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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맨발로 달리는가?
2006년 4월 1일 전남 구례에서, 맨발로 10킬로미터를 달렸다. 그것도 아스팔트 위를 말이다. 작은 결론은 자기만족이다. 여기까지 길게는 넉 달, 실제 훈련은 두 달이 걸렸다. 짧지만 지난 일들이 달리기를 하는 동안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사실 이번 <구례섬진강벚꽃달리기>에 처음으로 맨발로 달린 것은 이런저런 이유에서다.
시골 노모를 찾은 것은 집안일 때문이다. 해서 하루 전에 고향에 들렸다. 남해에서 구례까지 약 100킬로미터, 허나 국도나 지방도로라 1시간 30분으로 간주하여 아침 7시에 출발한다는 게 늘 그랬듯이 30분 늦게 승용차를 몰았다. 집사람과 여동생까지 합승한 것은 내가 처음 풀코스를 다대포에서 치룰 때(2001년) 응원했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허나 쉽지 않아 그럴싸한 포장을 했다. 섬진강변에 만개한 벚꽃이며, 봄기운 만연한 시골의 정취를 구경할 겸 나들이라는 명복으로. 알고도 속는 채 하는 게 부부인가. 무관심인가 관심인가, 이제 그 경계를 모르는 세상살이다.
8시 30분에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을 효마클과의 만남은 어렵다는 짐작이 드는 것은 하동 화개장터를 앞에 두고 차가 밀리면서부터이다. 정대우 님께 전화해서 늦다는 말을 전한다. 어제 오후부터 빗줄기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저녁이 되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바람이 세게 불며, 기온도 많이 떨어지는 등 상황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허나 밤 10시 경부터 빗줄기는 가늘어지는 게 아닌가. 비가 안와도 달리는 게 마라톤 아닌가. 무엇보다도 봄비가 이틀에 걸쳐 그렇게 많이 내리지는 않는다. 분명 내일은 맑으리라. 진짜 등산객은 빗속에 산을 향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정작 걱정은 꼭 맨발로 달려야 하는가? 였다. 알게 모르게 불안이 여전하다. 게다가 이번에 하프 코스를 맨발로 달린다는 이야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게다가 재학생 동아리 모임에서도 발표한 말이다. 그렇지만 반드시 체면 때문에 나의 일방적인 선언을 실행할 필요는 물론 없다. 그러나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섬진강을 옆구리에 끼고 흐르는 강물을 쓰다듬듯 벚꽃은 화사한 봄날의 햇볕에 아름답다 못해 황홀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시야를 통해 탄성이 내면으로부터 이어지는 시간도 잠시 화개장터를 겨우 벗어나면서부터 날씨는 우중충하게 바뀐다. 게다가 9시 전후에 가까스로 구례에 도착할 것 같다. 해서 동생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차 안에서 달리기 준비를 한다. 바지는 추리링, 상의는 효마클 반팔 복장, 모자, 발목보호대, 무릎보호대, 발바닥 테이핑이 전부다.
처음 풀코스를 준비하면서 심전도 검사 등을 했듯이, 이번 준비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숲속에서 맨발로 근 두 달가량 달렸다. 지난 10월에 시작하였지만, 이번 추운 겨울 두 달은 신발을 신고 평소 달리기를 하였다. 날씨가 풀리면서 다시 맨발로 흙길 달리기는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예방접종과 발목점검을 위한 의학적인 사전 사진점검이다. TD(파상풍과 디프테리아) 예방접종을 2개월 단위로 3번 하는 것이지만 1번만 했다. 이 부분은 따로 알리고 싶다. 그리고 지난 <제4회 피디피데스훈련> 때와 <창선-삼천포마라톤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한 다음 겪었던 왼쪽 발등의 심한 고통 때문에 정형외과 진단이다. 학교 앞 일반외과를 방문하니 결론은 맨발로 아스팔트 포장길을 달리지 말라는 의사의 충고였다.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 강정수 님께 전화하여 부산시립병원 조선국 재활과장(효마클 팀닥터)을 방문하였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의사선생님의 진단과 처방은 자상할 정도였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조 선생의 진단은 엑스레이로 봤을 때 이상은 없으나, 왼쪽 두 번째 발가락이 약간 처져있으니, 발바닥 테이핑 때 보완하라는 말과 함께 부상의 우려를 솔직히 숨기지 않았다.
