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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2:1~12. 새로운 출발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다. 2026. 8. 9.
본문의 배경과 내용인데 먼저는 7월 26일 주일의 말씀입니다. 조카 야곱과 외삼촌 라반사이에 맺은 여갈사하두다와 갈르엣 이라는 이 표현이 무엇이었습니까요? 31:45~47.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야곱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앞에 라반은 야곱에게 피차 서로를 부정하고 싸우고 해치지 말자는 언약을 제의합니다. 라반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서로 선악 간에 말하지 말고 다투지 말 것을 요구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순종하여 돌무더기와 돌기둥을 세우는데 라반은 이것을 ‘여갈사하두다’라 하고, 야곱은 ‘갈르엣’이라 불렀습니다. 더하여 라반은 자신과 야곱 사이를 하나님께서 살피시기를 소망한다는 뜻과 의미로 그곳 이름을 미스바로 이야기합니다. 31:54~55 야곱이 또 그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음식을 먹이니 그들이 그렇게 함께 식사를 한 뒤 그 산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라반이 일어나 자기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축복하고는, 라반은 길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야곱은 이제 새로운 삶을 위하여 다짐과 결심을 하고 벧엘로 출발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지난 설교 말씀에서 나누지 못한 내용이 있습니다. 31: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삼촌 라반)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그러니까 이제 서로 헤어지고 다른 곳에서 떠나 살게 되지만 서로의 삶의 그 현장을 살피고 지키시고 은혜를 받게 되는 살핌을 위하여 기도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과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히메지비전교회라는 울타리와 테두리에서 서로 교제하며 함께 주일마다 주님이 주신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럼에도 고향과 친척이 아니고 미스바입니다. 원망과 시기와 저주가 아니고, 불평과 멀리함이 아니고 미스바입니다. 서로를 살펴달라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미스바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왜요? 서로를 살피시는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고 축복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예리합니다. 무엇에? 축복과 은혜와 인도와 책임지시는 언약에 대하여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예리합니다. 그래서 미스바의 기도와 미스바의 성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야곱은 미스바의 은혜를 다짐하고 결심하면서 오늘 본문을 시작합니다. 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만나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먼저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용기를 얻어 무서웠던 형, 에서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여러분, 20년 전의 야곱, 자신의 잘못 때문에 밧단아람까지 형을 피하여 살아 왔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래서 삼촌 라반을 떠났지만 여전히 형의 모습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미스바의 은혜를 간직하면서 출발을 했는데 출발하지 마자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을 찾아옵니다. 얼마나 기쁘고 용기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 그 땅을 마하나임이라 했을까요? 그리고 형에게 부탁을 하면서 사람을 보냅니다. 3-5절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 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 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은 삼촌 라반과 함께 지금까지 밧단 아람에서 살았으며, 삼촌 라반이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를 야곱에게 주셨는데 이 내용을 알리고 형에게 드릴 수 있는 형의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형에게 갔던 사람들이 돌아 와서 전하는 내용은 선처가 아니었습니다. 6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 죽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더이다. 겁이 난 야곱은 잔꾀를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왜요? 형 에서가 한 쪽을 치면 나머지 한쪽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입니다. 꾀를 내면서 야곱은 미스바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마하나임과 하나님의 사자들이 찾아 온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밧단 아람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벧엘로 돌아가고 친척과 본토 집으로 가라는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곱이 가는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살아있습니다. 죽은 말씀이 아닙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마른 막대기가 아닙니다.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채찍입니다. 필요한 때에 무디고 쓸모없는 검이 아니라 나의 가야할 길의 세상과 어두움을 떼어 놓을 수 있도록 예리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11절에서 지팡이만 가지고 떠났던 20년 전과 오늘의 상황을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11-12.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형을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야곱에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야곱의 인생인데 무엇입니까? 반전의 인생입니다. 지금만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반전의 인생은 계속됩니다.