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
“부분적으로 서양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 그러나 그건 좋은 거네. 중전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네. 우리는 너무나 오래도록 낡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왔다고 말이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적으로 서양의 영향을 받도록 우리들 자신을 방임하자는 말은 아니네. 우리가 많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어느 정도 그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네.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 접목하고 혼합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을 하나로 만들어 독립된 국가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과제네. 그러나 그 하나가 무엇이겠는가? 아, 그게 문제네! 나는 그것에 대답할 수가 없네. 그러나 이제 내 아이들을 위하여 해답을 찾아내야만 하네.”
(49)
그는 옆으로 본 여자의 얼굴에 감탄했다. 참으로 잘생겼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는 청나라나 일본 장사꾼들도 본 적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체구가 작고, 중국 사람들은 피부가 누런 데다 머리칼은 더 까맣고 빳빳하다. 이 고상한 사람들이 어떤 불행을 타고 났기에 남들이 탐내는, 좁고 산이 많은 땅에 갇혀 있는 것인가! 만약 이 백성들을 평화롭게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마음대로 꿈을 꾸게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그들은 노래를 만들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릴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바야흐로 주위의 굶주린 나라들은 입맛을 다시고 있고, 문관인 동반은 점점 부패해 가고 있으며, 호시탐탐하는 서반은 또다시 밑으로부터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80)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나라는 노서아와 일본입니다. 이 두 나라의 통치자들은 탐욕스럽고, 그 국민들은 통치자의 속셈을 모릅니다. 더구나 그 나라들은 평화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작은 나라이므로 야심이 큽니다. 작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하기 못하기 때문에 한번 야심을 품으면 무섭습니다. 일본은 큰 머리를 가진 작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야심이 없는 큰 나라와 맹방이 되어야 이 작은 나라의 침략을 막을 수 있습니다. 청나라라 할지라도 지금은 우리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양 우방을 가져야 합니다. 이홍장은 이 점을 알고 우리에 대한 종주권을 유지하려고 협조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더러 미국과 조약을 맺으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10)
그는 이제 백성들의 참모습을 소상히 알게 된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다. 조선 사람들은 용감하고 강인했으며, 용기뿐만 아니라 감탄할 만한 낙천성으로 시련을 견뎌내고 있었다. 부처님한테서도 임금님한테서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조그만 행운에도 고마워하며 스스로 돕고 또 서로 도왔다. 거칠면서도 순박했고 폭풍우와 추위와 먹구름 아래서 자연과 맞서 싸웠지만 혼자가 아니라 나란히, 다 함께였다.
(179)
조선 왕조 제 26대 왕인 고종은 아직도 한창 나이의 청년이었다. 왕이 된 이래 대비 조씨와 아버지 대원군 사이에서 자랐다. 두 분 다 성격이 강했다. 대원군은 저돌적인 의지를 가진 사내였고, 조대비는 여자의 완고한 고집을 깊이 간직한 분이었다. 두 분다 그를 어린아이 취급했고, 따라서 그는 더디게 철이 들었다. 그는 이따금 두 분 사이에서 씨름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민씨 문중의 아름다운 규수를 왕비를 맞이함으로써 세 사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신세가 됐다.
(211)
“조선의 유일한 희망은 과거를 떨쳐 버리고 현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이제 조그만 나라도 과학과 가계의 힘으로 강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말이오.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을 뽑아 당신네 나라에 유학을 시킨 다음 돌아와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해야 하오. 우리는 젊은이들을 위한 대학을 세워야 합니다. 허나 민 대감의 힘이 이리 막강한데 역시 설득할 수 없을 게 분명하오. 민 대감이 중전의 조카니까요. 그 짐작이 틀렸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오. 두렵고 안타까운 추측이긴 하지만, 민 대감은 자기가 본 것에 겉으로만 관심을 기울이는 척할 거요. 개혁을 건의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은밀히 방해 공작을 꾸밀 거라는 얘깁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을 바로 그거예요.”
