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약전(秋史略傳)
봄이 저 혼자 일어서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입춘 날, 어느 집 대문에
글 한쪽 나붙었는데요.
입춘대길 건양다경, 좋은 일 많이 생기고
하늘땅 두루 태평하시라는 말씀,
행인들마다 놀란 얼굴로
한마디씩 하고 가더래요.
"일곱살짜리 글씨라네!"
출근길 채제공 대감도 덕담을 했다지요.
"크게 될 아이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봄이 물결처럼
흘렀을까요.
일곱살짜리도 칠십이 넘어
세상 떠날 채비를 하는데,
한강 변 어느 큰절이 집 한 채 새로 짓고
글씨를 청하기에 써주었다지요.
'판전(板殿)'
추사 글씨라는데, 문화재라는데
그냥 지날 사람 있겠어요.
"아픈 몸으로 썼다는군."
"마지막 작품이라지."
"에이, 일곱살짜리 글씨 같은데,뭐."
제 생각은요, 편액 뒤쪽에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의 멀미를 견뎌야 할지 모를
아득한 약속이
적혀 있을 것만 같아요.
"저녁 어스름,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마음이라서
일곱살 기력을 붓끝에 겨우 모아
바삐 썼다오.
언젠가 다시 와서
새로 써드리리다.
당분간
그냥 걸어놓으시길."
[스물다섯살을 반성함],창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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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일곱살과 일흔한살 / 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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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30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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