이것으로 부족하여 약국에서 발목보호대, 무릎보호대, 테이핑을 구입했다. 다음날 아침 혼자서 예행연습을 숲속에서 했다. 그리고 빨래하여 말려 당일을 대비하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 셈이다. 외형적인 준비는 나름대로 했지만, 심리적인 불안과 내면적인 걱정은 끝을 모른다. 주변 분들의 걱정과 충고는 매우 값진 것이었다. 마라톤 아니 달리기를 계속하겠다는 사람이 무릎의 충격과 발목부상을 무릅쓰는 무모에 가까운 행위에 대한 염려이다. 사실 어느 정도는 주변의 말들을 개의치 않은 점이 있었다. 허나 걱정이 반복될수록, 특히 마눌마저 덧붙여 “평소대로 마 달리소. 뭐가 그리도 유별나요. 누구 고생시킬 일은 예약불허요.” 해서 타협점이라기보다는 달리기 전략을 새롭게 세웠다. 가장 느리게 달리는 것에 대한 자기 암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포기는 쉽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기 위해 평소 달리기 습관에 대한 개념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것도 연습기간 동안 늘 나를 따라다녔다.
‘구례’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난 다음 얼마 안 가서 대회운영을 위해 고생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보인다. 시계는 이미 9시를 2분이나 넘어섰다. 한 무더기 달림이와 달리니들의 모습이 차밭의 긴 이랑처럼 거리를 메우고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겨우 차를 돌려 대회시작점이자 결승점인 실내체육관 건너편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바람이 차갑다. 발바닥이 더욱 차갑다. 해서 신발을 신고 입구에 다가서니 또 한 무더기 사람들이 뛰기를 시작한다. 이게 하프인지, 10킬로 아니면 5킬로미터인지 모를 일이다. 우선 대열에 끼어들었다. 허나 이들의 몸동작이나 자세를 보니 초보자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쩔 것인가. 배번도 없지만 더군다나 아는 사람도 없다. 약 1킬로미터를 지나 신발을 벗고 맨발로 도로 한 가운데에 선다. 양손에 든 신발을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다. 이미 마눌과 여동생은 차를 몰고 시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늦게 도착하여 모양새는 구겨질대로 구겨진 상태다. 하는 수 없다. 들고 끝까지 뛰는 수밖에.
어제 오후에 내린 비로 아스팔트 도로는 깨끗하다. 맨발로 달리기의 조건은 무엇보다도 산길이든 일반도로든 흙길이든 지면의 온도가 중요하다. 지상의 온도가 10도 이상이면 괜찮은 편이며, 15도 정도가 이상적이라는 판단이 여태까지 경험적 소산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바닥에 테이핑을 했으며, 추가로 발목보호대를 착용한 관계로 발바닥에 느껴지는 촉감은 그렇게 차갑지 않다. 그 동안 숲길 낙엽길 흙길을 달리면서 느끼는 기분은 차원을 달리한다. 첫날 연습은 약 30분 정도 반나절동안 발바닥이 화끈거린다. 다음날 다시 30분 정도 달리고 나서는 하루 종일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3일째는 도저히 아파서 뛸 수 없었기에 쉬었다. 무릎도 발목도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신발을 신고 뛰었을 때와 많이 다르다. 돌부리나 뽀쪽한 돌맹이가 발아래 가운데 부분에 닿으면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일정도였다. 미친 짓이다. 그러나 사서 하는 고생이라 그나마 위안이 된다.
초겨울 때는 10분 정도 뛰고 나면 발이 얼어 동상에 걸린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산 중간에 서 중단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신발을 벗어놓은 곳까지 최소한 되돌아 가야하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한다.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와서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오히려 흐르는 물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경험이 이제는 새롭다. 날이 거듭되고 한 달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맨발로 달리기는 익숙해진다. 5년 넘게 달려온 길이라 나의 발걸음으로 이미 길은 평정되어 있다. 정지작업이 되어 있는 나의 길은 주인의 새로운 모습을 감싸 안아준다. 때론 나만의 달림길은 어느새 변덕쟁이 심술장이가 되어 버렸다. 대신 그만큼 그가 나에게 건네주는 기쁨은 너무 많다.
