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서예가에 바치는 찬가
何處一屛風(하처일병풍),
어디서 난 병풍인지,
分明懷素踪(분명회소종).
회소(懷素) 스님의 필적이 분명하구나.
*踪(종) : 자취. 형적.
雖多塵色染(수다진색염),
먼지 잔뜩 쌓이고 얼룩이 묻었어도,
*雖(수) : 비록. 밀다. 만일. 하물며. 즉. 짐승 이름(유).
*染(염) : 물들이다. 적시다. 쓰다. 더럽히다. 색칠하다. 더럽혀지다. 옮다. 익숙해지다. 스미다. 우려낸 국물. 여기서는 '바래다'로 해석함.
猶見墨痕濃(유견묵흔농).
먹의 흔적은 외려 더 선명하네.
*濃(농) : 짙다. 이슬이 많다. 우거지다. 태도나 행동의 정도가 깊다.
怪石奔秋澗(괴석분추간),
괴석이 가을 개울을 향해 내달리는 듯,
*奔(분) : 달리다. 향해 가다. 야합하다. 달아나다. 빨리. 별똥. 오르다.
*秋澗(추간) : 산골물. 산골짜기.
寒藤掛古松(한등괘고송).
마른 등덩굴이 노송에 걸린 듯한 글씨들.
*藤(등) : 등나무. 참깨.
*挂(괘) : 걸다. 입다. 건너다. 옷. 나누다.
若敎臨水畔(약교림수반),
이걸 만약 물가에 내다 놓으면,
*畔(반) : 두둑. 경계. 물가. 떨어지다. 배반하다. 어지러운 모양. 도망쳐 숨다. 굳세다.
字字恐成龍(자자공성룡).
글자 하나하나가 용으로 변할까 걱정이겠네.
*恐(공) : 두려워하다. 협박하다. 아마.
―‘초서 병풍(草書屛風)’ 한악(韓偓·약 842∼923)
승려 서예가 회소(懷素), 호쾌한 성품에 술을 좋아하여 도처를 유람하며 많은 문인 사대부와 교유했고, 술에 취해 거침없이 휘갈기는 초서 즉 ‘광초(狂草·미친 듯이 흘려 쓴 초서)’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청년 시절 그가 평소 흠모해 오던 이백을 찾자 아버지뻘 되는 이백 역시 그 기질과 글씨를 아껴 둘은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었고, 이백은 ‘회소의 초서가 천하 독보’라고 칭송한 장편시를 쓰기도 했다.
그 진귀하다는 회소의 초서 병풍을 우연히 접하게 된 시인은 흥분과 경이를 가누지 못한다. ‘먼지 잔뜩 쌓이고 얼룩이 묻었어도’ 대번에 회소의 필적임을 확신한 시인 역시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셈. 글씨의 기세와 붓놀림을 ‘괴석의 낙하’ 혹은 ‘마른 등덩굴의 형상’으로 비유한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 앞 시대 유명 서예가들이 글씨의 속도와 힘, 기세, 생명력 등을 강조하면서 쓴 비유를 시인은 회소의 글씨에 적용했다. 물가에 내놓으면 ‘글자 하나하나가 용으로 변할까 걱정’이라는 시인의 흐뭇한 상상이 흥미롭다.
✺ 草書歌行(초서가행) <李白(이백)>
李太白(이태백)이 懷素(회소)를 찬양한 詩(시)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2년(759), 이백은 무협에서 사면을 받아 夜郞(야랑)에서 배를 타고 江陵(강릉)으로 돌아가는 중에 동정호 일대를 돌아보다가 소문을 듣고 찾아온 懷素(회소)를 만났다. 스물두 살 젊은 승려 회소는 이백에게 시 한 수를 청했고 이백은 그 자리에서 청년명필 회소를 찬양하며 지어준 시다.
少年上人號懷素(소년상인호회소)
젊은 스님 법명을 회소라고 하는데
草書天下稱獨步(초서천하칭독보)
갈겨 쓰는 초서가 천하제일이라네.
*獨步(독보) : 비교가 되지 않다. 유일하다.
墨池飛出北溟魚(묵지비출북명어)
붓과 벼루 씻은 못은 큰 고기가 뛰놀고
*墨池(묵지) : 벼루. 붓과 벼루를 씻은 연못.
*北溟(북명) : 북쪽에 있는 바다. ‘北冥(북명)’으로도 쓴다.
筆鋒殺盡中山兎(필봉살진중산토)
붓털 위해 산중 토끼 많이도 죽었다지
*中山(중산) : 山中(산중)
八月九月天氣涼(팔월구월천기량)
더운 여름 다 지난 서늘한 날에
酒徒詞客滿高堂(주도사객만고당)
술꾼과 문인들 큰 집 가득 모였는데
牋麻素絹排數廂(전마소견배수상)
좋은 종이 흰 비단 방마다 펼쳐있고
*牋麻素絹(전마소견) : 종이와 흰 비단.
*廂(상) : 본채 옆에 붙어있던 곁채
宣州石硯墨色光(선주석연묵색광)
선주산 돌벼루에 먹물 가득 갈려있네
吾師醉後倚繩牀(오사취후의승상)
스님 술에 취해 호상에 몸 기댄 채
*繩牀(승상) : 坐具(좌구). 등받이가 있는 의자.
須臾掃盡數千張(수유소진수천장)
순식간에 몇 천 장 써버리는데
飄風驟雨驚颯颯(표풍취우경삽삽)
폭풍 일듯 소나기 내리듯 소리 놀랍고
落花飛雪何茫茫(낙화비설하망망)
꽃 지고 눈 날리듯 아득하여라
起來向壁不停手(기래향벽부정수)
일어나서 벽 위에 쉼 없이 손 놀리니
一行數字大如斗(일행수자대여두)
한 줄에 네댓 자요 글자마다 큼직한데
怳怳如聞神鬼驚(황황여문신귀경)
귀신들 놀라는 소리 들리는 것 같고
*怳怳(황황) : 정신이 없는 모양. 불안해하는 모양.
