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현장을 중시하려고 합니다."
법무법인 다래의 이명규 변호사는 판사 생활 16년 중 절반이 훨씬 넘는 약 10년 간 지적재산권 분야서만 근무한 지적재산권 전문변호사로 손꼽힌다. 1992년 판사로 임관해 1999년 고법판사로 승진한 이후 줄곧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문 법관으로 활약했다. 특허법원에서의 3년 4개월 근무를 시작으로 지적재산권 전담 대법원 재판연구관 2년, 인천지법에서의 지재권과 건설사건 전담 부장판사 3년을 거쳐 지난 2월 25일부터 법무법인 다래에서 의뢰인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변호사 사무실에서만 의뢰인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몸소 의뢰인의 작업장을 찾아 특허로 구현된 또는 특허침해의 대상이 된 실물을 직접 확인하며, 변론전략을 짜 대응에 나서고 있어 더욱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의뢰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의뢰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요." 이 변호사는 "현장을 보고, 설명을 들어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보다 정확히, 빠르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의뢰인의 만족감, 안도감을 높이기 위해서도 현장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변호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며, "일상생활에서도 내 얘기를 상대방이 잘 알아들으면 상당한 만족감이 들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소장 접수 1주일내에 현장검증 실시
지난 3월 법원에 증거보전신청을 내 현장검증을 실시한 것도 이런 현장중시 전략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의뢰인은 LCD의 모니터용 평판을 만드는 기계 제조업체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의뢰인이 주장하는 상대방 회사가 기계를 완성해 납품해 버리면, 납품받은 제3자가 현장검증에 응하지 않을 수 있어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사건이었다. 이 변호사는 납품되기 전에 해당 기계의 형상을 보기 위해 소장과 함께 증거보전신청을 냈고, 소장 접수 후 1주일내에 해당 기계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할 수 있었다.
그가 중시하는 또 다른 현장은 법정과 특허심판원의 심판정. 그는 "주임 변호사가 법정에 나가 판사의 발언과 상대방 변호사의 얘기를 직접 듣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급적 다른 변호사를 법정에 대신 내보내지 않는게 그의 지론이다.
요컨대 변호사로 새 출발한 그가 현장을 찾아 의뢰인과 법정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데서 부터 변호사의 역할을 찾고 있다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법대 시절부터 지재권 관심
서울대 법대 시절은 물론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도 동기생들과 함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공부하는 등 그는 일찍부터 지적재산권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판사가 돼 여러 재판부를 거친 후 고법판사가 되자 지재 분야로 전문 분야를 뚜렷히 하고 나섰다.
올 초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변호사로 변신한 데도 지적재산권 분야을 계속해서 다루고 싶다는 희망이 적지않게 작용했다고 한다.
"인사이동이 돼 다른 법원으로 옮길 경우 꼭 지재 관련 사건을 맡는다는 보장이 없었지요. 차제에 이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돼 더욱 전문성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할 법률회사 선택은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났다고 한다. 법무법인 다래가 이 분야에서 워낙 전문성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슴지 않고 이력서를 내밀었고, 다래의 일원이 돼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다래를 이끌고 있는 박승문, 조용식 변호사와 이전부터 선후배 사이로 알고 지내온 인연도 그가 다래에 정착하는 데 적지않은 도움이 됐다. 99년 8월 다래를 출범시킨 박승문, 조용식 변호사는 당시 특허법원의 몇 안되는 판사 중 두사람이었다. 같은 재판부에서 좌, 우배석 판사로 근무했다. 여기에 특허법원 기술심리관과 특허심판원 심판관을 역임한 윤정열, 김정국 변리사가 사표를 내고 합류해 특허법원의 3개 재판부중 1개 재판부가 다래로 옮겨 왔다는 말이 나돌 만큼 유명세를 탔다. 지금도 다래의 핵심 구성원인 이 네 사람은 '특허 4인방'으로 불리며 관련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업무 인수인계 인연 이어져 한솥밥
이명규 변호사는 박, 조 변호사가 떠난 바로 그 재판부의 후임 판사로 부임했다. 이 변호사는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두 선배 변호사에게 물어볼 게 많았다"며, "그 때의 인연이 이어져 한솥밥을 먹게 됐다"고 웃었다.
특허법원에서 3년 4개월을 근무하며 숱한 사건을 다룬 이 변호사가 특히 소개하는 사건은 주심을 맡았던 '도이체 방크(Deutche Bank) 사건'과 이른바 소(牛)의 성장 호르몬을 둘러싼 세계적 다국적 기업 몬산토와 LG화학 사이의 특허권리범위확인사건.
1999년 12월 24일 판결이 선고된 도이체 방크 건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도 식별력이 있으면, 서비스표로 등록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로, 이후 판결과 같은 내용으로 상표법이 개정돼 더욱 의미있는 사건이다.
또 몬산토 사건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대형 사건으로, 2001년 12월 LG화학에 승소판결이 내려졌고, 대법원에 상고됐으나 그대로 확정됐다.
변호사만 13명이 포진한 다래에서 이 변호사는 연수원 기수 기준으로 세번째로 기수가 높다. 이른바 허리 역할이 그가 해내야 할 임무로, 그는 자전거 바퀴의 허브(hub)와 타이어를 연결하는 스포크(spoke)에 자신의 역할을 비유했다. 다래로서도 전에 특허법원장 출신이 합류하기도 했지만, 한창 일할 연조의 부장판사를 영입하기는 이 변호사가 처음이다. 사건이 늘고, 변호사가 증가하며 선후배를 연결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중견 변호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재 분야는 여러 전문가의 협력 없인 좋은 결과를 내기가 어려운 특수한 분야입니다."
이 변호사는 "다래엔 변호사외에도 변리사와 스탭 등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어 특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며, 인터뷰 동안 여러차례 소속 로펌인 다래의 경쟁력을 앞세워 얘기했다.
글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l 사진 지정훈 기자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