비로소 속내를 드러낸 가을산 겨울산은 초라해서 좋다. 화려한 옷가지며 분장을 털어버리고 속옷마저 벗어던진다. 허옇게 비치는 허벅지 속살을 밟으면 밟을수록 촉감이 부드럽다. 몽롱함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발걸음은 방향을 가끔 잃는다. 간혹 황토로 된 길을 밟으면 발가락 모두가 땅을 헤집기라도 하듯 발걸음이 멈추어버리기도 한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유년시절의 짝사랑 추억인양 온몸으로 땅은 발을 일방적으로 유혹한다. 유혹도 그러나 잠시, 소나무 뿌리가 드러난 줄기를 밟으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유혹은 정신과 육체를 넘나드는 유혹으로 이어진다. 평평한 돌에서 전해지는 찬 기운, 지난 가을 낙엽이 으스러지는 맨발 아래는 지상의 일들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내 그대를 어찌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 왜 그다지도 그렇게 무심했던가. 떨쳐버리고 지우고 잊어야할 지난 일, 지난 이야기라면 무엇 때문에 다시금 나를 찾는 것이요. 끊임없는 자연과의 대화는 이렇게 저렇게 미완의 모습으로 빈자리를 남겨 놓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발 아래로 자꾸만 향한다. 혹시 모를 유리조각이나 못이며 이질물들이 주로를 방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풀코스와 달리 벚꽃의 경치는 형편없다. 주최측의 차별이 거리를 기준으로 달라진 것은 행사 편의주의에 속한다. 어느새 5킬로미터 반환점이 나타난다. 자원봉사자에게 물었다. 이 코스가 대체 몇 킬로미터인지? 5킬로와 10킬로미터라는 답변이다. 하프를 뛰기로 했는데 이제 어쩔 수 없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우연이지만 자연스럽게 최소단위로 맨발로 달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전략과 의미도 달라진다. 달림길은 종류가 많다. 단순하게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횟수에 따라 그리고 성격에 따라 무수한 양상을 생산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관심의 초점은 달림길의 바탕에 대한 물음과 해소이다. 바탕에 대한 대응이 신발이냐 맨발이냐 이다.
즉 누구나 무리라고 생각하는 아스팔트길에서도 맨발로 달리기가 가능한가에 대한 자기 점검이다. 아니 실험적인 도전이다. 1970년대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인 아디스 아베베가 세계 마라톤 대회를 석권할 때도 그의 발은 테이핑한 맨발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달렸으며, 티브이로 중계된 일이 벌써 30년을 넘기고 있다. 따라서 이번 10킬로미터를 시물레이션 해서 나름대로 앞으로의 전략을 세우는데 자료로 활용할 계획으로 바뀐다. 물론 시계를 차지 않았다. 몸속에는 누구나 자신만의 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시 대략적인 과제가 주어진다. 1) 발바닥 테이핑, 2) 발목보호대, 3) 무릎보호대간의 기능을, 4) 흙길, 5) 산길, 6) 아스팔트길 등 경우의 수에 따라 각기 달리 하는 것에 대한 진단과 예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맨발로’만의 문제를 어떻게 대비하느냐이다. 연구 프로젝트 같다. 허나 거창한 것 같아도 실제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나에게 맞는 걸 찾는 과정이다. 문제는 복잡할 수 있으나, 답은 하나이다.
그런 탓인지. 달림길이 하나도 외롭지 않다. 역으로 흥미진지하다. 중간중간 나의 맨발을 보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다. 한결같이 나의 답은 “예, 그렇게 달립니다.” 아니면 미소로, 그것도 아니면 침묵으로 답을 대신한다. 징소리 장구소리 중간식수대 어느 하나 눈길을 주지 않고 달렸다. 가볍게 그리고 또 가볍게 말이다. 지리산 유평계곡에서 나는 달림의 소망을 ‘가랑잎처럼 헐거웁게 달리고 싶다’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러한 소망을 숲속 흙길에서 맨발로 이룰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마침점이 가까이 놓인다. 결승점의 도착시간은 풀코스 게시판에는 1시간 10분 정도며, 하프는 1시간 5분이 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임승차한 탓인지 가장자리로 두 손에 신발을 들고 칩 검사 카페트 위를 통과함으로써 나의 첫 맨발로 달리기는 끝난다. 대략 걸린 시간은 1시간이 채 안되는 것 같았다. 몸의 상태도 매우 가뿐하다. 하프를 달렸더라도 충분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달림길에서 20킬로는 10킬로미터의 단순 2배가 아님을 하프와 풀코스를 도전하면서 실제 체험했지 않는가! 스스로 만족하자. 그나마 부상 없이 완주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더욱이 앞으로의 일들이 남아 있지 않는가.
