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냉이, 달래, 두릅 등 이맘때 나는 나물은 영양이 좋아 예부터 보약이라 여기며 귀한 식자재로 쓰였습니다. 조물조물 정성으로 무쳐 접시에 소복이 담아낸 봄, 건강한 4월 되시기를 바랍니다.
봄빛
뜰에서 또는 들이나 산에서 나무, 풀 등 끌리는 식물에 걸어가 앞에 선다. 빛깔, 형태, 움직임을 바라본다. 햇빛을 흡수해 드러나는 빛깔을 음미한다. 파스텔이나 수성 색연필에서 끌리는 색깔을 하나 골라 손이 가는 대로 그린다. 그 빛깔을 바라본다. 잠시 느낌에 머물러 있는다.
컬러테라피 효능에 따르면 색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고 합니다. 눈부신 봄빛을 음미하며 인생의 봄도 함께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에디터 방은주
포토그래퍼 이승헌
조물조물 봄을 무치다
저녁상에 올릴 찬을 고민하다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보니 바구니마다 봄나물이 가득합니다. 아삭한 미나리와 향긋한 냉이, 입맛 돋우는 씀바귀와 보양 별미 두릅, 쑥, 돌나물, 달래…. 구경만 하는데도 머릿속에는 벌써 푸짐한 상이 차려집니다. 이맘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산으로 들로 나물 뜯으러 다니던 정겨운 기억도 떠오릅니다.
만물의 생동하는 기운을 듬뿍 머금은 봄나물은 예부터 보양식으로 쓰일 만큼 영양이 풍부하고, 입 안에 감도는 향미와 풍미도 일품입니다. 4월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 <GOLD&WISE>가 준비한 봄나물 소식과 함께 향긋한 봄, 건강한 봄, 맛있는 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방은주 캘리그래퍼 강병인
포토그래퍼 이승헌 스타일링 김상영, 이빛나리, 장연지(noda+ 쿠킹스튜디오)
봄이잖아요!
어느 해 봄이 다가올 무렵 지인을 만나러 대구에 갔다.
손꼽히는 한정식집 중 한 곳이라며 데려가는데 처음 나오는 음식이 뿌리만 다듬은 생미나리 다발과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날된장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투박한 전채(前菜)에 속으로는 혀를 찼지만 지인을 따라 미나리 하나를 손으로 돌돌 말아 된장에 찍어 입 안에 넣었는데, 와! 그야말로 감동의 탄성이 절로 터졌다.
오랜 전통의 식당이라니 직접 담근 된장 맛은 그렇다 하더라도, 입 안에서 팍 소리가 나는 듯 터지며 코와 머릿속으로 화하게 번지던 그 놀랍도록 상큼한 향이라니!
얼마 전 다른 지인을 따라 삼겹살 식당을 갔더니 같은 스타일로 또 미나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사실 대구에서의 감동 뒤에도 익히지 않은 생미나리를 일부러 찾지는 않았다. 미나리꽝이라는 그리 맑지 않아 보이는 물구덩이와 가끔씩 발견되던 거머리에 대한 어릴 적 께름칙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봄철 생으로 먹는 미나리는 물속에서 재배한 것이 아니라 밭에서 청정하게 자란 것이고, 향이 특별히 짙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어린 시절에 무슨 별난 미각이 있었을 리 없고, 젊어서는 땀 흘리고 뛰어다니는 만큼 요기하기에 바빴다. 제법 나이가 들어서도 나라 밖을 떠도느라 또 대충 끼니를 때웠다. 그래도 음식 천국이라는 중국에서는 가끔 입호강을 했지만, 그럴 때일수록 어떤 간절한 그리움이 떠올랐고, 그것은 기억도 희미한 어린 날의 맛이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늘어나며 익혀 먹는 음식의 나라 중국에서도 종래 먹지 않던 깻잎은 물론, 봄이 되면 쑥, 달래, 냉이, 참나물 등속의 제철 나물이 제법 시장에 나온다. 그렇지만 이름만 봄나물이지 향은 빈약한데다 줄기는 억세, 때로 생선탕에 곁들이는 미나리는 건초를 삶아놓은 것이냐 투덜거리게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름만으로도 향수를 달래고 계절을 느낀다.
