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1028호
녹턴
민완순
당신을 품었던 달콤함은 소화가 되지 않아요
한창 행복한 표정을 꺼내 달아 놓았습니다
짙은 화장 같은 얼룩입니다
쓰다 접어 둔 어제 그제 그끄저께가 올까요
내 이야기를 꺼내 줄 수 있나요
먼지 같은 일들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은
바람에 질질 끌려가는 나뭇잎이 내는 소리로 삼킵니다
곧 바스라지는 것들이 내는 소리를
다 드러내도 보이지 않는 초콜릿 같은 밤을
잡을 수 없는 먼지의 반짝거림이 가득찬 상자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보고 싶다라는 말은 언제 꺼내는 걸까요
*
안산 사는 민완순 시인의 시를 훔쳐왔습니다.
지난 금요일 이향지 선생님 사진집 『백두산』 출판기념회 참석했다가
역시 안산 사는 김진갑 시인을 만났더랬습니다.
민완순 시인, 김진갑 시인은 오래된 지기, 동갑내기 친구들입니다.
김진갑 시인에게 민완순 시인의 안부를 물었더니, 시를 한 편 보여주는 겁니다.
- 녹턴
그런데 실은
20년도 더 전에 이미 민완순 시인의 시 두 편
- 파꽃이 지다
- 장미빛 사랑
을 훔쳤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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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 시험장 근처 공터에 약장사가 매일 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구경 가시는 어머니는 봄볕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굽은 허리로 몇 번을 쉬었다가 가신다 돌아 오실 때마다 바가지에 간장이 손에 들려 있지만 그래도 특별히 자신에게만 주었다는 약봉지를 꺼내며 자랑하셨다 그렇게 많은 약을 드시면 더더더 나중에 고생하실 거라는 말만 쓴 약으로 삼켰다 나는 어머니 이제 그만 일어 나세요 너무 오래 주무셨어요 그래 그런데 약 좀 다오 소화가 안 되는구나 어 어머닌 아무 것도 안 드셨어요 오후 내내 꿈만 꾸셨잖아요 뒷곁에 심어 놓은 파가 꽃이 폈어요 꽃을 따서 널지 그러세요 씨가 모두 떨어 지겠는데 아 그렇구나 나 처럼 허연 머리를 풀고..... 어머니는 밤꿈이 또 얹히셨는지 부지런히 약장사에게 가신다
오월 가도록
파꽃이 진다
- 민완순, 「파꽃이 지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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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게으른 여자야
저 담을 기어오르고
여름내 질리도록
젖무덤을 드러내도
그늘진 방에서 나오지 않는
그럼에도 나는
아 아 천천히
당신이 있는 벽 아래로
흘러 들 거야
언제인지 모르지만
내가 내미는 연한 가시에
눈을 찔려 줘
날 안아 줘
- 민완순, <장미빛 사랑>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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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참 매력적인 시들이지요.
녹턴(야상곡, 夜想曲) 하면,
쇼팽의 녹턴, 리스트의 녹턴, 김선우의 녹턴
을 떠오리곤 했더랬는데,
이제
민완순의 <녹턴>도 떠올리게 될 듯합니다.
조용히 곱씹어 읽어보세요.
당신이 잊고 있었던 어떤 날의 밤이 떠오를지도 모를 테니까요.
봄날, 아무래도 안산을 한번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2026. 3. 16.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