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땅끝
- 이문재
그날 처음
땅끝에 왔을 때는
혼자서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다음 둘이서 왔을 때는
섬과 섬 사이를 바라보았다
사방으로 달려나가다 문득 멈춰
바다 밑으로 빠져드는 섬들을 보았다
오늘 여럿이 와서 보았다
모든 섬이 바다 밑으로 이어져 있으며
땅은 땅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한 치의 빈틈없이 이어져 있었다
땅과 바다 또한 서로 이어져 있었다
땅끝이자 땅의 시작
바다의 시작이자 바다의 끝 여기
지구의 피부 위 작디작은 한 지점
두 팔 벌려 하늘을 우러르다 보았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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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보는 풍광은 새롭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가서 또 보게 되면 첫 느낌과는 다른 묘한 감정이 생깁니다
화자에게 땅끝마을도 그랬나 봅니다
혼자였을 때와 둘이였을 때가 달랐고, 여럿이었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습니다
모든 끝은 시작과 닿아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땅의 끝이니 바다에 닿았고, 바다에 떠 있는 섬과 섬 사이가 보였는데
오늘은 바다 밑으로 이어진 섬과 이어진 땅의 시작도 보인 겁니다
총선을 33일 앞두고 후보자들의 입씨름과 말싸움이 극단적으로 부딪힙니다
그러나 무엇을 심판한다는 것도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정치인도 그저 사람임을, 잘난 척해도 잠시 잠깐이라는 걸 이미 깨달았습니다
모든 끝과 시작은 이렇게 맞물려서 자연 생태계를 이루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