(236-237)
“대감, 저는 애국잡니다. 저는 백성들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대감보다 더 우리 백성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농민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는 장본인입니다. 세금을 내는 것도 그 사람들뿐이에요. 우리나라에는 대감께서 서양 나라들에 있다고 말씀하신 그런 산업이 없으니까요. 이 나라에서는 모든 세금이 땅에서 나옵니다. 상감께서 새로운 개혁 정책, 다시 말해서 외교관이나 사절단, 새 기계 등속은 말할 것도 없고, 신식 군대니 우정국이니 대감께서 하셨던 그런 해외 순방이니를 추진하는 비용이 대체 어디서 나옵니까? 모두 농민한테 세금 물린단 말입니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란다는 듯이, 왕실은 누구 돈으로 그리 사치를 일삼는 겁니까? 궐 밖도 마찬가집니다. 보잘것없는 고을 사또까지도 대궐 같은 집에 사니까요. 게다가 중전마마의 외척이며 총애하는 측근들이며… 그 돈을 다 누가 치릅니까, 누가요? 바로 땅을 부쳐 먹고 사는 농민들입니다. 자기네 것도 아닌 따, 어느 대지주의 것이라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그런 따 말이에요. 게다가 지주들은 세금도 내지 않아요. 세금을 내는 것은 그 땅에서 소작을 부쳐 먹는 천한 농민들이란 말입니다! 대감께선 한 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290)
모든 일이 흡족하게 마무리되자 궁왕은 장례일을 선포했다. 밝고 화창한 날씨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녀의 온갖 변덕과 고집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과 쾌활함, 용기와 명석한 두뇌, 심지어는 그 억센 의지까지도 사랑했다. 중전이 죽은 이제, 사람들에게 그녀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조국의 옛모습을 영원히 상징하는 존재였다. 이미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 일본이 조선의 옛 전통과 언어, 생활 방식을 말살하는 일에 착수한 것이다.
(298-299)
“아아, 당쟁 때문이지. 그게 우리의 죄야. 어떻게 해야 적을 물리치고 자유를 지킬 수 있는지, 우리는 그 방법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시간만 허비했어. 수세기에 걸친 당쟁이 우리나라를 분열시켜왔어. 분열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거야. 우리 자신의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어. 이씨, 민씨, 박씨, 김씨, 최씨 같은 명문가도 사라졌고 실학파, 동학당 등도 다 쓰러졌어. 다행히 지금은 상하 귀천 없이 온 백성이 잃어버린 독립을 되찾는 갈망으로 뭉쳐 있다. 이제는 우리들끼리 서로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일본놈들만을 미워하게 되었으니 아마 일이 좀 더 쉽게 풀리겠지.”
(357)
“제 이야기는… 아버님께서 제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하시게 되면… 제 이름을 영영 들으실 수 없게 되면… 이 아들 역시 하나의 갈대였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제가… 갈대 하나가 꺾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다시 수백 개의 갈대가 무성해질 것 아닙니까? 살아 있는 갈대들 말입니다.”
(480)
아무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농민은 땅을 경작했고, 바닷가 어민은 고기를 잡았고, 선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운하와 강줄기에서 북적거리며 살았다. 그는 이 방대한 대륙과 수많은 민중이 자발적으로 혁명에 동원될 수 있을지, 혹은 그들이 진정 동원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커다란 의구심을 품었다. 생활은 풍습과 전통 속에서 그런대로 안정되어 굶주리지 않았고, 어쩌다 욕심 낳은 지주를 빼고는 그들을 억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찻집에서 그는 웃음소리와 재치 있는 농담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통통하게 살이 쪘고 아낙네들은 분주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누구를 적으로 하여 봉기한단 말인가? 그들이 요구는 단지 자기들을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늙은이든 젊은이든 그에게 수차례 해 준 말이 있었는데, 국민을 다스린다는 것은 조그만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으니, 되도록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노자의 가르침이었다.
(563)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의 아늑한 방에서 연춘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닿을 수 있는 연락망을 짜기 시작했다.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인들로 하여금 승전에 대비하게 하여 일본이 쫓겨 가면 곧바로 기능을 수행할 정부를 갖추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나라, 특히 미국에 있는 동포들을 분발시킴으로써 승리를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수백 년 동안 조선의 해안과, 산지에 감추어진 귀중한 광물들, 어장들, 그리고 유속 빠른 강과 좋은 항만 조건을 탐내 왔다. 그는 혁명이 일어났다 해서 러시아의 본질까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나라의 야욕은 굶주린 이들의 새 정권에 의해 오히려 날카로워지고 강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조상은 아사지경의 농민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살찌고 부유해질 차례가 왔다는 것이었다.
(575-576)
“선생은 열반의 의미를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열반은 비존재가 아닙니다. 사실은 고통의 부재, 죄업의 부재, 정욕의 부재, 그리고 미혹의 부재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지, 비존재라 해서 열반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정반대로 열반을 선생이 말하는 바로 그 전존재이지요. 그것은 완전한 깨달은, 완전한 인식, 완전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말이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상태 말이지요. 말이 없어도 우리는 그냥 압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열반에 든 정신과 영혼한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괴로움, 고통, 정욕, 미혹 자체의 부재는 이미 알고 있음의 결과, 즉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이 영원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 깨달음의 결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