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입대를 하고 몇 달이 사이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큰딸마저 시집을 가버리니 세 사람의 수저가 할일 없이 수저통에 누워 있다. 다른 수저를 집어 낼 때마다 이리저리 부딪치기만 해서 세 벌을 꺼내 따로 간수해 두었다.
그 동안 식탁 한 쪽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저통 속에 은수저 여덟 벌이 들어 있었다. 한 쌍씩 모양이 다른 무늬는 같지만 색깔이 틀려 식구마다 자기 수저가 있다. 칫솔통에서 칫솔 뽑아 쓰듯 각자 수저를 골라 먹는다. 처음에는 어른들만 수저를 사용하고 아이들은 자라는 대로 전부터 있던 스테인리스 주저로 먹었기 때문에 수저통 속에 은수저와 스텐수저가 섞여 수저통을 열 때마다 무언가 조화롭지 못하고 볼품이 없었다. 밥상에 수저를 둘러놓아도 서로 격이 맞지 않고 정돈된 맛이 없었다. 아이들이 자란 뒤 각각의 몫으로 은수저 네 벌을 샀다. 스텐수저를 꺼내버리고 수저통에 식구 수 대로 은수저만을 가지런히 채워 넣던 날, 해말갛게 빛나는 은수저들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고 한 움큼이 넘는 수저의 중량감은 우리 집이 갑자기 부자가 돼 살림 규모가 늘고 생활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듯 마음이 뿌듯해왔다. 은수저로만 상을 차리니 반찬 가지 수보다 식탁이 더 풍성해 보였으며 같은 쌀이라도 은숟가락으로 떠먹는 밥은 기름이 자르르해 금방 살이 오를 것 같고 은젓가락 끝에 집히는 나물마저 훨씬 향긋했었지. 밥이 늦어 서두를 때는 누가 식탁에 수저만 놓아주어도 수월했었다. 지금은 가족이 줄고, 함께 밥 먹는 경우도 별로 없어 숟가락 좀 놓아달라고 소리 지를 일도 누가 내 수저로 밥 먹었느냐며 서로 다투는 일도 없다. 시어머님이 쓰시던 방이 아직도 텅 비었고 자매가 한 방에서 복작대다가 언니가 결혼해서 짐 꾸려 나간 방에 동생 혼자 덩그마니 앉아 있다. 군대간 방 주인의 체격이 워낙 커서 좁아 보이기만 하던 막내아들 방마저 휑하니 넓기만 한데도 정작 가족들의 빈자리는 방이 아니라 수저통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 어디나 사람 나간 자리는 희미해지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는 조그만 수저통이 왜 이리도 가벼운지. 우리 어머니들은 가족이 멀리 떠나 있으면 때를 거리지 말라고 아침저녁으로 주발에 밥을 담아두셨다는데 나는 수저통의 남은 자리가 허전하고 쓸쓸해서 치워둔 수저들을 다시 꺼내왔다. 요즘은 내 수저만 고집하지 않고 집에 없는 식구들 것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서 쓴다. 수복壽福이 새겨진 것은 왼손잡이 막내 수저다. 숟가락을 쥐기 시작 할 때부터 손을 때려가며 오른손을 쓰게 했어도 바꾸지 못하더니 지금은 양손으로 먹는다. 십 수 년도 넘은 어머님 수저는 닳고 닳아 무늬를 알아보기가 어렵다. 식사 중에 어머님이 수저 색깔이 변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계란프라이의 노른자에 있는 유황 성분 때문이었던 것을. 숟가락을 주발 위에 질러놓고 언제나 밥 위에 반찬을 얹어드시던 시어머님의 숟가락은 생전에 예뻐하시던 큰손녀 사위가 처갓집에 오면 놓아주고 있다. 눈이 큰 맏딸은 어려서부터 자 울었다. 밥상머리에서 야단을 맞으면 수그린 두 눈에서 금방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밥을 적셨다. 그때마다 눈물이 들어간 밥을 떠먹을 것인가, 먹지 말고 그냥 일어나 버릴 것인가 하고 식탁 위에 숟가락만 빙빙 돌리다가 어른들한테 또 꾸지람을 들었다는 얘기를 시집간 뒤에야 듣고 새삼 마음이 찡해 왔다. 밥 먹을 때는 개도 걷어차지 않는다고 했는데 밥상 앞에서 어린애를 울려야만 했던가 하고. 친정에 다니러 오면 언제라도 꺼내서 옛날 생각하며 많이 먹으라고 뽀얗게 닦아 수저통에 넣어둔다. 중국 고사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집에 옥玉 젓가락이 생겼다. 옥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니 옥그릇이 있어야겠고 옥그릇은 옥상玉床에 놓아야 되고 옥상을 차리니 방도 고급스럽게 치장해야했다. 그 방에 어울리는 호화로운 집까지 갖추고 살다가 그만 망했다고 한다. 나는 이 젓가락 저 숟가락 번갈아 들면서 집밖에 나가 있는 가족들이 끼니를 거르는 일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며 날마다 가족들을 손끝 가까이 느끼고 있다. 은수저에 알맞게 은쟁반이라도 마련하고 싶지만 식구들이 은수저로 맛나게 식사하는 즐거움만이라도 오래오래 누렸으면 좋겠다. @
이부림
광주 출생. 본명 李福順 숙명여대 가정학과 졸업. 숙대신보사 전임기자 아카데미하우스 하우스마더 MBC 아나운서 '문예사조' 수필 신인상.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 '대문 안쪽' 공저 : '혼자 피는 꽃' '우리가 꽃갑이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