돌아오니 이제 제법 봄나물 향기가 새삼스럽다. 그래도 쑥은 그 향기로 가끔 찾아 즐기기도 하지만, 봄철 밥상에 오르는 봄나물 반찬에 별달리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저 이 계절에 나오는 풀이어서 오르는 것이려니 무심히, 또 여름이나 가을에도 뭔가 계절의 나물이 있을 텐데, 왜 유독 봄나물인가 하는 시큰둥함도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한적한 도심 외곽 길가에서 나물을 뜯는 듯한 중년 아주머니를 보고 ‘벌써 쑥을 캐는 것이냐’ 말을 건넸더니 미나리를 뜯는다는 대답이었다. 조금 사서 먹으면 될텐데 길가에서 얼마나 뜯을까 싶었는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차림새 고운 아주머니는 ‘봄이잖아요’ 하고 웃어 보였다.
은행나무처럼 1,000년을 넘게 산다는 식물도 한해살이를 마치고 겨울을 이겨내면 나이테를 늘릴 테니 살아낸다는 것이 큰일이기는 한 것이다. 인간의 삶도 비록 늙기는 한다지만 한 해를 살아내고 다시 한 해를 맞는다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행운이고 축복이라 해야 할 터다.
요즘은 사시사철을 보내는 일에 크게 민감할 것 없는 환경이지만, 역사학을 공부하다 보니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특히 겨울을 나는 것이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일이었음을 목격한다. 더구나 더 오랜 옛 시절에야 봄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 ‘아, 이제 살았구나!’ 하는 탄성을 터트리지 않았을까 실감한다.
흔히 봄철 나물은 구황 식물이었다는 말로 상찬을 보탠다. 왜 아니었겠나. 그러나 살림살이의 여유를 떠나 모든 이들이 봄나물을 즐기고 종묘에까지 천신(薦新)했다는 것은 다시 이어가게 된 삶의 연속에 대한 감사의 뜻도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지난해와는 다른 도약과 반전을 희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운의 상징을 더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봄이잖아요.’ 맞다. 나물을 캐는 것이 아니라 봄을 캐는 마음으로 도약과 반전의 뒤집기를 꿈꿔보라는 것이 아닐까. 기운이 달리면 빼어난 생명력의 쑥국으로 기운을 채워서 말이다.
글 김정현(소설가) 포토그래퍼 이승헌
봄날의 호사, 봄나물 식탁
따사로운 햇살 아래 낮잠이나 자고 싶더라니, 늘어진 심신에 봄나물 들이자 가문 날 단비 맞은 듯 온몸이 맑게 깨어난다. 이보다 더한 봄날의 호사가 있으랴. 파릇한 나물 밥상에서 이렇게 또 값진 하루가 피어난다.
한겨울 북풍 한설도 이겨내고 힘차게 뿌리 내린 씨앗이 싹을 틔웠다. 겨울을 단단히 버티고 난 나무도 보드라운 싹을 밀어 올렸다. 한반도 산야에 나물이 지천이다. 바야흐로 봄, 나물의 계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봄나물은 밥이자 찬거리, 약재 아닌가. 땅에 딱 붙어 자라는 냉이는 간 치료제이자 반찬 재료고, 달래와 참나물은 집 떠난 입맛을 되돌리는 김치 재료며, 씀바귀 나물은 봄철 먹어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묘약이다. 지금은 잊힌 과거 구황기, 빈 쌀독과 덜 여문 보리에 배가 곯을 시기 발에 차이는 게 쑥이며 냉이 같은 나물이라 민간에서는 죽을 끓여 허기를 달랬다.
흔하다고 귀하지 않은 건 아닐 터. 봄나물 중에서도 특히 봄 두릅은 금과 동등하게 대접받았다. 다른 나물에는 드문 단백질과 사포닌 성분을 다량 품고 있는데, 우리 선조는 보이지 않는 영양까지 가늠해 두릅을 귀히 여겼다. 맛 또한 얼마나 좋은지 조선 말기 요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생두릅을 무르지 않게 잠깐 삶아 약에 감초 쓰듯 어슷하게 썰고 소금과 깨를 뿌리고 기름을 흥건하도록 쳐서 주무르면 풋나물 중에 극상등이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썼다. 하지만 어디 두릅만 금과 같을까. 맛도 향도 다른 나물이 저마다 내 몸을 이롭게 하니, 금이고 은이며 옥이 따로 없다.
