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레슨이 키운 국내파 바이올린 신동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다락방. 세 살 때부터 유치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언니와 함께 싸구려 바이올린을 갖고 놀았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가정이 어려워져 엄마는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하루에 5시간씩 자매에게 바이올린 연습을 시켰다. 싸구려 바이올린으로 명기 소리를 흉내 내던 그가 드디어 세계적인 기대주로 떠올랐다.
16일 새벽 (한국시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21) 씨. 그는 대회를 마친 후 스승인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국제전화 통화를 하며 펑펑 울었다. 신 씨는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우승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 씨는 전북 전주시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언니 아라(25)씨와 함께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서 김 교수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초등학교 때 새끼손가락 뼈에 금이 가갔는데도 깁스를 풀고 대회에 출전할 만큼 악바리 근성을 보였던 신 씨를 위해 김 교수는 10년간 레슨비도 받지 않고 가르쳤다.
자기 악기를 마련하지 못한 신 씨 자매는 콩쿠르나 연주회 때마다 악기사에서 바이올린을 대여해 왔다. 언니 아라 씨는 스승인 김 교수의 바이올린을 빌려 2006년 티보바가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에 입상했다. 빌린 악기로 숱한 콩쿠르에 출전해 오던 현수 씨도 지난해 10월 하노버 콩쿠르에서 2위를 해 이탈리아의 명기인 과다니니를 3년간 빌릴 수 있었다.
신 씨는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선욱(20)씨에 이어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다. 그의 성취는 지방 출신인 데다 가난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24일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신 씨는 “해외 콩쿠르에 나가 보면 기업을 비롯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악기부터 참가비까지 걱정하지 않는 외국 친구들이 부러웠다.” 고 말했다.
간담회에 동석한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체육 분야에선 박태환이나 김연아 같은 선수에게 체계적이고 폭넓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그런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문화예술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를 키워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 교육비용 때문에 재능 있는 기대주들이 꿈을 펼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신 씨의 우승을 계기로 우리의 예술교육시스템을 다시 한 번 점검했으면 한다. 동아일보 2008.11.25. 전승훈님의 글
첫댓글 사교육비로 각 가정보다 가계가 휘청거리는 현실에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