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 십 년입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여러분, 평안과 형통이 항상 언제나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습니다. 다 이루어 놓은 것 가운데 또 다른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항상 평안한 것이 아니고 항상 형통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형통하고 평안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이 세상 속에서 이렇게 반전의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미 얻은 구원과 함께 아직 이라는 것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래서 나그네 길이고 험악한 세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가오는 환란과 어려움을 이겨 낼 수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항상 강 한자와 약한 자 사이에 있습니다.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에 있습니다. 능력과 힘의 테두리에서 없음 때문에 갈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런 자신의 생애를 돌아볼 때 정말 험악했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자와 약한 사람 사이에 있음을 늘 인식하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 생애가 험악했던 이유와 반전의 삶이 연속되는 이유는 대부분 야곱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사서 고생을 했고, 스스로 자기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 집을 떠나서 삼촌 집으로 가야하는 일,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형, 에서의 축복기도를 가로챘던 사건,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에 만들어진 일입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그렇게 고생한 것도, 얼굴 예쁘다는 것 하나 때문에 어떻게든지 라헬과 결혼하려 했기 때문이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늘도 형, 에서 때문이고, 얍복 강에서 밤새도록 씨름했던 것도 근본적으로 야곱 자신의 문제이었습니다. 오늘 이후에 세겜 땅에서 고생을 한 것과 벧엘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면 이런저런 약속을 해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세겜 땅이 좋다고 거기에 머물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딸 디나가 어려움을 당한 것과 그 일로 일어난 보복과 살인으로 세겜 족속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협도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요셉을 잃어버리고 마음고생을 한 것도 요셉을 편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은 야곱자신이 만든 결과이었습니다. 그러면 수고만 한 인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상할 정도로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믿음과 신앙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반응을 했고, 보이는 것으로 해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복을 주셨다는 말씀을 어머니에게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형과 비교하면서 견딜 수 없는 좌절감을 갖습니다. 그 좌절이 야곱을 조급하게 했습니다. 형, 에서를 유난히 사랑한 아버지 이삭 때문에 몸부림을 쳤고 집착을 했습니다. 라헬과 꼭 결혼해야 되겠다는 마음도 집착에서 나왔습니다. 조급함과 몸부림, 그리고 집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사실 이런 것에 걸릴만한 이유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던 사람인데, 문제는 야곱이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이런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조급했고, 항상 부족했고, 항상 억울했고, 항상 두려움과 염려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스스로 무엇인가 애를 쓰고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험악할 이유가 없었는데, 험악했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이렇게 험악하게 살았다고 표현하는 위기를 그냥 보고만 있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성공인생이 되고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답과 결론이 있습니다.
2.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극복인 반전의 인생을 만들어 냅니다. 여러분, 2026년 후반기에도 반드시 위기가 있습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위기가 있는 것이 삶이고 인생입니다. 이것을 염두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위기와 어려움이 섞여있는 것이 인생이고 삶이라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그 순간순간의 방법이 있습니다. 야곱의 삶은 험악한 세월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은 험악했을지 몰라도 끝은 해피엔딩입니다. 바로의 면전에 섰다는 것 자체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아닙니다. 바로의 절대적 신임과 총애를 받게 된 것은 총리대신인 요셉의 아버지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그 소식만으로도 그때까지의 험악한 세월이 다 보상되고도 남습니다. 거기에 아들, 요셉이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의 초청으로 그가 보내준 수레를 타고 그가 보낸 길양식을 먹으며 이집트로 가서 가장 기름진 땅을 하사받아 번성하며 살게 된 것은(창45:17-21, 46:1-7) 숨이 막힐 정도로 복된 반전의 인생입니다. 야곱이 바로 앞에서 백삼십 년의 세월이라는 험악한 나그네 길을 보냈다고 술회하지만 그 이후로 요셉의 삶은 평안과 영광스러운 복된 삶이었습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 요셉은 수종을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사십 일 걸려 향으로 처리하게 했고, 애굽 사람들이 칠십 일 동안 야곱을 위하여 애곡하였습니다(창50:2-3).애곡하는 기한이 지나자 요셉은 바로의 허락을 얻어 아버지의 유언대로 가나안 땅에 장사하러 올라갔습니다(창50:4-6). 그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병거와 기병이 심히 큰 떼를 지어 요셉을 따라 올라갔습니다(창50:7-9). 그렇다면 험악한 세월이 어떻게 복된 삶이 되었습니까? 상황의 극복입니다.