봄나물을 요리하는 즐거움은 또 얼마나 큰지. 잘 씻은 나물, 그 보드라운 생이파리 톡 뜯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춘곤증을 단숨에 증발시키는 향긋하고 개운한 맛. 어서 빨리 한 상 차려 나눠 먹고픈 조급증이 든다. 이 좋은 봄맛, 혼자 만끽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허균이 극찬한 맛, 방풍나물죽
잘게 풀어진 쌀죽이 부드럽게 무너지고 방풍나물 향이 퍼져 나와 입 안으로 스밀 때, 이 봄을 다 마신 것만 같다. 이 맛에 허균은 그토록 방풍나물죽을 예찬했나 보다.
그는 <도문대작>에서 “쌀로 죽을 쑤어 반쯤 익으면 방풍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차가운 사기그릇에 담아 따뜻할 때 먹으면 입 안에 단맛과 향기가 가득해 3일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허균의 외가인 강릉뿐 아니라 바다와 인접한 땅이라면 어디든 방풍나물은 잘 자란다. 방풍나물은 ‘풍(風)을 막아준다(防)’는 뜻으로, 예부터 약용 채소로 두루 쓰였다. 최근에는 방풍나물 추출물이 혈당 강하 및 당뇨 예방과 치료에 효과를 보인다고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재료
방풍나물 2~3줌, 쌀 1컵, 참기름 1작은술, 물 3컵 방풍나물 뿌리 바지락물: 방풍나물 뿌리 2~3가닥, 바지락 100g, 물 2컵 된장물: 된장 30g, 물 1컵
만들기 1 방풍나물은 잎과 줄기를 분리하고 줄기와 뿌리 부분은 적당히 썰어 둔다. 2 해감한 바지락과 물, 방풍나물 뿌리를 함께 넣어 우르르 끓인 뒤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불을 끄고 바지락 살만 따로 발라낸다. 국물은 체로 걸러 식힌다. 3 된장을 곱게 풀어 된장물을 만든다. 4 쌀은 물에 불린 뒤 절구나 믹서로 적당히 빻는다. 5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열이 오르면 ④의 쌀을 넣고 겉면이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여기에 ③의 된장물을 넣고 졸인 뒤 ②의 국물을 붓고 중약불에서 끓인다. 6 ⑤의 쌀이 퍼지면 ①의 방풍나물 잎과 ②의 바지락 살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참기름을 두른다.
신토불이 봄나물 잡채
전통 잡채는 ‘나물 대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섞일 ‘잡(雜)’과 채소 ‘채(菜)’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로, 여러 채소를 섞은 음식이라는 뜻이다. 구한말 궁중 요리 전수서 <음식디미방>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승검초(당귀), 동아, 가지, 생치(꿩)를 삶아 (중략) 각각 기름간장에 볶아 교합하거나 임의로 하되 큰 대접에 담는다”고 잡채 레시피를 소개했다.
당면은 1900년대 들어 넣기 시작한 걸로 짐작되는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잡채 조리법에 당면이 등장하기는 하나 “당면을 데쳐 넣는 것은 좋지 못하다”라고 한다.
전통식 잡채는 비록 손은 많이 가지만 정성을 오롯이 드러내기에 좋다. 쌉싸래한 냉이, 달큼한 달래를 같은 분량으로 넣으면 맛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냉이는 찬 성질을, 달래는 따뜻한 성질을 지녀 식재료 간궁합도 잘 맞는다.
1 설탕을 녹인 미지근한 물에 표고버섯을 불린 뒤 물기를 짜고 곱게 채 썬다. 2 풋마늘은 줄기 부분을 길이 5cm로 채 썰고, 잎 부분은 같은 길이로 잘라 세로로 4등분한다. 원추리는 뿌리를 잘라내고 두껍게 채 썬다. 냉이는 깨끗이 씻어 뿌리와 잎을 나누고, 한 입 크기로 자른다. 파프리카는 반을 갈라 씨를 훑어내고 가늘게 채 썬다. 3 황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은 밑동을 자르고 가닥가닥 찢는다. 4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①의 표고버섯, ②의 파프리카, ③의 황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을 각각 볶다가 소금으로 간한 뒤 넓은 접시에 옮겨 식힌다. 5 식용유를 두른 팬에 ②의 풋마늘, 원추리, 냉이를 볶다가 설탕과 간장을 넣고 젓는다. 6 불을 끄고 ④, ⑤의 볶은 재료를 모두 넣어 섞은 뒤 모자란 간은 여분의 간장이나 소금을 넣어 맞춘다. 참기름을 넣고 가볍게 버무려 낸다.
