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꽃을 비운다 - 복효근
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오해다 정작 저를 비우는 것이다 뿌리가 있어야 한다고 근본이 있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배운 이후로 무슨 저주가 이리 질길까 한 자리에 박혀 종내는 제가 판 무덤에 저를 묻어야 하다니 짐승처럼 포효하고 내달리고 싶어 얼마나 제 속을 끓였을까 곪았을까 썩었을까 언제고 부러져 몽둥이가 되고 싶은 소갈머리 왜 없을까 확 꺾여 불 질러 버리고 싶은 화기로 뭉친 몸 그래서 꽃은 나무의 토사물이거나 욕지거리다 하도 어이없어서 웃는 웃음처럼 곪아 터진 화농에서 피어나는 오색 곰팡이 같은 것 그러니까 못해먹겠다 너 죽고 나 죽자 시발 저 육두문자를 꽃 비운다 할 수는 없겠니 저를 피운다 할 수는 없겠니 활활 불피우고 싶은 마음 같은 거 후련히 확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 같은 거 그 정도는 돼야 꽃이라 하지 않겠니 어때 그래도 꽃 피우고 싶어? —시 전문지 《아토포스》 2023년 겨울호 ******************************************************************************************** 파머스마켓 한켠에 나무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온갖 묘목들이 비스듬 기대 섰거나 누워있고, 가판대에는 꽃모종도 늘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파는 나무는 대개 꽃이나 열매를 기다리기 위함이잖아요 시인의 감각 그물에는 꽃도 열매도 스스로를 비우려는 행위로 비칩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풍우를 견디며 쌓인 화기가 얼마일지 가늠이 안되는 상황으로 봅니다 오죽하면 꽃을 나무의 토사물이거나 욕지거리로 볼까요 '아따 그 나무의 육두문자가 어찌 저렇게 환하다냐?' 경칩을 맞아 어느 둑방 개나리 가지에도 꽃망울이 톡 톡 맺힐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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