뜻이다. 千里(천리) - 천 리. 말이 하루에 천 리를 달림을 말한다. 當(당) - 대하다. 천리가 말발굽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霜蹄(상제) - 말발굽. 말발굽은 눈서리를 밟을 수 있다. 《장자․마제馬蹄》 : 말은 발굽으로는 눈서리를 밟을 수 있고, 털로는 찬바람을 막을 수 있다.
時危安得眞致此(시위안득진치차),
위태로운 시국에 어찌하면 이런 말을 구해서,
*時危(시위) - 시절이 위태롭다. 致此(치차) - 이런 말을 얻다.
與人同生亦同死(여인동생역동사).
나와 함께 생사를 같이할 수 있을는지?
*同生(동생) - 함께 살다. 同死(동사) - 함께 죽다. (유비가 유표劉表에게 가서 의지했을 때 유비를 죽이려는 이가 있었다. 유비가 이를 알아채고 탈출하였으나 타고 있던 말 적로的顱가 달리다가 양양성襄陽城의 단계수檀溪水에 이르렀다. 유비가 적로에게 ‘적로야 네가 또 주인을 헤치는구나’라고 하니 적로가 한 번에 3장을 뛰어넘어 유비를 살려주었다. 또 동진東晉의 장수 유뢰지劉牢之가 모용수慕容垂(後燕을 세운 世祖)에게 쫓길 때 말이 5장 시내를 뛰어 벗어난 예가 있다.) (선비족 : 우문宇文(북주北周), 모용慕容(燕), 탁발拓跋(北魏))
―‘위언이 벽에 그려준 말에 부치는 노래’(제벽상위언화마가·題壁上韋偃畵馬歌) 두보(杜甫·712∼770)
자기 그림을 좋아하는 시인에게 화가는 이별의 선물로 벽에다 말 그림을 남긴다. 그러자 시인은 화필(畵筆)의 기세와 화폭에 담긴 준마의 역동적 기운에 감복한다. 생동감 있게 벽 위에 등장한 준마(駿馬) 두 필. 지금은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힝힝대고 있지만 저들이야말로 단숨에 천 리를 내달릴 수 있는 천리마(千里馬). 이런 그림을 장난치듯, 그것도 끝이 나달나달해진 몽당붓으로 그려내다니 그 묘필(妙筆)에 대한 시인의 감흥이 오죽했으랴. 그림 속 준마의 기세와 함께 ‘위태로운 시국에 이런 말을 구해서 생사를 같이하고 싶다’는 시인의 우국지정(憂國之情) 또한 유별스럽다.
시인이 사천성 성도(成都)의 초당(草堂)에 머물던 시절, 이때 만난 이가 말과 노송 그림으로 명성을 떨치던 화가 위언(韋偃)이었다. 두보는 위언의 그림을 예찬한 제화시(題畫詩·그림을 소재로 지은 시)를 여러 편 남겼는데 이 시는 그중의 하나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8월 16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