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맥 지수’와 원-달러 환율의 앞날
2022/08/30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현상이 비슷한 물건이라도 가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대체로 국민 소득이 높고 인플레가 심하거나 화폐 가치가 높은 나라의 물건 값은 비싸고 반대의 경우는 낮다.
그러나 물건의 종류가 수천 가지나 되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빅맥 지수’다. 맥도널드는 전 세계 없는 곳이 거의 없고 여기에서 만드는 빅맥은 재료나 맛이 비슷하고 햄버거 원료값과 인건비, 매장 임대료 등 온갖 요소의 가격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물가를 재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1986년부터 한 나라의 구매력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빅맥 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비교적 정확하게 경제 실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지수가 유명해지자 아르헨티나에서는 2011년 물가 폭등을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빅맥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하도록 강요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빅맥 지수’는 특정 국가의 화폐가 과대 평가돼 있는지 과소 평가돼 있는 지를 재는데도 사용된다. 같은 빅맥의 가격이 미국에서는 평균 5달러인데 스위스에서는 미국 돈 6달러50센트를 주고 스위스 프랑으로 바꿔 사먹어야 한다면 스위스 프랑화는 30% 과대 평가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각국의 환율은 장기적으로 ‘구매력 등가’(purchasing power parity)를 향해 움직인다고 보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로 2007년 유로화는 1달러 60센트까지 치솟았던 적이 있다. 이 때 유럽의 빅맥 가격은 미국보다 60%가 비쌌다. 다시 말해 유로화가 60% 과대 평가돼 있던 것이다. 그 후 유로화는 하락을 거듭해 최근에는 1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빅맥 지수’에 따르면 현재 유럽 빅맥은 미국 빅맥보다 11%정도 싸다. 유로화가 이제는 저평가 수준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 비교는 유럽보다 높은 미국의 GDP를 감안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GDP가 높다는 것은 임금과 렌트비 등이 기본적으로 비싸다는 것인데 이를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GDP 조정 빅맥 지수’다. 이에 따르면 달러-유로 환율은 과대도 과소도 아닌 적정 수준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극도로 저평가된 화폐도 있다. 바로 일본 엔화다. 일본의 빅맥 가격은 미국보다 현재 40%가 싸다. 그냥 ‘빅맥 지수’나 ‘GDP 조정 빅맥 지수’ 모두 엔화가 40% 이상 저평가 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내년 미국 연방 금리는 3.5%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일본 금리는 향후 3년간 0.2%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국제 자본 입장에서 보면 엔화보다는 달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환율 변동이 금리 차에 영향을 받는 것을 투자가들이 ‘노출된 금리 등가’(uncovered interest parity)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빅백은 미국보다 32% 싸다. 다시 말해 원화는 30% 이상 저평가 돼 있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의 원-달러 환율은 달러 당 1340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2009년 외환 위기 이후 최고다.
원화가 이처럼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은 한미간의 금리 역전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양국 모두 2.5% 정도로 비슷하지만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FRB)는 올 9월 연방 금리를 최소 0.5%에서 0.75% 포인트 올릴 예정이고 내년에는 3.5%에서 4%까지도 바라보는데 한국은 가계와 부동산 부채 부담 때문에 그렇게까지 따라갈 형편이 못 된다.
그렇다면 환율은 앞으로 어디까지 오를 것인가. 정직한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일부에서는 1400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하나마나한 말이다. 1200원이던 환율이 1250원이 되면 1300원도 가능하다고 했다가 1350원을 돌파하면 1400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환율뿐 아니라 주식과 상품 가격 등 경제 현상의 공통점은 올라가는 날이 있으면 내려가는 날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변곡점은 모든 사람이 한쪽 방향으로 달려갈 때 오는 경우가 많다. 살 사람이 다 샀을 때 남은 것은 팔 사람뿐이다. 한미간의 금리 역전은 이미 시장에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한 달러의 강세는 지속되겠지만 한없이 올리지는 못할 것이고 인상의 끝이 머지 않았다고 투자가들이 느끼는 순간 환율의 움직임도 바뀔 것이다.
[미주 한국일보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