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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만든 빅타[Victor] 축음기, 골동품가게에서 구입.[일어로는 '비구다']
앞쪽의 문을열고 플레이를 한다. 바닥은 1'x1' 스레믹 타일. 크기비교.
한문으로 '등록상표'가 보인다.
쌍태엽이라고 강철테이프가 2개가 들어있어서 태엽을 한번감아놓으면 오랫동인회전을 한다. 1분에 78회 회전 1면에 1곡이 들어 있다.
우리집에 있었던것과 동종은 아니며, 오른쪽의 대나무바늘이나 왼쪽의 강철바늘 사용, 중간은 헌것을 모음.
되찾은 축음기-1
내가 5살 기억을 할 수 있을 즈음 우리 집에는 이미 콜럼비아회사제 축음기(유성기라고도 함)가 있었다.
나 혼자서 틀어 보면 대중가요도 나오고 만담, 춘향전등이 나오는데 넋두리 조각의 각설이 타령이나 창부타령, 육자배기 같은 것은 서양음악에 있는 반음(半音; 미화 와 시도 사이는 반음)이 없어 좀 머쓱한데 어쨌든 내가 들을 수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인 셈이다.
다른 연모나 기계들과 달라서 만담과 가요가 흘러나오므로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어른들에게 물어 볼 때마다 대답은 한 결 같이 사람의 머리가 속에 들어 있다고 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데 속 시원한 답변은 들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으나 나중에 열어 보니 그 속에는 기계만 들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사람들은 대개가 태엽 감는 것을 칭하여 밥을 준다고 하며 ‘갓(흡사 머리에 쓰는 갓 같음)’ 이라고 부르는 뤠코드에는 금이 촘촘히 많이 보이는데 그때는 눈이 좋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꼬불꼬불 하게 되어 있었고 그때의 생각으로는 갓이 닳아서 그렇게 된 줄로 만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 굴곡이 있어야만 바늘의 떨림이 사운드박스에 전달되어 소리가 난다.
센세이 나리(선생님)어쩌고 하며 일본의 어린 학생들은 아침에 전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광경이 대사로 유성기에서 흘러나올 때면 전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일 조차 없는 난 왜 일본에서 태어나지 못 했는가? 하는 생각에 원망도 해 보았다.
부러움 때문에 초가지붕 밑의 방이 덩그러니 그렇게도 높게 느껴졌으며 누워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눈물을 흘려 배겟닢을 적신 적도 있다.
내가 일본과 통상이 되기 전에는 그렇게도 그리던 이 섬나라를 언젠가는 한번 가 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비자가 필요 없는 최근에는 급할 것도 없으니 수십 년이 흐른 뒤 그동안 염원해오던 일본을 친목계군 16명이 한국 방문 중 경유지로 채택하여 일주일간 일본 관광코스로 다녀왔다.
그 곳에는 폭이 좁고 조그만 벤들이 있었는데 기름절약형 같았고 미국은 이 차종을 수입 하여 공공장소에서 쓰레기 수거용으로 사용 하는데 좁은 길에서도 다닐 수 있는 잇 점 때문이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접어들었는데, 나는 시간이 있으면 혼자서 이 축음기를 틀어 보곤 했었는데 트로트(Trot:말이 속보로가다)의 노래도 답답함을 느껴 속도를 아주 빠르게 조정을 해놓기도 했다. 그러면 지르박(Jitterbug:안절부절 못하는 벌레)같이 신나는 노래가 되며 더 빠르게 하면 폴카[polka:2/4박자]는 지금의 현명한 젊은 층(끈기의 늙은 층에 비교)에서 좋아하는 랩뮤직 같이 빠른 노래가 되는데 나도 이런 종류의 음악을 선호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 보다.
아직도 나는 말뜻을 모르는 일본 노래들과 이향란(李香蘭:니코랑)이 부른‘시나노 요루(支那の夜)’를 위시하여 여러 가지의 일본 가요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당시는 숯불에 구운 한국산 보다 일본산 레코드가 질이 좋아 소리가 더 잘 났으며 어릴 때부터 전해 온 것인지 지금도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 남들은 나를 추겨 세운다.
지금도 고령의 노인들을 만나 해방 전의 일본가요를 노래를 부르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그 당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보내는 곳이 항구가 아니면 정거장이고 배ふね고동 이 아니면 기적[汽笛:きてき:증기피리]이라는 말이 꼭 따르는데 지금은 공항이 되며 비행기는 경적이 없으니 표현을 곁들일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들어오던 일본노래의 가사에 일본에는 섬이 많으니 이별에 얽긴 사연도 한국보다 많아 하도바(波止場:방파제), 후네(배), 기데끼(기적), 항(港:みなと:하바), 가모메(갈매기)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하바’ 라는 말은 2차대전 때 미군들이 항구로 도망가면서 하바 하바(harbor:항구)하는 것에서 유래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언젠가 삼촌의 대학교 등록금 때문에 이 장난감도 비운을 맞아 쌀 한가마니 값에 팔려가게 됐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본의 세이꼬샤(成功社)제품인 사발시계(자명종)도 삼성당시계점에 위탁판매를 하려고 맡겨 놓았는데 팔리지 않아서 일금 300원에 싼값으로 이 시계점 주인에게 팔았다.
가난한 시절에는 쌀이 으뜸이었고 다른 물건들이 쌀 앞에서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연명(목숨을 겨우 이어 살아감)과 깊게 연관되어 있어 이것만 가지면 ‘살 수 있다.’고 된소리(
硬音)로 ‘쌀’이라고 하는 걸까?
