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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9월19일(일)맑음
날씨가 일기예보와는 달리 유달리 화창하다. 영천에서 진성이네 가족과 어머니가 찾아오다. 점심 공양을 함께 하고 차담을 나누다. 오후에 명상하고 저녁 무렵 진주성으로 나가 산책하다.
새처럼 보고 개미처럼 기어간다. 하늘을 보며 기어가는 개미는 구덩이에 빠지고, 땅 위의 세세한 지형에 신경 쓰며 날아가는 새는 절벽에 부딪혀 죽는다.
원대한 관점과 정확한 실행, 공의 관점과 世諦的 실천, 편재적 두루 봄 Umsicht과 국소적 현사실성Faktizität은 서로 배타적인가, 상보적인가?
말할 수 없음과 말할 수 있음은 서로 배타적인가, 상보적인가?
선사의 말씀은 말할 수 없음과 말할 수 있음의 경계, 그 칼날 위를 걷는다. 그래서 선사의 말은 過猶不及과유불급(지나침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하기에 妙하게 的中해야 한다.
Originally Artemis herself is a deer, and she is the goddess who kills deer; the two are dual aspects of the same being. Life is killing life all the time, and so the goddess kills herself in the sacrifice of her own animal. Each life is each own death, and he who kills you is somehow the messenger of the destiny that was yours from the start. -Joseph Campbell
원래 아르테미스 자신은 사슴이면서, 사슴을 죽이는 여신이다. 그 둘은 동일한 존재의 양쪽 측면이다. 생명은 언제나 생명을 죽인다. 그래서 여신은 자기 동물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을 죽인다. 자기의 삶은 자기의 죽음이다. 당신을 죽이는 사람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던 운명의 사자인 것이다. -조셉 캠벨
2021년9월20일(월)흐림
새벽 5시 기상하여 진성네 가족과 함께 명상하다. 아침 공양하고 커피 마시다. 환담 나누고 선학산 전망대까지 산책하다. 점심 공양하고 떠나다. 진성 가족과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다.
2021년9월21일(화)비온 후, 맑아짐
관측계 안의 만물이 등속운동을 할 때는 만물의 물리적 징후는 정지한 것과 동일하다. 이것을 관성의 법칙이라 한다. 관측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등속운동을 하는 물리계로 바꾸어도 물체의 거동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변환을 갈릴레이 변환Galilean transformation 혹은 갈릴레이 대칭Galilean symmetry, 갈릴레이 불변량Galilean invariance라 한다. 이 개념은 아이슈타인 상대성원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2021년9월22일(수)맑음
화창한 가을날. 요가하고 점심 공양 함께 하다.
2021년9월23일(목)맑음
문화일보에 게제되었던 <박문호의 뇌과학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여 옮겨 적다.
1. 대칭성, 모듈성, 순서성
①대칭과 대칭붕괴
태초에 완벽한 대칭이 있었다(法性圓融無二相).
그래서 태초 이전부터 태초까지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諸法不動本來寂).
‘무위법(asamkhata dharma)’은 무작용, 무활동, 관계단절이 결정된 상태라고 정의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위법은 양자물리학에서 다루는 대칭과 유사하다.
태초는 아무 작용이 없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뭐라고 표현할 그 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상태였다(無名無相絶一切).
그래서 ‘태초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표현은 태초에 ‘자발적으로 대칭이 붕괴되었다(不守自性隨緣成).’는 말과 같다.
우주는 ‘대칭’과 ‘대칭의 붕괴’ 두 상태뿐이다. ‘대칭 붕괴’라는 표현이 바로 ‘존재의 발생(緣起)’이다.
그래서 자연이든 생명현상이든 태초로 되돌아가서 대칭을 만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절대허무라는 말이 아니고, 무작용, 무활동, 관계단절, 연기가 적용되지 아니함)가 된다.
방향성을 가진 작용을 일으키는 현상이 모두 해체되어 무엇이라 표현하는 것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言語道斷).
자연과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을 바탕으로 한다. ‘대칭과 대칭의 자발적 붕괴’는 양자물리학의 주 대상이다. 그래서 자연과학 공부의 맨 밑바탕은 ‘대칭성’이란 개념의 깨달음에 있다.
빅뱅에서 137억 년이 지난 현재 우주의 모습에서는 대칭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양자물리학에서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지 70년쯤 됐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시간대칭과 공간대칭이 보존법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간대칭을 보장하는 보존량은 에너지이며 공간대칭에서 보존량은 운동량이다. 시간대칭의 요청으로 에너지보존법칙이 있으며, 공간대칭의 요청으로 운동량보존법칙이 있다.
