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3:1-6 간교한 요나답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6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본 장은 다윗의 밧세바 사건 이후, 나단 선지자가 예언했던 “칼이 네 집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심판이 자녀 세대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의 서막입니다.
사랑으로 위장된 욕망(1-2) 본 단락은 암논이 다말을 ‘사랑했다’고 기록하지만, 문맥을 살펴 보면 이는 인격적 헌신이 아닌 통제할 수 없는 정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처녀인 다말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암논을 병들게 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 병이 단순한 상사병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으로도 욕망을 즉각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지배자의 신경증적 집착이라고 분석합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떠난 인간의 욕망은 오직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좇으며, 결국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만듭니다.
똑똑한 요나답의 어리석은 조언(3-5) 암논의 곁에는 사촌 요나답이라는 아주 똑똑하고 눈치 빠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나답을 ‘하캄’ 즉 ‘심히 간교한 자’라고 묘사합니다. 본래 하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를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도덕성이 결여된 교활한 처세술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요나답이 진짜 좋은 친구였다면 따끔하게 제지하며 제동을 걸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범죄의 치밀한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타락한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세상 물정에 밝다 해도, 그 지혜가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이지 않고 죄를 짓는 데 쓰인다면 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독약과 다름없습니다.
함정(6) 요나답의 시나리오에 따라 암논은 침상에 누워 아버지 다윗의 병문안을 유도하는 함정을 팝니다. 여기서 다윗은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아들의 요청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무기력한 가장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죄는 이처럼 우리 삶의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마저 파괴의 도구로 악용하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가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성령의 다스림 안에 날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적용: 가족이나 이웃들을 향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기적인 욕심과 집착, 통제가 있지는 않은지 오늘 하루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묵상해 봅시다.
한 아이가 아끼던 반려견을 아버지가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아이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울부짖었지만, 훗날 성인이 되어서야 개가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을 막으려 했던 아버지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섭리와 사랑의 손길이 반드시 담겨 있습니다. 당장의 상황만 보고 슬퍼하기보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믿을 때 우리는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