국경을 초월한 한 상 차림, 참나물 페스토 피자 & 봄나물 장아찌
4월의 참나물은 물때 만난 고기처럼 생명력이 정점에 달한다. 씹을수록 그윽하며, 은은하게 입 안을 달랜다. 제철 참나물을 오일과 함께 갈아 페스토를 만들면 서양식 피자나 파스타 재료로 사용하기에도 제격이다.
기름진 맛을 중화해줄 봄나물 장아찌를 곁들이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 상 차림이 완성된다. 두릅과 원추리 등 특유의 식감이 있는 나물이 장아찌에 제격이다. 단 원추리는 반드시 데친 뒤 요리한다.
이구화의 <연수서>에서는 “어린 싹을 먹으면 홀연히 마음이 황홀해진다. 그래서 이름을 망우초(忘憂草)라고 한다”며 원추리를 소개한다. 원추리가 함유한 독 성분, 콜히친 때문이다.
어린 원추리는 콜히친을 미량 함유해 식용할 수 있지만, 잎이 억세질 무렵부터는 독초가 돼 먹을 수 없다. 원추리 순이라도 끓는 물에 충분히 데쳐 콜히친을 제거한 뒤 요리한다.
1 물을 제외한 피자 도우 재료를 볼에 담고 물을 약간씩 나눠 부으며 10~15분간 반죽한다.
실온에서 15분간 휴지한 뒤 표면에 밀가루를 얇게 발라 밀폐 용기에 담고 냉장고에서 30시간 숙성한다. 2 블렌더에 참나물 페스토 재료를 모두 넣고 곱게 간다. 3 방울토마토는 슬라이스하고, 생모차렐라 치즈는 키친타월로 표면의 물기를 제거한다. 4 ①의 숙성된 반죽을 넓게 편 뒤 ②의 참나물 페스토 한 주걱을 반죽 가운데에 얹고, 가장자리 1cm를 남기고 넓게 바른다. 5 ④위에 ③의 생모차렐라 치즈를 찢어 올리고, ③의 방울토마토를 얹는다. 6 ⑤를 250℃로 예열한 오븐에서 10분간 구운 뒤 참나물잎을 고루 올려 20초간 더 굽는다.
민들레, 냉이, 달래, 두릅 등 이맘때 나는 나물은 영양이 좋아 예부터 보약이라 여기며 귀한 식자재로 쓰였습니다. 조물조물 정성으로 무쳐 접시에 소복이 담아낸 봄, 건강한 4월 되시기를 바랍니다.
봄빛
뜰에서 또는 들이나 산에서 나무, 풀 등 끌리는 식물에 걸어가 앞에 선다. 빛깔, 형태, 움직임을 바라본다. 햇빛을 흡수해 드러나는 빛깔을 음미한다. 파스텔이나 수성 색연필에서 끌리는 색깔을 하나 골라 손이 가는 대로 그린다. 그 빛깔을 바라본다. 잠시 느낌에 머물러 있는다.
컬러테라피 효능에 따르면 색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고 합니다. 눈부신 봄빛을 음미하며 인생의 봄도 함께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에디터 방은주
포토그래퍼 이승헌
조물조물 봄을 무치다
저녁상에 올릴 찬을 고민하다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보니 바구니마다 봄나물이 가득합니다. 아삭한 미나리와 향긋한 냉이, 입맛 돋우는 씀바귀와 보양 별미 두릅, 쑥, 돌나물, 달래…. 구경만 하는데도 머릿속에는 벌써 푸짐한 상이 차려집니다. 이맘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산으로 들로 나물 뜯으러 다니던 정겨운 기억도 떠오릅니다.
만물의 생동하는 기운을 듬뿍 머금은 봄나물은 예부터 보양식으로 쓰일 만큼 영양이 풍부하고, 입 안에 감도는 향미와 풍미도 일품입니다. 4월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 <GOLD&WISE>가 준비한 봄나물 소식과 함께 향긋한 봄, 건강한 봄, 맛있는 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방은주 캘리그래퍼 강병인
포토그래퍼 이승헌 스타일링 김상영, 이빛나리, 장연지(noda+ 쿠킹스튜디오)
봄이잖아요!
어느 해 봄이 다가올 무렵 지인을 만나러 대구에 갔다.