②뇌구조의 모듈module성
생물학에서 대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 인간의 심장은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나 태아의 심장은 몸의 중앙에 있다. 생명의 발생은 대칭이 깨어지는 과정이다. 인간의 뇌는 어느 단면구조든 놀라운 대칭구조로 구성돼 있다. 뇌의 곡선은 원이나 직사각형처럼 단순한 기하학적 대칭은 거의 없고 무수히 많은 짧은 곡선의 연결이다. 직선으로 구성된 구조는 뇌에서 드물다. 생명은 곡선을 좋아한다.
뇌의 기하학적 구조는 방향과 곡률을 예측하기 힘든 무수한 곡선이 엉킨 실타래이다. 대뇌의 표면은 많은 언덕과 골짜기 형태여서 그리기조차 어렵다. 뇌의 단면구조도 온통 곡선구조이며 절단면의 위치마다 크기와 형태가 바뀐다. 뇌 단면구조는 대칭적이다. 어떤 뇌 단면이든 모두가 대칭축을 중심으로 완벽한 대칭구조이다. 뇌의 전반적 구조는 모듈module식이지만, 단면구조는 아름다운 대칭 형태이다. 모듈이란 쉽게 말하면 레고 블록 같은 형태이다. 레고 블록으로 풍차나 비행기를 조립할 수 있듯이 모듈 형태의 구조물은 조립하여 더 크고 복잡한 구조물을 만든다. 인간의 뇌나 척추와 같은 복합구조는 단위 모듈의 연결로 생성된다.
③모듈의 시간 순서배열이 생명현상이다
모듈적 속성은 단위성과 조작성 그리고 교환성이다. 어떤 구조나 형태가 대칭성과 모듈성을 가지면 모듈끼리 교환과 조작이 가능해진다. 대칭성을 갖는 큰 단일구조가 구성모듈로 분해되면, 그 구성요소들이 시간과 공간에서 순서로 배열될 수 있다. 모듈성 구성요소가 시간순서로 배열된 현상이 생명의 전개과정이다. 생물학에서 구체적 모듈은 포도당과 아미노산 분자이다. 단당류인 포도당의 중합으로 다당류인 녹말이 되며, 아미노산의 연결이 단백질이다. 생명현상은 단백질의 구성블록과 에너지원인 다당류의 상호작용이다. 생물학에서는 분자형태가 주로 모듈의 구성단위이고 화학에서 모듈은 주기율표의 원자이다.
생체정보를 담당하는 DNA도 전형적인 모듈식 구성이다. DNA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의 염기와 리보스, 그리고 인산기의 구성 모듈이 중합되어 생성된, 대칭구조를 갖는 모듈형 거대분자이다.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그리고 유전정보인 DNA의 상호작용인 생물학적 현상은 모두가 모듈과 모듈의 순차적 연결이자 대단히 긴 반복일 뿐이다.
④양자물리에서 모듈 단위와 교환
양자물리학에서는 모듈의 단위성과 교환성이 더욱 자명하다. 우주의 4가지 힘은 전자기력, 중력, 강력, 약력이다. 그런데 ‘강력’이나 ‘약력’ 보다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이란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그것은 양자물리학에서 힘이란 본질적으로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 보존boson을 입자 끼리 교환하면서 생긴 현상이므로 ‘힘’보다 ‘상호작용’이란 의미가 더 깊다. 즉 힘은 교환가능성에서 나온다. 우주의 4가지 힘을 매개하는 입자에는 중력자graviton, W입자, Z입자, 그리고 광자photon 가 있다. 빛 알갱이인 광자가 바로 전자기 상호작용을 매개해 준다. 그래서 생명의 이야기는 전자와 광자와 양성자의 상호작용이 엮어내는 교향곡이다.
⑥대칭붕괴에서 생명이 출현하다.
태초의 대칭이 붕괴되어 전자기 상호작용이 출현했으며 전자기 상호작용이 지구라는 행성 표면에서 기적처럼 엮어낸 드라마가 생명현상이다. 그리고 인간 뇌에 의한 가상세계의 출현은 생명현상이 보여주는 새로운 차원의 전개이다. 문화와 역사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화폐와 단어의 모듈성에서 생겨나는 교환가능성에서 경제력과 문화의 힘이 출현한다. 생명과 뇌 구조의 바탕에도 모듈성의 원리가 있다. 척추동물의 몸 구조는 척추라는 마디, 즉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대칭성과 모듈성 그리고 순서성은 우주와 생명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드러내는 본래 모습이다.
척추동물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5억 년 동안 무수히 반복 실행한 생존과정의 결정체가 인간의 뇌이다. 그 바탕에는 자연의 대칭이 인간 뇌의 구조 속에 아름다운 구조로 새겨져 있다. 기억의 법칙도 대칭성, 모듈성, 순서성에서 나온다. 대칭과 대칭의 붕괴로 세계가 출현했고, 세계는 태초의 대칭을 그리워한다. 대칭의 요청으로 우주의 네 가지 힘이 출현했다. 결국 대칭의 아름다움이 힘의 근원이다. 아름다움은 대칭에서 나온다.
