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촌 일기-農者天下之大本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농업이 바로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으로, 농업을 장려하는 말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나도 농사를 짓는다.
예부터 지은 것은 아니다.
6년 전 이맘때쯤의 일이다.
내 고향땅 문경시 문경읍 교촌에 650평 밭을 사들여서 생전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농사를 짓기로 작정하고 그 밭을 사들인 것은 아니었다.
훗날 내가 법무사 현역을 그만 두었을 때, 아내와 함께 만년의 한가로운 삶을 즐길 생각에서 작은 집 한 채 지을 터를 미리 잡아놓을 요량에서 그 밭을 사들였었다.
그런데, 허구한 날을 빈 밭으로 그냥 둘 수가 없어, 상추도 심고 쑥갓도 심고 부추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고추도 심고 땅콩도 심고 메밀도 심고 하다 보니, 그게 농사가 됐고, 나와 아내는 어느덧 농군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된 것이, 그동안 주위로부터 얻어들은 그대로, 농사는 역시 어렵다는 것이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면, 농사가 무얼 그리 어렵냐 할 것이지만, 콩 심은 데 팥 심은 데서, 콩이나 팥보다 잡초가 더 많이 나는 것이 농사 현장의 풍경이다.
그 잡초를 솎아내야 하는데, 그게 참 안 쉽다.
한 번 솎아내는 것으로 끝이면, 그게 또 무얼 그리 어렵냐 할 것이지만, 뽑아도 또 나고 또 나고 하는 것이 잡초의 속성이고, 그 속성을 감당할 수가 없으니 농사짓기 어렵다 하는 것이다.
마치 전쟁하다시피 혼신을 다해야 그나마 작은 소출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곧 농사다.
“한 3년만 지어봐. 아마 덧정 없을 거야.”
내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그 처음에, 나와 유난히 친한 중학교 동기동창인 박희구 친구가 이차저차 요차조차 농사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내게 그렇게 경고 한 마디도 보탰었다.
농사를 두고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한 것도, 바로 그 농사짓기의 어려움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 보다 더 어려운 난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농사짓기에 그런 난관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아내와 오순도순 정겨운 어울림만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농사를 지어가면서 그 난관이 하나둘 불거지기 시작했다.
바로 ‘다른 생각’ 그것에서 비롯된 난관이었다.
예를 들어 이렇다.
나는 관리기로 땅을 파서 뒤엎는 것이 우선이다 생각하는데, 아내는 상추밭에 물주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나는 오늘 농사는 토마토 따는 것으로 끝이다 하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가지도 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나는 비료를 안 주고 밭을 갈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퇴비를 뿌려놓고 밭을 갈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나는 이 정도 잡초를 솎아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잔챙이까지 다 솎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다.
그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괜찮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난관이 오고 또 오고 했다.
햇비농원 그 텃밭에 갈 때마다, 꼭 다른 생각들이 튀어나와서, 그 다름으로 아내와 다투기를 숱하게 했다.
생각이 다르면 맞추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쉽지를 않은 것이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든다.
밭을 갈아엎으려고 관리기 시동을 걸어 막 몰고 텃밭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딱 가로막고 나서는 경우다.
하는 말이 이렇다.
“그냥 갈면 어떡해요. 퇴비를 뿌리고 갈아야지요.”
퇴비를 뿌리는 일이 보태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텃밭에 퇴비가 없다는 것이다.
차를 몰고 가서 퇴비를 사와야 하고, 그러려면 뻑뻑한 줄을 힘껏 당겨서 기껏 걸어놓은 관리기의 시동도 일단은 꺼야 하는데, 그것이 가외의 일이 되어서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그 퇴비를 사오는 과정에서 차 안에서 퇴비 냄새가 배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 냄새가 또 싫다.
그렇게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면, 주둥이가 툭 튀어 나오고 그 튀어나온 주둥이로 궁시렁궁시렁하게 되는데, 이제는 아내가 내 그 하는 짓이 보기 싫은 것이다.
결국 티격태격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고 만다.
만년의 여유로운 삶을 위해 마련한 텃밭이 자칫, 부부 갈등의 텃밭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내 입장에서는, 바로 그 생각 다름이 농사짓기를 참 어렵게 했었다.
2018년 4월 1일 일요일이었던 어제만 해도 그랬다.
올해 농사는 보랏빛 꽃이 예쁜 도라지를 심는 것으로 하겠다는 아내의 뜻을 존중해서, 그 씨를 사겠다고 80리길 점촌까지 달려갔다.
도라지꽃은 봤어도, 새카맣고 좁쌀만 한 크기의 그 씨는 내 처음 봤다.
“한 봉지 몽땅 만원만 주세요.”
종묘상 주인아주머니의 말투가 시원해서, 한 푼도 안 깎고 그 씨 값을 치렀다.
“이것도 한 번 뿌려보세요. 더덕요.”
언뜻 느낌에 도라지보다 더덕이 먹기에는 더 좋겠다싶었다.
“더덕 씨값이 훨씬 비싸긴 하지만, 아주 싸게 드릴게요. 이거 한 봉지에 2만원만 주세요.”
역시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시원했다.
아내가 도라지씨만 사오라고 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노란 더덕씨를 봤으면 그 씨에 대한 욕심도 내겠다싶었다.
텃밭에 빈자리가 많으니, 거기에 더덕을 심으면 되겠다싶었다.
그래서 도라지씨와 더덕씨 해서, 3만원에 그 씨 두 봉지를 넘겨받아, 얼씨구나 햇비농원 그 텃밭으로 내달렸다.
아내로부터 잘했다는 소리를 듣겠다싶었다.
그래서 가는 길에 막 피어나는 길가 벚꽃 구경을 하면서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불렀다.
그렇게 콧노래까지 부른 내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다.
아내로부터 칭찬을 들을 줄 알았던 것은 헛꿈이었다.
꾸지람만 들었다.
그 꾸지람, 곧 이랬다.
“더덕 씨는 왜 사오셨어요. 심어도 그늘에 심어야 하는데, 이 밭에 그늘이 어디 있어요. 괜히 돈만 날렸잖아요.”
슬슬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텃밭 일을 돕고 있던 앞집 과수원의 안가현 친구가 실실 웃고 있는 것이, 내 기분을 더 나쁘게 했다.
그렇다고 대들어 다툴 수도 없었다.
아내가 한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탓해야 했다.
내 손으로 내 머리를 탁탁 치면서 이리 궁시렁거렸다.
“에이, 빙신 빙신”
첫댓글 그래 온갗거 다해봐야 알아요^^
마트에 가보면 그힘들기 지은 농민들의 피땀이 너무 헐값에 팔아지니 사먹는 현실은 좋을지모르나
이렇게 막상 너무힘든 농사일에 맞들리면~덧정없을께라~근데도
어부인께서는 일하는 재미를 아시는거 같아 그리고 가을걷이의 보람도 만끽 하시는거 같아 좋아여^^
티걱태걱해도 세월은간다~^^잘 해보시게~여름,가을걷이때 나팔이나 들고 또 방문해 보지러...ㅎ
더덕을 잘 파종해서 길러서 1년후 이식하여 덩쿨 올라갈 울타리 만들어주면 재미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