時時只見龍蛇走(시시지견용사주)
보이는 건 내달리는 용의 모습이네
左盤右蹙如驚電(좌반우척여경전)
넙적해졌다가 가늘어지는 건 순식간이고
*左盤右蹙如驚電(좌반우척여경전) : 왼쪽은 넙적하고 오른쪽은 줄어든 모양으로 재빠르게 붓을 놀리는 것을 가리킨다.
狀同楚漢相攻戰(상동초한상공전)
모양새 한나라와 초나라 싸우는 것 같네
湖南七郡凡幾家(호남칠군범기가)
호남의 일곱 군 몇 집인지 모르지만
*湖南七郡(호남칠군) : 東漢(동한) 때 荊州(형주)는 南陽郡(남양군), 南郡(남군), 江夏郡(강하군), 零陵郡(영릉군), 桂陽郡(계양군), 武陵郡(무릉군), 長沙郡(장사군)
家家屛障書題遍(가가병장서제변)
집집마다 병풍 글씨 없는 집이 없네
*屛障(병장) : 屛風(병풍)
王逸少, 張伯英(왕일소, 장백영)
왕희지와 장지처럼 글씨 잘 쓴다면서
*王逸少(왕일소) : 東晉(동진)의 서법가 왕희지를 가리킨다. 왕희지 자가 逸少(일소).
*張伯英(장백영) : 東漢(동한)의 서법가 張芝(장지)를 가리킨다. 그의 자가 伯英(백영).
古來幾許浪得名(고래기허낭득명)
지금까지 방자하게 이름 얻은 이 몇이던가
張顚老死不足數(장전노사부족수)
늙어 세상 떠난 장욱 셀 필요도 없지만
*張顚(장전) : 唐朝(당조)의 서법가 張旭(장욱)을 가리킨다. 초서를 잘 썼는데 술에 취하면 미친 사람 같은 태도를 보여 사람들이 ‘張顚(장전)’이라고 불렀다.
我師此義不師古(아사차의불사고)
스님 글씨 옛사람 법 따른 것이 아니라네.
古來萬事貴天生(고래만사귀천생)
예로부터 귀한 것은 하늘이 낸다 하였는데
何必要公孫大娘渾脫舞(하필요공손대낭혼탈무)
무엇 때문에 공손대랑 넋 빼는 춤 필요하리.
*公孫大娘(공손대랑) 구 : 唐朝 開元(당조개원) 연간에 敎坊(교방)에서 활약한 유명한 舞妓(무기).
✵회소(懷素, 725or737~785?)는 중국 당대(唐代) 경조(京兆) 만년(萬年) 승려이자 서예가로 속세의 성은 전씨(錢氏), 자는 장진(藏眞), 치요(致堯), 치광(致光)이고, 소자(小字)는 동랑(冬郞)이며, 호는 옥산초인(玉山樵人)이다. 영주영능(永州零隊, 湖南省)사람. 어려서 불도로 입문하여 종형제인 오동으로부터 왕희지(王羲之)의 『악계첩(惡溪帖)』, 왕헌지(王獻之)의 『소로첩(騷勞帖)』을 얻어 고차각(古釵脚)의 서법을 익혔다. 만년 안진경(顔眞卿)을 만나 옥루흔(屋淚痕)의 법을 듣고 스스로 하운(夏雲)의 기봉(奇峰)을 보고 벽탁(壁拆)의 법을 터득하였다. 그 서필(書筆)은 장욱(張旭)의 광초(狂草)의 흐름을 따랐고 술에 취하면 사찰의 벽이든, 마을의 담벽이든, 옷자락, 그릇, 접시 등 닥치고 잡히는대로 써 갈겼다 한다.
소종(昭宗) 용기(龍紀) 원년(889) 진사에 급제하여, 중서사인(中書舍人)과 병부시랑(兵符侍郞),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를 역임했다. 재상 위이범(韋貽范)이 모친상을 당하자 이무정(李茂貞)이 그를 다시 불러오려고 하니 만류했다. 황제가 봉상(鳳翔)에서 돌아오자 기밀(機密)을 처결했는데, 황제의 뜻에 잘 맞아 여러 차례 재상에 앉히려고 했지만 모두 사양했다. 소종(昭宗)의 신뢰가 두터웠고 당나라에 충절을 다했지만, 주전충(朱全忠)의 미움을 받고 등주사마(鄧州司馬)로 폄적되었다. 다시 불렸지만 사양하고 가족을 데리고 민(閩)으로 달아나 그곳의 지배자 왕심지(王審知)의 보호를 받다가 죽었다. 시를 잘 지었는데, 염정(艶情)의 색채가 진해 향염체(香奩體)로 불렸다. 작품에 『자서첩(自敍帖)』, 『초서 천자문』, 『성모첩(聖母帖)』, 『장진율공첩(藏眞律公帖)』등이 있다.
✵한악(韓偓, 약842~923)은 중국 문학사의 시대 구분에 따른 당나라 후기 만당(晩唐)시대 시인으로, 용기(龍紀) 원년(元年:889) 진사에 급제, 병부시랑과 한림학사 등의 관직을 지냈다. 이상은(李商隱)과 교유하며 인정을 받았는데, 남녀간의 농밀한 애정을 다룬 향염체(香艶體) 시로 유명하다. 문집인 《韓內翰別集(한내한별집)》과 향렴체 작품을 모은 《香匳集(향렴집)》이 전한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8월 23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