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김요아킴
교문의 추억 외
교명校名이 유난한 입구의 문은 하나다
모두 태양의 긴 혓바닥을 밟으며
추모 행렬처럼 한 줄로 꼬리를 물었다
지난밤 불면으로 피워낸
통점이 채 가시지 않은 듯
교과서 활자들이 침묵으로 꾸물거린다
여전히 운동장의 태극기는 바람 불지 않아도 펄럭이고 있다
한때 교정校庭과 통하는 문은 세 개였었다
그 자리는 각기 달랐고
드나들 때의 마음은 은행나무 잎사귀 같았다
교목校木이라 하지만
교사校舍가 버티는 나이테만큼 여위었고, 다만
하늘로 자라날 한 뼘의 두근거림으로 위로받곤 했다
이웃 여중 담벼락을 끼고 이어진 뒷문, 윗사람들의 눈치가 적당한 긴장감으로 더러는 아이들 끽연의 흔적이 혹은 전날 마신 술로 슬그머니 출근하던 그러다 자습하다 말고 도망가는 그리고 이를 잡으러 가는 그림자의 충돌이 환하게 번지던 곳
지금은 사라져 버린 씨름장 아래 비탈진 쪽문, 좁다란 산길처럼 양옆으로 개망초와 민들레의 몸싸움에 입구가 가리어져 아이들은 귀찮은 듯 찾지 않는 오히려 그러기에 그날 하루를 책갈피처럼 넘기며 서 있을 그림자를 낯설게 만들던 그곳
‘하지만’의 부사가 수십 년의 거리를 건너뛰고
이제는
결국 하나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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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울
-아침 햇살에 빛나는 맑고 아름다운 첫이슬 같은
선생님 우리말이 참 예뻐요
왜 사람들은 자꾸 어려운 말들을 쓰려고 할까요
10월 9일도 아닌 그날 아침
몇몇 햇살 환한 아이들의 꼭꼭 눌러 담은 마음이
한 편의 빛나는 동아리로 태어났다
교실에서만큼은 병든 말을 내쫓고 싶어요
맑은 말들로 가득 차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었으면 해요
한흰샘과 외솔을 읽고 기억하며
스스로 시간을 모으고
벽면 곳곳 심지어 화장실까지, 손수
그 마음들을 부쳤다
그중 유독 말이 없고 눈이 큰 아이
우리말보다 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첫이슬처럼 훌쩍 사라져 버린
선생님 슬퍼하지 마세요
해울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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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아킴
2010년《문학청춘》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집 『행복한 목욕탕』 『그녀의 시모노세끼항』 『공중부양사』 『부산을 기억하는 법』 외 다수. 백신애 창작기금 수혜. 부산작가회의 회장, 현재 부산 경원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