<박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미국 텍사스 A&M대 전자공학 박사 △‘뇌 생각의 출현’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 등 출간
2. 존재하는 만물은 인간 신경계가 만든 내적 표상이다: 감각·지각·기억·정체성
①우리는 매 순간 ‘감각적 인상’을 분별하면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살아간다는 것은 느끼고 분별하는 정신작용의 연속이다. 감각과 지각 그리고 행동이 서로 엮어지면서 인간을 의식적 존재로 만든다. 감각과 지각을 통해 주변 환경을 뇌에서 재구성해낸다. 세계상의 구성은 감각입력으로부터 시작된다. 감각은 지각과 달리 전송채널과 지도를 구성한다. 청각은 달팽이관의 청각신경에서 출발해 전용 청각신경전달경로를 따라 소리자극이 대뇌 일차 청각피질로 전달된다. 일차 청각피질은 신호처리영역이 주파수별로 배열되는 평면 영역지도를 구성한다. 촉각도 마찬가지로 일차 체감각피질에는 신체 피부의 촉각정보가 감각의 중요도에 비례하는 면적으로 지도화돼 있다. 지각작용은 감각자극과 연결된다. 즉 지각은 감각 입력의 단편자극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내는 구성적 과정이다. 감각자극의 전달 초기 단계에는 감각이 의식되지 않는다. 시각의 경우 망막에서 일차 시각피질에 도달하는 0.05초까지는 무엇을 봤는지 의식할 수 없다.
후두엽 일차 시각피질에서 시각의 흐름은 두정엽과 측두엽의 두 갈래로 갈라진다. 측두엽으로 전달되는 시각 처리과정이 진행돼 0.1초 지나면 색깔과 형태를 ‘의식적’으로 알 수 있다. 앞쪽 측두엽에 시각정보가 전달되면서부터 감각이 의식화돼 지각된다. ‘시각정보가 전달된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사과’를 본다는 현상은 사과에서 반사된 빛 알갱이의 자극으로 생성된 전압파가 신경세포의 연결을 통해 측두엽까지 전달되면서 전압파열의 흐름이 ‘색깔’과 ‘형태’라는 놀라운 인식작용을 창출해낸다. 그래서 모든 지각과정은 창조적 과정이다. 감각정보가 지각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결코 수동적 과정이 아니고 사람마다 고유한 창조적 과정이다. 단편적 감각자극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수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엮어내는 확률적 과정이다.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하려는 ‘열정’을 갖고 있다. ‘연결돼 함께 신경 펄스pulse를 방출하는 신경세포는 함께 묶인다’는 것이 신경과학의 기본 원리이다. 신경세포가 서로 결합해 작용한 결과는 기적 같은 인지능력이다. 우리의 청각은 시간적으로 바뀌는 공기압력의 변화를 엮어서 소리로, 소리를 엮어서 단어로, 단어를 엮어서 문장과 노래를 만들어낸다. 뇌 운동신경세포의 무수한 연결로 단순한 동작을 적절한 순서로 연결하면 집짓기, 베짜기와 같은 인간 문화를 이룬 고도의 적응 능력이 나타난다. 지각이 감각단서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이 진행되면 그 단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무엇’인지를 안다는 과정은 반드시 이전의 기억을 불러와야 한다. 어떤 과일이 사과인지 배인지를 안다는 것은 구별할 수 있는 정신작용이다. 지각이 알아차린 대상이란 그 속성을 구별하는 한 묶음의 관계들의 집합이다. 즉 구별이 바로 의미다. 대상들을 속성에 따라 구별해 범주화한다. 감각적 인상은 의식적 지각과정이고 의미가 창출되는 뇌 작용이다. 우리는 하루종일 보거나 듣는 내용을 평가하고 분류하며 의미를 생성해낸다. 그 결과 나에게 지각된 대상과 주변 환경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내가 경험하는 세계란 나의 지각과정에서 부여된 의미로 물들어졌기 때문이다. 좋거나 싫은 감정은 우리의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다. 결국 행동은 지각의 결과다. 또 행동과 결과는 다시 기억으로 저장된다.
