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책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북라이트' , 어둠 속에서 작업을 쉽게 도와주는 '조명이 내장된 키보드', 물 주는 시기를 자주 잊어 번번이 식물을 죽이는 사람을 위한 '화분 수분 측정기', 어디서나 시원한 바람을 제공하는 휴대용 '미니 선풍기'….
이런 물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일반 제품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불만 요소를 해소시켜준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제품들을 틈새상품이라고 한다.
말하기에서도 상대방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때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다.
등이 가려울 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고 싶어지듯이 내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누군가 그것을 정확히 짚어 조언하거나 해결책을 알려준다면 매우 고마울 것이다.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주듯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 불평불마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사람인 이상 각자 인생관과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로가 각자의 불만에 대해서 말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기만을 바란다면 세상은 조화로워질수가 없다.
다행히도 불평불만이 쌓인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귀 기울이고 해결책을 찾아주려는 이들이 있다.
다음은 서울의 한 종합병원 대기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수 씨는 갑자기 몸에 안 좋은 증상이 생겨 서울에서 서둘러 아침 일찍 그곳에 도착했다.
접수창구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고 그가 제일 처음 도착했지만 초진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업무 개시 시간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업무 개시 시간 몇 분 전에야 손번 대기표 발행기가 설치되더니 어떤 사람이 재빠르게 다가와 1번 번호표를 뽑았다.
그 사람은 명찰을 단 병원 직원이었고, 성수 씨가 자신보다 먼저 그곳에 와 있던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일찍 와도 소용없어요, 번호표 먼저 뽑는 사람이 우선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성수 씨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접수 순서가 두세 번째로 밀려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그 병원 직원은 접수창구 시스템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병원을 찾은 환자가 잘 몰라 어리둥절 할 때 다가와 배려를 해주기는커녕 재빠르게 자신의 편의만을 취했다.
성수 씨는 그 간교함에 화가 났던 것이다.
불쾌감에 사로잡힌 그는 말없이 그 직원의 이름을 확인해두었다가 진료가 끝난 후 '고객 불만사항 접수'용 엽서를 작성해서 '고객의 소리함' 에 넣고 돌아왔다.
얼마 후 그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 불만사항 접수 센터 였다.
"엽서 내용을 보니 그날 매우 불쾌하셨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먼저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남자 직원이…."
성수 씨는 그날의 불쾌함을 그대로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그러니까 병원 직원이면 병원에 오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편의를 기본적으로 먼저 생각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잘 모르면 새치기당하는 게 당연하다' 는 식으로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어요. 그리고 순번 대기표를 뽑아 기다리는 시스템이라면 창구 업무 개시 1~2시간 전에 도착하는 사람들도 있따는 것을 감안해서 미리 작동시켜야 하잖아요. 만약 그 시스템이라도 미리 작동 되었다면 그런 문제는 없었겠지요."
성수 씨의 말에 직원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만사항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해당 직원에게는 마땅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고, 순번 대기표 발행기 설치 시간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사죄의 뜻으로 교통카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 직원은 물론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뿐이겠지맍 성수 씨는 속이 후련했다.
바로 그의 불만을, 그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접수창구 없무 개시 전에 순번 대기표 발행기가 작동 되어 이른 시간부터 번호표가 발행되는 것을 확인했다.
성수 씨는 자신이 제안한 불편사항이 해소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상대방의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해주는 원칙 하나는 있다.
바로 상대방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나도 할 말이 많으니 내 말을 먼저 들어달라' 는 식으로는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뿐더러 듣더라도 건성으로 듣게 되어 표면적인 의미밖에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말하는것' 역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는 나중에 더 큰 보상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