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계보 42대의 비밀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에는 정말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브라함을 향하신 하나님의 경륜이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사천년 동안 흐르고 있는데 아브라함에 관련된 말씀만 갖고도 많은 시간이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창세기 12장부터 50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체가 아브라함 가정 3대에 걸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장 세밀하게 증거하셨고, 그 아들 이삭을 통하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을 통해서는 우리 생활을 직접 다루시고 우리의 성격이나 환경이나 모든 삶을 간섭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자상하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통일 왕조 제2대 왕인 다윗이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로 등장했는지에 관해서도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40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450년간>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 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도행전 13장 21절~23절 하나님께서 다윗을 만나는 순간에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일생동안 이스라엘 왕정정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장 많이 표현한 왕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실수한 한 사건 외에 일생토록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다윗 왕의 신실한 통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정의롭고 공평하게 다스리실 것에 대한 그림자 역할을 잘 수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계보에 나타난 다섯 여인들
마태복음 1장 안에 등장하는 여인 다섯 명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은 물론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가기까지 자신의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건 믿음의 행위와 그들의 결단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습니다. 다섯 명의 여인 중 첫 번째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 둘째는 여리고 출신의 기생 라합, 셋째는 모압 여인 룻, 넷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다섯 번 째는 마리아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왕의 족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거룩한 족보입니다.
42대의 계보
깊은 기도 가운데 이 마태복음을 읽어 내려가다가 마태복음 1장 17절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1장 2절부터 16절까지에 나타난 이름들을 하나씩 하나씩 짚어가면서 열네 대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2절부터 6절까지의 족보는 “족장들의 족보”입니다. 그 다음에 6절 하반 절부터 12절까지는 “열왕의 족보”입니다. 이스라엘 열왕들 가운데는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여 우상을 섬기고 거역하던 왕들이 바벨론 세력에 나라를 잃고 왕통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이나 제사장이나 평민들이 모두 포로가 되어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전대의 왕통이 대를 이어 오면서 나라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왕위에 앉을 사람이, 이제는 목수일을 하는 평민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목수는 그 당시에 가장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족보 중에 첫째 14대는 족장들의 족보, 두 번째 14대는 왕들의 족보, 세 번째 14대는 평민들의 족보입니다. 족보의 흐름은 점점 쇠퇴해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쇠퇴해가는 왕가의 족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허물어진 왕통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42대 중 빠져 있는 한 대
먼저 족보에 나타난 계통을 따라 가면서 42대 속에 기록된 인물들을 한 분 한 분 짚어 보면서 역사의 흐름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족장시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로 이어지고, 또 다윗 이후 솔로몬부터 마지막 여고냐 왕까지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까지 열네 대, 바벨론으로 옮겨간 이후에 여고냐 부터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때까지 열네 대가 아니라 한 대가 빠진 열 세 대입니다. 아무리 한 대, 한 대 헤아리고 또 헤아려 보아도 한 대가 빠져 있었습니다. 사십 이 대라고 기록은 되어 있는데 왜 한 대가 빠져 있을까? 의문을 갖고 틀림없이 어떤 비밀이 숨겨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서 말씀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미시적 방법으로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여러 종류의 번역 성경을 다 찾아보아도 똑같이 한 대가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아래 42대인데 왜 41대로 머물러 있는지에 대하여 기도로 주님께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가나안까지 40년간의 여정에서 마흔두 번의 진영을 옮긴 후에 가나안 땅을 점령했었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가나안까지의 42개 진영 중 빠져 있는 한 곳
먼저 말씀 안으로 눈을 돌려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내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33장에 상세한 여정과 진영이 발견되었습니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족집게로 집듯이 진을 친 한 곳 한 곳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아무리 세밀하게 짚어 보아도 42개의 진영이 안 나오고, 41개의 진영으로 끝나 있었습니다. 한 번 민수기 33장 1절부터 49절까지 말씀을 놓고 함께 출애굽 여정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 쳤고,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 쳤고, 에담에서 발행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 쳤고, 하히롯 앞에서 발행하여 바다 가운데로 지나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3일 길쯤 들어가서 마라에 진 쳤고, 마라에서 발행하여 엘림에 이르니…… 아바림 산에서 발행하여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민수기 33장 5절~48절) 아무리 두 번 세 번 훑어보아도 41개 진영이 틀림없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마지막으로 진을 친 “길갈 진”이 떠올랐습니다. "맞다, 맞어! 