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이제 더위도 며칠않남았네
심심하면 내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민망해서 조금 자랑도 섞이고 그런맛에 글도 쓰고 싶은 것이니까 이해하게,
그러나 과장하거나 거짓은 말하지 않겠네 . 이제와서 무슨 자랑이 있겠냐만 그래도 사람사는 진솔한 이야기는우리의
활력소로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싶다.
베이징 올림픽승전보 소식에 기분도 좋고 마치 내가 메달을 딴것처럼 좋아하는 국민들의 모습은 정말 감격스럽다.
얼마나 큰돈을 투자해야 국민들이 저만큼 좋아할까 라고 생각이 미칠때 국민을 단합시킬수 있는 가장큰 구심점은 스포츠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도없다 . 나도 젊은 선수시절에 올림픽에 꿈을 실현시키기위해 열정을 불태웠지만 많은 이유로 좌절되었다. 이후 은퇴하고 영남대학유도감독시절에 제자들에게 내가 못이룬꿈을 실현 시키기위해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이 집단이탈하여 학교서 쫓겨날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혹독한 훈련을 시켜 88올림픽에서 -65Kg에서 이경근선수가 금메달을 회득했고 92년 아트란타 올림픽에서 -71Kg에서 곽대성선수가 은 메달을 획득한바있다 .
세월은 흘르서 이경근선수는 한국마사회 감독이 되었고 ,곽대성선수는 청와대 경호원이 되어있다 .
-60Kg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민호선수소속 감독인것이다 .나도 그러한 인연으로 열심히 경기장면을 TV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흥분하여 관전 하였다 . 공교롭게 최민호선수는 진량고등학교를 졸업했는 데 그선생이 매일신문에 기사화된 김례수선생도 내 제자로 최민호선수를 키웠고 실업팀으로 간 최민호선수를 직접 지도하여 금메달을 따게한 이경건 감독도 내제자 여서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민호선수가 금메달획득후 30분쯤후에 이경근감독이 나에게 베이징에서 폰으로 금메달획득소식을 전하면서 88올림픽때 선생님 심정을 알겠다고 울먹였다 .
이제 나도 60 이넘어가고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된것같다 .
흘르간 세월을 회고 하년서 지나치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조용히 살고싶다
이제 내제자들이 사회곳곳에서 교사로 , 공무원,경찰간부,사업가로 로 휼륭한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고 나역시 학교생활을 하면서 정년토임후 노후에 갈곳없이 괜히 방황할까봐 학교뒤에다 터밭을 마련 했다 ,
일찍이 농고에 다니면서 등넘어 배운기술로 밭고랑도 타고 씨를 뿌려 먹는 것은 자급자족 하고 있다. 메살도 따서 평소에 신세진분들께 나누어 주는 기분도 좋다 . 가끔 주의에 친구들 제자들이 찿아와도 누추한 모습그대로 삼겹살을 꾸어먹기도 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지금이 가장 행복 할것같다
가끔은 60-70년대 우리나라가 못살때 해외로 돈벌러나간 선후배들이 이제 반백이 되어 대구에 들리면 극진히 모신탓에
돌아가서 초청이 쇄도한다. 그중후배 한 친구가 뉴욕에서 거부가되어 민망할정도로 수차례 초청을해서 마누라와 같이가니까 정말 맨하턴에서 약200평 정도의 점포가 4곳을 운영하고 있고 한달 수익이 3-4억에 이르는 성공한 친구였다
주택은 뉴욕에 백인들이 가장 살고싶어하는 캐니디공항이 가까운 맨아샌에 위치한 대저택이 였다.
이곳저곳 관광을 부부가 동반하여 안내해주고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이친구는 정말20년전 영남대1학년때 유도부로 있다가
너무가난해서 학교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고생한 이야 기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 그래 인생이란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무언가 이루고 성공하면서 좌절해보지 않는 사람있나? 친구들 열심히 살아보자 . 다음 3탄 기대하라
건강하시고 즐겁게
첫댓글 삶의 이야기야 재미있다 다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