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비를 맞으며 도착한 제철도시, 광양(순천 - 광양 28km)
4월 25일,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살피니 비가 내린다. 뉴스에서는 오늘 내내 지리산과 남해안에 100mm안팎의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다. 며칠 전에 강풍과 폭우 속에 24km를 걸었으니 오늘도 그렇게 걸을 생각을 하니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전 8시, 순천시청에서 출발하는 시간에 관계국장과 과장이 나와 목적지까지 무사히 완보하기를 당부하며 환송해준다. 간단히 몸을 풀고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산을 받쳐 들고 광양을 향하여 씩씩하게 걷기 시작하였다.
교통신호에 맞춰 시가지를 빠져나오는데 한 시간이 더 걸린다. 오전 9시 15분, 시 외곽의 고개마루 주유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어 30분 쯤 나가니 광양시의 광양읍 경계에 이른다. 내쳐 걸어서 10시 반경에 광양읍내를 지나 제철로(광양시내로 이어지는 산업도로)를 따라 한참을 지나도 쉴만한 곳이 없다. 11시 경에 도로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 있는 광양경찰서를 지난다. 폭우 속에 몇 십 미터도 더 걷기가 아까워 그대로 지나쳐서 길가의 작은 중기공장의 빈 공간에서 비를 피하여 간단히 용무를 보고 또 걷기 시작한다.
주변에 초남공단이 들어서 있는데 제2공단을 조성하고 있고 옆으로 제철소행 철길이 뻗어 있다. 대형차량들이 흥건히 젖은 빗물을 세차게 걷어차며 질주한다. 옷에 물을 끼얹는 것은 약과. 행여 미끄러져 교통사고라도 당하지 않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다. 더러 빗길에 미끌어 진 차량들에 의한 사고가 나지 않던가?
낮 12시 경, 18km쯤 걸어 점심을 예약한 식당에 당도하였다. 주변에 다른 건물들 없이 식당만 두 서너 곳 있는 도로변 언덕받이에 자리 잡은 식당이다.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정취 있는 곳인데 폭우가 내리니 이를 감상할 여유가 없다.
흠뻑 젖은 신발에 신문지를 넣어 물기를 가시게 하고 바지와 양말이 젖은 채로 방에 들어가 장어탕으로 점심을 들었다. 커피를 뽑으러 카운터로 나가니 오오타 후토시(75세) 씨가 먼저 나와 자판기에서 여러 잔의 커피를 뽑아 쟁반에 담는다. 며칠 전부터 박효자 씨가 가끔 커피를 뽑아주어서 조수가 생겼다고 농담을 하였는데 이제 실업상태가 될 판이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1시에 다시 걷기를 시작하였다. 빗길에 이곳까지 동행한 순천시 허유인 의원이 잘 걸으라며 작별인사를 한다. 비는 그치지 않고 강풍이 몰아쳐 우산을 받쳐 들기 힘들다. 오전의 강행군을 견뎌낸 여성회원 일부는 승합차에 오른다. 무리하기보다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도 잘 하는 일이다.
두 시간이 가깝도록 단조로운 산업도로가 이어지며 주유소조차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걷다보니 어느새 광양시내 초입에 이른다. 길가의 작은 공장에 들러 급한 용무를 보고 시내로 들어서니 오후 3시 15분에 광양시청에 이른다. 시청현관에 고재구 총무국장과 관계자들이 나와 우중에 찾아온 일행을 반가이 맞아준다. 일본대표에게 꽃다발을 전한 후 기념촬영과 환영인사를 나누고 이 지역 특산인 매실과즙을 선물로 주는 배려가 고맙다.
시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숙소에 여장을 풀고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니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머물 거처가 있고 좋은 음식, 따뜻한 마음이 어울리 니 날씨가 궂은 들 대수냐.
광양은 제철도시로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보름 후에 열리는 여수엑스포를 맞아 광양과 여수를 가깝게 이어주는 이순신대교가 곧 개통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은 용광로에서 몇 번이나 제련과정을 거쳐 전국의 산업현장과 외국으로 공급된다. 철의 연마처럼 우리도 스스로를 연단하며 제철도시 광양에 무사히 이른 것을 자축한다. 산업의 쌀인 제철소와 그 연관 산업의 번성으로 미래를 향하여 도약하는 광양처럼 전국의 모든 지역이 번영하고 발전하기를 염원한다.
추신,
저녁이 되니 비가 잦아든다. 오늘저녁식사는 잔치자리가 되었다. 일본대표인 엔도 야스오 씨의 생일을 맞이하여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한일우정걷기의 초석을 쌓은 엔도 대장의 공로를 치하하고 곁들여 이번 걷기행사에 여러모로 수고하는 이들(선상규 체육진흥회장, 기수 오시카와 코조와 안정일 씨, 사진 오오시마 도시하루 씨, 운전 김지훈 씨 등)을 위로하기 위하여 일본 측에서 간단한 축하행사를 갖기로 한 것이다. 당사자들에게 고깔모자를 씌우고 케이크를 자르며 샴페인도 터트렸다. 어제 문화탐방을 마치고 부산에서 열린 동창모임에 참석하러 간 노정원 씨가 저녁식사에 맞추어 도착하였다. 동창들에게 걷기홍보를 열심히 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