손꼽히는 한정식집 중 한 곳이라며 데려가는데 처음 나오는 음식이 뿌리만 다듬은 생미나리 다발과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날된장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투박한 전채(前菜)에 속으로는 혀를 찼지만 지인을 따라 미나리 하나를 손으로 돌돌 말아 된장에 찍어 입 안에 넣었는데, 와! 그야말로 감동의 탄성이 절로 터졌다.
오랜 전통의 식당이라니 직접 담근 된장 맛은 그렇다 하더라도, 입 안에서 팍 소리가 나는 듯 터지며 코와 머릿속으로 화하게 번지던 그 놀랍도록 상큼한 향이라니!
얼마 전 다른 지인을 따라 삼겹살 식당을 갔더니 같은 스타일로 또 미나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사실 대구에서의 감동 뒤에도 익히지 않은 생미나리를 일부러 찾지는 않았다. 미나리꽝이라는 그리 맑지 않아 보이는 물구덩이와 가끔씩 발견되던 거머리에 대한 어릴 적 께름칙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봄철 생으로 먹는 미나리는 물속에서 재배한 것이 아니라 밭에서 청정하게 자란 것이고, 향이 특별히 짙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어린 시절에 무슨 별난 미각이 있었을 리 없고, 젊어서는 땀 흘리고 뛰어다니는 만큼 요기하기에 바빴다. 제법 나이가 들어서도 나라 밖을 떠도느라 또 대충 끼니를 때웠다. 그래도 음식 천국이라는 중국에서는 가끔 입호강을 했지만, 그럴 때일수록 어떤 간절한 그리움이 떠올랐고, 그것은 기억도 희미한 어린 날의 맛이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늘어나며 익혀 먹는 음식의 나라 중국에서도 종래 먹지 않던 깻잎은 물론, 봄이 되면 쑥, 달래, 냉이, 참나물 등속의 제철 나물이 제법 시장에 나온다. 그렇지만 이름만 봄나물이지 향은 빈약한데다 줄기는 억세, 때로 생선탕에 곁들이는 미나리는 건초를 삶아놓은 것이냐 투덜거리게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름만으로도 향수를 달래고 계절을 느낀다.
돌아오니 이제 제법 봄나물 향기가 새삼스럽다. 그래도 쑥은 그 향기로 가끔 찾아 즐기기도 하지만, 봄철 밥상에 오르는 봄나물 반찬에 별달리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저 이 계절에 나오는 풀이어서 오르는 것이려니 무심히, 또 여름이나 가을에도 뭔가 계절의 나물이 있을 텐데, 왜 유독 봄나물인가 하는 시큰둥함도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한적한 도심 외곽 길가에서 나물을 뜯는 듯한 중년 아주머니를 보고 ‘벌써 쑥을 캐는 것이냐’ 말을 건넸더니 미나리를 뜯는다는 대답이었다. 조금 사서 먹으면 될텐데 길가에서 얼마나 뜯을까 싶었는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차림새 고운 아주머니는 ‘봄이잖아요’ 하고 웃어 보였다.
은행나무처럼 1,000년을 넘게 산다는 식물도 한해살이를 마치고 겨울을 이겨내면 나이테를 늘릴 테니 살아낸다는 것이 큰일이기는 한 것이다. 인간의 삶도 비록 늙기는 한다지만 한 해를 살아내고 다시 한 해를 맞는다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행운이고 축복이라 해야 할 터다.
요즘은 사시사철을 보내는 일에 크게 민감할 것 없는 환경이지만, 역사학을 공부하다 보니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특히 겨울을 나는 것이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일이었음을 목격한다. 더구나 더 오랜 옛 시절에야 봄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 ‘아, 이제 살았구나!’ 하는 탄성을 터트리지 않았을까 실감한다.
흔히 봄철 나물은 구황 식물이었다는 말로 상찬을 보탠다. 왜 아니었겠나. 그러나 살림살이의 여유를 떠나 모든 이들이 봄나물을 즐기고 종묘에까지 천신(薦新)했다는 것은 다시 이어가게 된 삶의 연속에 대한 감사의 뜻도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지난해와는 다른 도약과 반전을 희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운의 상징을 더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봄이잖아요.’ 맞다. 나물을 캐는 것이 아니라 봄을 캐는 마음으로 도약과 반전의 뒤집기를 꿈꿔보라는 것이 아닐까. 기운이 달리면 빼어난 생명력의 쑥국으로 기운을 채워서 말이다.