2-1. 첫 번째는 야곱이 광야에 드러누웠습니다. 여러분, 반전 인생이 됩니까? 그냥 광야에서 드러누웠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았습니다. 두러 누어야 하늘이 보이고 땅이 느껴집니다. 혼자 드러누워 보고, 광야에서 드러누워 보면 자신이 보입니다. 어머니 태중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이었는데 문제는 그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조급했습니다. 이 일로 집을 떠나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을 가야 했기 때문에 광야로 나갔습니다. 벧엘 들판에서 돌베개를 배고 쓸쓸하게 잠을 자는 그 때의 야곱의 심정은 절대로 복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조급하게 복을 받아보려고 애를 쓰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들판에서 두려움 속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키시는데, 왜 그렇게 쓸쓸해하고 두려워하느냐?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십니다. 창28;15.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를 지켜 주리라. 그 때 야곱은 깜짝 놀랐습니다. 황홀했습니다. 그 광야,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다가,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벌렁 누워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깨달으면 하나님께 묻게 되고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무지와 무능을 깨달으면 주님이 찾아오시는 반전의 상항이 열립니다.
2-2.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20년 동안 하나님은 야곱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처가식구들이 야곱을 시기해서, 도저히 그 곳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창31;13. 너는 이제 이곳을 떠나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하나님의 복주심이 야곱과 언제나 같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야곱을 놓친 적이 없었고 사자를 보내시기 까지 하면서 지켰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하며, 안달하고 조급한 삶을 살았습니다. 형이 400인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밤새 안절부절 합니다. 간교함으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잔꾀를 내어 한 떼, 두 떼를 구별해서 에서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했습니다. 간교함과 모사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이 맞도록 기도를 합니다. 야곱이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얍복강에서 만나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야곱의 일생동안 언제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11-12에서 기도를 하면서 간구합니다. 그랬더니 에서가 바뀌었습니다. 기도는 야곱이 했는데 에서가 바뀝니다. 조금 전 까지도 여전히 이전의 에서이었는데 바뀌었습니다.
2-3. 서원으로 반전 인생이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은 서원함에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여갈사하두다와 갈르엣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0년의 삶의 터전이었던 밧단 아람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야곱은 서원을 했습니다. 무슨 서원입니까? 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 서원 때문에 야곱에게 출생지로 떠나라고 하셨고 쫓아온 삼촌 라반을 하나님이 직접 만나서 선악 간에 무엇이든지 야곱에게 따지지 말고 싸우지 말라 한 내용의 증거가 여갈사하두다이고, 갈르엣이고, 미스바입니다. 선악 간입니다.
2-4. 기다림과 만남이 문제를 반전시킵니다. 야곱은 기다렸습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기다렸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떠나보내고 외롭지만 남겨진 삶을 위해서 기다렸습니다. 빈 공간, 허전한 마음, 외로움과 쓸쓸함을 기다림으로 해결을 합니다. 통곡의 아들이 아니고 오른 손의 아들이 되도록 기다렸습니다. 요셉의 소식을 듣고도 말없이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에 소식과 기쁨이 오고, 여호와의 사자가 옵니다. 기다림이 인생의 반전을 이룹니다. 기다려야 하지만 사람을 잘 만나면 위기가 반전이 됩니다. 아들을 만나고 바로 왕을 만납니다. 훈련된 사람과 신앙으로 단련된 사람입니다. 힘이 되어주고 보탬이 되어주고, 길을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혜로 관계를 원만하게 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면 안 되고 함부로 단정하면 안 됩니다. 위로하는 말과 표현도 조심해야 합니다. 결국은 사람을 들어 역사하시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해결과 해답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메시지는 인생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극복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야곱은 결국 위대한 인물이 되고, 역사를 이루어 내며 죽어가면서도 소망을 갖는 인물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의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위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와 고통이 다가 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합력하여 이루는 선은 실타래처럼 쉽게 풀리기도 하지만 꼬임과 얽힘으로 문제를 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고생스럽고, 어려워도. 여러분이 이 사실을 믿음 가운데 진실로 받아드리면 삶의 반전은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험악한 세월은 없습니다. 험악한 세월은 또 다른 삶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기회이고 과정이기도 합니다. 체험할 수 없는 부분을 험악한 세월로 내일과 미래를 보장하고 지경이 넓어지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을 항상 사랑하시고 언제나 떠나지 않으시고, 은혜의 울타리 안과 생명싸개 안에 있습니다. 야곱이 지녔던 그 숱한 약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복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약해지고 곤고해질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붙잡고 죽기로 매달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신 32;10절 여호와께서 야곱을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고,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예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을 지키시고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고, 주님의 눈동자 같이 지키실 줄로 믿습니다. 야곱처럼 삶의 반전이 일어나고 다시 길을 걷더라도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 와서 시온의 대로를 내시고 한 시대를 위대하게 살아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반전의 남은 2026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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