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이 귀하던 시절에 말질과 됫박질을 잘한다고
만석꾼 김첨지에게 스카웃이 된 정씨가 있었지.
김첨지네가 벼를 찧어 쌀을 파는 날이면,
사과댁을 비롯해서 건드레댁, 서울댁, 올미댁 등
동네 아낙들이 쌀을 사기 위해 김첨지네로 모여들었는데...
정씨가 쌀가마니를 깔고 앉아 제 쌀인양 됫박질을 해댔다 이말이지.
" 에게...정씨! 내 것은 왜 싹 싹 깍는게야! "
" 어머머...두툼하게 퍼주는구먼. 깍긴 무얼 깍는다는 거야. 내 것은 더 깍아내리던데..."
" 정씨 문제있어! 어째서 서울댁 만 수북히 주는 것이야! 내 참 아니꼬와서..."
그 시절엔 그랬다.
손저울이 나와서도 눈금을 속여 이뿐이 댁네한테 만은 무엇이든 후하게 달아주었으니
되질이나 말질을 할 때야 오죽했겠으랴.
정씨는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얼굴이 반반한 과수댁인 서울댁에겐 항상 눌러담고도
처녀 가슴만큼이나 더 올려담았던 것이다. 그렇게 보였던 것이고.
얼굴이 볼그레 달아오르면서도 싫지 않은 서울댁,
서울서 남편이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하고는 갓난쟁이 둘을 데리고 시댁으로 왔건만 누가 있어야 말이지.
할 수 없이 시댁의 조그만 땅뎅이에 나락을 심으며 품도 팔며 살았던 것인데...
김첨지네서 곡식을 살 때면 정씨가 돌봐주듯 남들과 차별을 두었으니 어쩌란 말인가.
" 정씨! 서울댁하고 뭔가 있는 거여? "
" 있긴 뭐가 있겄어. 살림이 어렵겠으니 마음이 조금 쓰였던 게지."
" 얼렐레? "
[중략]
뒷이야기지만 정씨 부인이 오히려 서울댁을 더더욱 챙겨주었기에
마을엔 사고?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는 이야기네요.
그 일로 말미암아 정씨 부인이 질투라도 느끼며 볶아쳤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봤어요.
정씨는 오기를 부려서라도 서울댁을 좋아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인간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마음을 담다가도 자중하며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말리면 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해와 너그러움의 힘을 가진 정씨 부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첫댓글
참~글을 맛깔 스럽게 잘
쓰시네요.
저는 글 잘쓰는 사람이 젤
부럽더이다.^^
해가 안뜨니 살 만합니다 그려^^ㅎㅎ
글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지요.
그림에의 몰입과 완성을 위하여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주는...^^
저는 열심히 노력중입지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기쁨 가득하세요~~
그 시절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했더랬지요 지금은 쌀이 많이 흔해졌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