그때의 일본에서 만든 글씨는 미국을 사면팔방에서 모여드는 이미지 米(쌀 미)를 사용 ‘米國’이라고 표기한 고 지도를 어릴 적에 본 일이 있는데 일본에 직접 가 봐도 지금까지도 계속 그렇게 쓰고 있었다.
아마도 오래전 일본에 알려진 미국은 부자의 나라이었는데 쌀이 주식(主食)인 일본은 산이 많아 무논이 귀하니 쌀의 선호도가 높아서 그렇게 만든 미국 국명은 아닐 런지?
한글설명으로 미국의 ‘美’ 를 파자하면 팔(八=八方:四方과 四隅)의 왕(王)이 되는 큰(大)나라라는 뜻이 되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집안에 아름다우라고 꽃을 심으니 ‘美국’인데 비해 재미한국인들은 과일나무를 심어 쌀을 대신하니 ‘米國’인 셈이다.
미국은 배우자를 하니(꿀:honey)라고 부르는데 비해 한국은 여보라고 하는데 여보(如寶, 실은 여기 보세요)라는 단어는 如(같을여)를 사용하여 보물(寶物)같이 여긴다.’라는 뜻이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상대방을 최고로 높여 주는 것이 아닌가?
오래전에는 논 한마지기의 가격이 벼 몇 섬(石:10斗)으로 정해져 현물로 지불하고 성에거리로 술한잔이나 담배를 얻어먹으면 증인이 되는 것이다.
쌀을 사러 갈 때도 쌀팔러 간다고 거꾸로 말하며 진짜로 팔러가는 것은 돈이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새겨 ‘쌀을 내러간다’고 말한다.
아침밥을 먹었다는 말도 밥을 빼고 그냥‘아침을 먹었다.’ 라고 하는 것일까?
겨루기를 하더라도 풍요 쪽으로 해석을 하여 받기가 아니고 내기라 하는데 예로 ‘먹기 내기’ ‘내기장기’ 라 하니 남들에게 나의 취약점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단어일 것 같기도 하고 의문이 있어 여쭈어 볼 때도 먹을거리에서 온 ‘물어 본다(bite, 맛을 알기위해 입으로 물어 본다)’ 가 되는 걸까?
내기에서 돈을 획득(earn)하면 나무에서 쉽게 따는 것처럼 ‘돈을 땄다’라고 한다.
아기들에게는 가르치지 않아도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무조건 맛을 알기 위하여 입으로 가져가긴 한다.
‘값이 높다.’ 는 말이라도 직역(直譯)으로 하면 자기와 동등하지를 않고 더 높으니 그대로 새기지 않고 은근슬쩍 자기를 높이기 위하여 ‘싸다’의 반대말인 ‘값이 비(非; 아닐비)싸다’로 부르게 된다.
도토리는 묵을 쑤어서 대용식으로 이용되는데 비록 맛이 떫더라도 ‘꿀밤’이라 부르는 것 같이 어떤 단어들은 허식이 가미된다.
그 당시는 나들이를 가면 머릿기름에 넥타이를 매고 광을 낸 가죽신을 신어야 알아주지 점프(jumper)를 걸치면 아무리 배가 두둑해도 항아리가 찾는지 비었는지 속 내용을 겉에서 알 수 없어서 가난한 사람으로 여겨 얻을 것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전락 상대방이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이 사는데 기본은 의식주이며 집은 움직이지를 못하여 부동(不動)산이 된다.
동산은 지폐의 인쇄기술이나 엽전 주조의 기술이 있기 이전에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의 기본이니 쌀, 필목(무거운 화폐로 행세)이 이를 대신했으며 금전은 가벼워서 배(천)보다 빠르게 여러 손으로 돌아다닌다고 하여 돈이라 했을 것이다.
벼는 화폐로서는 무거우니 더 가벼운 쌀을 사용하게 되는데 크다는 뜻의 왕겨(겉껍질)를 제거하면 검은 쌀(현미:玄米)이 되는데 현미를 한 번 더 벗기면 쌀(白米)이 된다.
미국은 150년 전에도 섬세한 인쇄기술로 채권이나 지폐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조선에는 정교하지 못한 석판 인쇄밖에 없어 아무나 집에서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으니 놋쇠를 녹여 만든 4각형구멍이 뚫린 노란 색의 무거운 엽전만이 통용 됐다.
혹시 돈이 없더라도 ‘돈이 없다’라고 하지않고 말을 약간 과장 왜곡하여 “돈이 떨어졌다, 쌀이 떨어졌다.”로 다르게 말하고 ‘밥을 얻어먹는다.’라는 말도 다음에 갚는 조건의, ‘빌리다’라는 뜻의 은어‘빌어먹다’로 되는 것 같다.
죽겠다는 말도 많이 쓰는데 ‘더워서 죽겠다’는 이해가 가는데 ‘우스워 죽겠다’는 말은 지나친 호소력을 내포한 것 같다.
축음기를 판 후 아버님(작고후면 님이라 칭함)께서도 마음이 상하셨으리라 짐작이 된다.
전쟁 때 피난가면서도 비가 맞지 않는 처마 밑을 파고는 땅속에 묻어 두어 재난을 면했으며 그것이 가보(家寶)의 성질을 띠고 있었는데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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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완전 골동품이네요 귀한것 잘보고
머물다 갑니다
감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