효마클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모두가 하프나 풀코스를 달리므로 자봉들이 보이지 않는 걸까? 정대우 님의 말대로 실내체육관 앞을 살폈으나 효마클 텐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옆쪽에 있는가? 아님 체육관 안에 있는가? 버스를 대절했으니 버스주차장에 있는가? 몇 번을 뺑뺑이를 돌아도 보이지 않는다. 춥다. 옷가지며 수건은 모두 승용차에 실려 있으니 빨리 자봉들을 만나 몸을 녹여야 한다. 손전화마저 없다. 이를 어찌한담. 결승점에 3번이나 가도 효마클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20분 정도 지나서야 마지막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마침 하프코스를 달린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다. 1시간 25분, 30분. 그렇다면 효마클 수준이라면 분명 30분대에 들어오는 달림이들이 있을 것이다. 해서 결승점에서 장구소리에 맞쳐 몸을 움직이면서 기다리니 효마클 복장의 달림이가 보인다. 이름을 묻고 그와 함께 체육관 앞 대회측 현수막 뒤편에 있는 자봉팀을 만날 수 있었다. 맨발로 자봉들과 오 총무 등 오순도순 추위를 녹이는 오뎅과 막걸리로 나를 맞는다. 고맙다. 반갑다.
맨발로 허재영의 전화로 마눌에게 전화를 한다. “가까이 있다”고 한다. “중간에 포기한거요?” 하프를 이야기하고 11시 30분 늦어도 12시 경 들어온다고 했으니 10시 30분경 전화에 대한 물음은 맞다. 늦은데다가 대열에 잘못 끼어들어 일찍 마쳤다는 이야기, 이미 체육관 근처까지 와 있다는 말을 서로 나눈 뒤 결승점 부근에서 만난다. 얼어붙은 몸을 승용차 안에서 녹이고 옷을 갈아입는다. 그 전에 발바닥에 붙은 테이핑은 온통 시꺼멓다. 오른 그리고 왼발바닥에 아스팔트와 가장 많이 닿은 부분은 너덜너덜 구멍이 나 있다. 앞쪽과 뒤쪽이 같게. 헌데 발가락은 물집이나 다른 이상이 없다. 나름대로 이를 토대로 분석을 해야 한다. 발목보호대와 무릎보호대 덕분인지 부산까지 승용차 운전에도 무리가 없었다. 정직한 달리기, 맨발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아무래도 여동생 때문에 효마클 회식에는 참석이 어렵다. 해서 부산으로 일찍 출발할 수밖에 없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류승관, 강정수, 민경식 님 등 그리고 오랜만에 보고 싶은 많은 효마클 얼굴들을 섬진강 강물에 벚꽃에 번갈아 떠올리면서 부산을 향한다.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한다. 이전과 달리 샤워가 간단하지 않다. 발바닥이 온통 시꺼멓게 물들어 있다. 미지근한 물로 비누로 몇 번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아스팔트의 끈쩍한 콜타르 같은 액체가 눌러 붙어 있어 이태리 타월로 북북 문질러기를 몇 번 겨우 발바닥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발바닥을 이처럼 애무한 적은 없었는데, 흙길이나 산길을 달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사소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늘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작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맨발로 달리기는 가능하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더욱이 아스팔트길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위험한 장사에 이문이 많다고, 안전한 흙길이나 산길은 그야말로 새로운 감동과 차원을 달리하는 달림의 한 형태임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맨발로를 매체로 한 글은 올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운 형태의 달림을 위한 노력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염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에 대해 고마움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한번 떠나온 始原으로 되돌아 가는 일은 결코 쉽지않은 험난한 길임에 분명할 듯 합니다. 이성과 지성이 범람하는 곳에서 한줄 본능의 빛을 봅니다.
왼쪽발 발허리뼈 머리부분 괜찮으신지요(압력이 많이 걸리던 부분)? 회복 잘 하시구요, 다음에, 값진 경험, off-line에서 더 듣고 싶네요.
달림에 대한 끝없는 탐구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맨발로'는 완주를 위한 '아스팔트 대회'에서보다 금정산 등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곳에서 계속되기를 기대합니다.
선배님, 소기의 목적을 무탈하게 달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일간 한번 보입시다.
중단 없는 도전 정신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새로이 펼치실 다음 도전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진짜 우리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시는 멋쟁이 ㅅㄱ 교수님 , 오래간만의 인사와 존경을 함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