길갈이 마흔 두 번째 진영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길고 긴 40년의 여정을 거쳐서 드디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 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여호수아 4장 19절~20절 드디어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들은 처음 이집트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림으로 해방의 기쁨을 맞았던 감격과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입성과 동시에 길갈 진에서 다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여호수아 5장 10절부터 12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여호수아 5장 10절~12절
유월절의 교훈
우리는 여기서 첫 번째 유월절로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적인 사건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장 29, 30절에 보면 이집트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었습니다. 그 대신 이스라엘 자손들의 장자들은 하나님께서 철저히 보호하셨습니다. 첫 번 째 유월절 날 밤중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 되고, 이집트 사람들 가정에는 장자가 사망하는 큰 통곡의 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리던 날 밤에 이집트의 장자는 죽고 이스라엘의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밝혀주신 말씀입니다. 이집트의 장자가 죽은 것은 우리 속에 세상을 상속 받으려는 육신적인 모든 장자 권과 아담의 전통과 욕망이 끝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로 결정되어 우리의 소유권이 그리스도에게로 이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기 위한 교훈이 첫 번째 유월절을 통하여 밝혀 주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고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건짐 받은 우리 형제자매들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상속 받기 위하여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출발한 것이 어린양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참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보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소망을 두고 인내로써 광야 길을 믿음과 소망 안에서 기쁨으로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때로는 원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나안을 포기하고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불평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구속함을 얻고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도 이 죄악 세상을 떠나서 새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영광스런 주님의 상속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믿음과 소망 중에 인내하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상속권을 누릴 수 있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소망 안에서 믿음의 생활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이 땅에서도 재미있게 살고 육신적으로 멋지게 살고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야지..” 하는 식으로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참으로 부끄러운 이중 플레이가 아닐까요?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하고, 세상에 대하여서도 십자가에 못 박힌 자신임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광야 생활에서 자신을 끝내지 못하고 살아갔던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겠습니까? 그러한 모습들은 참으로 부끄러운 생활 모습들입니다. 만나를 먹다가도 원망하면서 “이집트에서 먹던 식물이 그립다”, “고기가 먹고 싶다”, “이 길이 왜 이렇게 멀고도 힘든 길이냐?”, “이집트에서 먹던 파와 마늘과 부추가 생각난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냐?”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40년 세월을 부끄럽게 행진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출발해서 광야 40년을 거치는 동안 불평과 원망과 우상숭배를 하던 옛 사람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 땅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다만 광야에서 태어난 4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만 바라고 바라던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 9절에서 10절까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여호수아 5장 9절~10절 길갈이란 말은 히브리말로 “굴러간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굴러갔습니까? “이집트의 모든 부끄러움이 굴러갔다, 이집트의 모든 수치를 끝냈다”는 말입니다. 그곳이 길갈입니다. 길갈이 이스라엘 사십년 여정의 마지막 지점인 42번째 진영입니다. 이제 여호수아 5장 10절부터 12절까지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여호수아 5장 10절~12절
가나안 생활의 의미 - 그리스도 부활생명에의 동참자, 이제 만나 공급이 길갈에서 끝이 나고, 이제 가나안 땅의 산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열매는 무엇이며, 가나안 생활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죽음을 통하여 자아가 끝남을 의미하고,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 생명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후에 다시 유월절 행사를 수행한 것도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피 흘리신 어린양 예수님이시지만 우리의 구원의 완성도 역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 주심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처음과 나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모든 성경의 결론 부분의 새 예루살렘에서도 “어린 양”께서 나타나십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시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 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요한계시록 22장 1절~3절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