글 김정현(소설가) 포토그래퍼 이승헌
봄날의 호사, 봄나물 식탁
따사로운 햇살 아래 낮잠이나 자고 싶더라니, 늘어진 심신에 봄나물 들이자 가문 날 단비 맞은 듯 온몸이 맑게 깨어난다. 이보다 더한 봄날의 호사가 있으랴. 파릇한 나물 밥상에서 이렇게 또 값진 하루가 피어난다.
한겨울 북풍 한설도 이겨내고 힘차게 뿌리 내린 씨앗이 싹을 틔웠다. 겨울을 단단히 버티고 난 나무도 보드라운 싹을 밀어 올렸다. 한반도 산야에 나물이 지천이다. 바야흐로 봄, 나물의 계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봄나물은 밥이자 찬거리, 약재 아닌가. 땅에 딱 붙어 자라는 냉이는 간 치료제이자 반찬 재료고, 달래와 참나물은 집 떠난 입맛을 되돌리는 김치 재료며, 씀바귀 나물은 봄철 먹어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묘약이다. 지금은 잊힌 과거 구황기, 빈 쌀독과 덜 여문 보리에 배가 곯을 시기 발에 차이는 게 쑥이며 냉이 같은 나물이라 민간에서는 죽을 끓여 허기를 달랬다.
흔하다고 귀하지 않은 건 아닐 터. 봄나물 중에서도 특히 봄 두릅은 금과 동등하게 대접받았다. 다른 나물에는 드문 단백질과 사포닌 성분을 다량 품고 있는데, 우리 선조는 보이지 않는 영양까지 가늠해 두릅을 귀히 여겼다. 맛 또한 얼마나 좋은지 조선 말기 요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생두릅을 무르지 않게 잠깐 삶아 약에 감초 쓰듯 어슷하게 썰고 소금과 깨를 뿌리고 기름을 흥건하도록 쳐서 주무르면 풋나물 중에 극상등이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썼다. 하지만 어디 두릅만 금과 같을까. 맛도 향도 다른 나물이 저마다 내 몸을 이롭게 하니, 금이고 은이며 옥이 따로 없다.
봄나물을 요리하는 즐거움은 또 얼마나 큰지. 잘 씻은 나물, 그 보드라운 생이파리 톡 뜯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춘곤증을 단숨에 증발시키는 향긋하고 개운한 맛. 어서 빨리 한 상 차려 나눠 먹고픈 조급증이 든다. 이 좋은 봄맛, 혼자 만끽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허균이 극찬한 맛, 방풍나물죽
잘게 풀어진 쌀죽이 부드럽게 무너지고 방풍나물 향이 퍼져 나와 입 안으로 스밀 때, 이 봄을 다 마신 것만 같다. 이 맛에 허균은 그토록 방풍나물죽을 예찬했나 보다.
그는 <도문대작>에서 “쌀로 죽을 쑤어 반쯤 익으면 방풍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차가운 사기그릇에 담아 따뜻할 때 먹으면 입 안에 단맛과 향기가 가득해 3일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허균의 외가인 강릉뿐 아니라 바다와 인접한 땅이라면 어디든 방풍나물은 잘 자란다. 방풍나물은 ‘풍(風)을 막아준다(防)’는 뜻으로, 예부터 약용 채소로 두루 쓰였다. 최근에는 방풍나물 추출물이 혈당 강하 및 당뇨 예방과 치료에 효과를 보인다고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재료
방풍나물 2~3줌, 쌀 1컵, 참기름 1작은술, 물 3컵 방풍나물 뿌리 바지락물: 방풍나물 뿌리 2~3가닥, 바지락 100g, 물 2컵 된장물: 된장 30g, 물 1컵
만들기 1 방풍나물은 잎과 줄기를 분리하고 줄기와 뿌리 부분은 적당히 썰어 둔다. 2 해감한 바지락과 물, 방풍나물 뿌리를 함께 넣어 우르르 끓인 뒤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불을 끄고 바지락 살만 따로 발라낸다. 국물은 체로 걸러 식힌다. 3 된장을 곱게 풀어 된장물을 만든다. 4 쌀은 물에 불린 뒤 절구나 믹서로 적당히 빻는다. 5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열이 오르면 ④의 쌀을 넣고 겉면이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여기에 ③의 된장물을 넣고 졸인 뒤 ②의 국물을 붓고 중약불에서 끓인다. 6 ⑤의 쌀이 퍼지면 ①의 방풍나물 잎과 ②의 바지락 살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참기름을 두른다.
