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찾아오는 순간 - 박노식
시도 아닌 것을 붙들고 누워서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애걸복걸하는 때가 있지 쓸쓸한 날은 비를 부르고 들뜬 날은 햇살을 찾고 우울한 날은 눈을 그리워하면서, 불현듯 녹음 속을 걷기도 하지만 이 견딜 수 없는 울렁거림이 동시에 오는 날은 눈물로 꽃을 피우고 잠시 독한 술에 취한 채 맨살로 쓰러져서 아픈 꿈을 꿀 때가 있지 새벽이든 아침이든 대낮이든 초저녁이든 한밤이든 시도 아닌 것을 붙들고 앓는 동안 말의 무게에 짓눌려 다투거나 솜사탕 같은 빈말에도 응석을 부릴 때가 있지 그러나 시는 오지 않고 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 어느 고적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지 눈을 뜨니까 그가 몰래 와서 내 곁에 누워 있었던 거야 시는 그래, 가끔 그렇게 찾아올 때가 있어
ㅡ시집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문학들, 2023) ******************************************************************************************** 인구 소멸 시대를 살고 있는데 시인의 숫자는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입니다 문화예술 활동 중에서도 문학이 최고수준의 정신 활동임을 생각할 때 현대 사회가 그만큼 영혼을 자극하고 심성을 일깨우는 상황이 연속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시대 상황에서 분노하고 우울해지고 불면을 겪다보니 울화가 쌓이다보니 행동이 아닌 언어로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시를 쓰려는 게 아닐런지요? 천재가 아니라면 한 편의 시가 쉽게 써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다 압니다만 아주 가끔은 불현듯 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귓전으로 스쳐가는 말의 무게에 짓눌려 다투지 마시고, 오감을 깨우며 고요 속으로 스며드는 동안에 시가 몰래 찾아올 줄도 모르니까요.......^*^ |
첫댓글 시를 쓰는 이가 겪는 희노애락에 대하여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시를 써 본 이라면 느끼는 감정이라면 애걸복걸,울렁거림, 우울한 날이거나 눈이 내려야 맞아요.동시에 독한 술도 필요하리 ㅋㅋ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붙들고 새하얗게 밤을 태운 추억이 있는 이라면 (솔직하게 난 그정도로 깊숙히 젖어드는 파는 아님) 달콤한 빈말이라도 핥고 싶으리 쭉쭉 빨고 싶으리라 그러나 시는 오지 않는다 시는 그리 쉽사리 밝히는 것이 아니다. 숙고하고 기다릴 때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생활을 할 때 청량한 갈증처럼 시는 그 때가 되어야 나를 찾아온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맑고 고운가? 지긋이 눈을 감고 새들의 울음소리를 가슴에 담아 들을 뿐이다 시는 그렇다. 아주 가끔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때가 있다. 시란 응석부림이 아니라 학이시습지 열심히 공부를 하는 자에게만 속을 보인다. 우린 죽을 때까지 학생 즉 생을 배워야 한다. 시는 생을 배우는 도구이자 생을 여는 기술이다.
감상 시가 그러하듯이 니힐님이 시론도 구구절절 바른 말입니다.
혼자 만족하는 시가 아닌 읽는 이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수록 좋은 시라고 봐야지요.
오늘도 마음의 눈을 크게 뜨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