신토불이 봄나물 잡채
전통 잡채는 ‘나물 대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섞일 ‘잡(雜)’과 채소 ‘채(菜)’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로, 여러 채소를 섞은 음식이라는 뜻이다. 구한말 궁중 요리 전수서 <음식디미방>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승검초(당귀), 동아, 가지, 생치(꿩)를 삶아 (중략) 각각 기름간장에 볶아 교합하거나 임의로 하되 큰 대접에 담는다”고 잡채 레시피를 소개했다.
당면은 1900년대 들어 넣기 시작한 걸로 짐작되는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잡채 조리법에 당면이 등장하기는 하나 “당면을 데쳐 넣는 것은 좋지 못하다”라고 한다.
전통식 잡채는 비록 손은 많이 가지만 정성을 오롯이 드러내기에 좋다. 쌉싸래한 냉이, 달큼한 달래를 같은 분량으로 넣으면 맛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냉이는 찬 성질을, 달래는 따뜻한 성질을 지녀 식재료 간궁합도 잘 맞는다.
1 설탕을 녹인 미지근한 물에 표고버섯을 불린 뒤 물기를 짜고 곱게 채 썬다. 2 풋마늘은 줄기 부분을 길이 5cm로 채 썰고, 잎 부분은 같은 길이로 잘라 세로로 4등분한다. 원추리는 뿌리를 잘라내고 두껍게 채 썬다. 냉이는 깨끗이 씻어 뿌리와 잎을 나누고, 한 입 크기로 자른다. 파프리카는 반을 갈라 씨를 훑어내고 가늘게 채 썬다. 3 황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은 밑동을 자르고 가닥가닥 찢는다. 4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①의 표고버섯, ②의 파프리카, ③의 황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을 각각 볶다가 소금으로 간한 뒤 넓은 접시에 옮겨 식힌다. 5 식용유를 두른 팬에 ②의 풋마늘, 원추리, 냉이를 볶다가 설탕과 간장을 넣고 젓는다. 6 불을 끄고 ④, ⑤의 볶은 재료를 모두 넣어 섞은 뒤 모자란 간은 여분의 간장이나 소금을 넣어 맞춘다. 참기름을 넣고 가볍게 버무려 낸다.
국경을 초월한 한 상 차림, 참나물 페스토 피자 & 봄나물 장아찌
4월의 참나물은 물때 만난 고기처럼 생명력이 정점에 달한다. 씹을수록 그윽하며, 은은하게 입 안을 달랜다. 제철 참나물을 오일과 함께 갈아 페스토를 만들면 서양식 피자나 파스타 재료로 사용하기에도 제격이다.
기름진 맛을 중화해줄 봄나물 장아찌를 곁들이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 상 차림이 완성된다. 두릅과 원추리 등 특유의 식감이 있는 나물이 장아찌에 제격이다. 단 원추리는 반드시 데친 뒤 요리한다.
이구화의 <연수서>에서는 “어린 싹을 먹으면 홀연히 마음이 황홀해진다. 그래서 이름을 망우초(忘憂草)라고 한다”며 원추리를 소개한다. 원추리가 함유한 독 성분, 콜히친 때문이다.
어린 원추리는 콜히친을 미량 함유해 식용할 수 있지만, 잎이 억세질 무렵부터는 독초가 돼 먹을 수 없다. 원추리 순이라도 끓는 물에 충분히 데쳐 콜히친을 제거한 뒤 요리한다.
1 물을 제외한 피자 도우 재료를 볼에 담고 물을 약간씩 나눠 부으며 10~15분간 반죽한다.
실온에서 15분간 휴지한 뒤 표면에 밀가루를 얇게 발라 밀폐 용기에 담고 냉장고에서 30시간 숙성한다. 2 블렌더에 참나물 페스토 재료를 모두 넣고 곱게 간다. 3 방울토마토는 슬라이스하고, 생모차렐라 치즈는 키친타월로 표면의 물기를 제거한다. 4 ①의 숙성된 반죽을 넓게 편 뒤 ②의 참나물 페스토 한 주걱을 반죽 가운데에 얹고, 가장자리 1cm를 남기고 넓게 바른다. 5 ④위에 ③의 생모차렐라 치즈를 찢어 올리고, ③의 방울토마토를 얹는다. 6 ⑤를 250℃로 예열한 오븐에서 10분간 구운 뒤 참나물잎을 고루 올려 20초간 더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