②새로운 기억의 생성은 이전의 기억을 반드시 불러와야 한다.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우연히 본 어떤 장면이 한 번도 회상해 보지 않았던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생각은 ‘생각나기’와 ‘생각하기’가 있다. 생각나기는 자동적으로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이고, 생각하기는 능동적으로 기억이 기억을 불러오는 과정이다. 새로운 기억은 유사한 이전의 기억에 결합되어 저장된다. 그래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려면 반드시 옛 기억을 ‘통과’하게 된다. 이 현상의 요점은 우리는 옛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전의 기억이 전무한 상태에서 무언가 기억하려면 집중해서 무수히 암송하거나 손으로 반복해서 적어 봐야 한다. 즉 이전에 비슷한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려면 오직 반복해서 절차기억으로 만들어야 한다. 비슷한 경험의 반복으로 사건의 의미가 견고해진 기억이 의미기억이며 평생 잊히지 않고 유지된다. 의미기억은 많은 반복으로 절차기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기억은 일화episode기억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개나 고양이의 일화기억은 매우 빈약해서 한 시간 이상 지속하기 힘들지만, 인간은 수십 년 전의 일들을 기억해낼 수 있다. 인간에서 가능해진 일화기억으로 말미암아 평소에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이 생겨난다. 즉 자신의 자전적 일화기억을 매 순간 불러오는(회상) 과정이 우리의 ‘개인적 자아’를 만들어낸다.
③세계는 우리의 신경계가 만든 내면적 표상이다.
인간은 지난 경험기억을 바탕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반면에 동물은 사건기억이 약해서 사건이 전개되는 바탕인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빈약하다. 그래서 뇌과학자 에덜먼(Gerald Maurice Edelman, 1929~2014, 미국 뇌생리학자,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의 표현대로 동물은 ‘기억된 현재’만 존재한다. 동물은 기억을 반영한 행동이 아닌 감각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행동을 한다. 즉 동물은 감각에 구속된다. 해마의 작용으로 ‘기억’이란 능력을 만들어낸 인간은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의 행동을 선택하고,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해마에서 사물의 지각을 연결해 맥락적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은 해마에서 공간에 배치된 사물에 대한 ‘패턴분리’와 ‘패턴완성’이란 과정을 거친다. 사물의 구별 가능한 개별 패턴을 대뇌 언어영역에서 단어로 대응관계를 만들어낸다. 언어로 구분된 대상을 지시하는 단어가 바로 그 의미가 된다. 왜냐하면 대상의 구별 자체가 바로 대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화기억이 약한 동물은 감각에 구속되고 인간은 의미에 구속된다. 세계에 대한 ‘의미’가 인간 행동에 반영되면서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목적지향적 존재가 된다. 그래서 세계가 이렇게 보이는 것은 세계의 모습이 아니고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상태이다. 세계는 우리의 의식이다.
3. 생각하는 인간… 뇌에 ‘가상세계’ 만들어 현실문제 해결: 꿈, 기억, 그리고 현실
①꿈꾸는 두뇌
뇌는 스스로 문을 열고 닫는다.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에 따라 뇌의 상태가 변한다. 뇌는 낮의 각성상태와 밤의 수면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신생아는 각성과 수면 상태를 교대로 자동스위치처럼 끄고 켜고 한다. 성장함에 따라 낮에 자는 시간보다 밤에 자는 시간이 점차 늘어난다. 수면 상태은 徐波수면과 렘수면의 두 가지 상태로 구분된다. 출생 직전의 태아는 24시간 렘수면 상태이다. 꿈은 렘수면 시에 80%, 非렘수면인 서파수면에서 20% 꾼다. 렘수면의 꿈은 놀람 반응으로 가득한 운동성이 풍부한 내용이며, 서파수면의 꿈은 시각 장면이 반복되지만, 이야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낮 동안 목적 지향성과 감각자극이 없는 상태는 렘수면 꿈의 상태와 비슷해진다. 깜깜한 방에서 그냥 누워 목적 없이 생각을 내버려 두면 렘수면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렘수면에서는 강한 정서가 동반한다. 꿈에서 경험하는 주된 감정은 분노와 공포이다. 꿈 내용은 무슨 암시로 가득하다고 느껴지며 우리는 꿈의 의미를 해석하려 노력한다. 꿈은 잊히도록 진화해왔다. 하지만 잊히지 않은 꿈은 현실이 된다.
꿈에서는 시간, 장소, 사람, 행동이 수시로 바뀐다. 꿈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와 시간이 혼란스럽게 바뀌는 이유는 시간적 순서를 생성하는 전전두엽이 거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꿈의 내용은 원인과 결과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각성 시 논리적 사고는 전전두엽이 시간과 장소에 적합한 순서대로 기억을 불러와서 연결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뇌 정보처리 과정이다. 감각 입력이 없는 상황에서 작동하는 지각을 환각이라 한다. 감각 없이 전개되는 시각이 렘수면 꿈의 주된 내용이어서 꿈은 환각과 같다.
②뇌가 창조하는 세계상은 환각이다
객관 세계는 감각 입력을 통해 뇌가 지각으로 재구성한 세계이다. 즉 세계는 뇌의 창조물이다. 대상에 대한 감각 입력이 없는 상태에서 지각만이 작용하는 현상이 바로 환각이다. 환각에 몰두할수록 감각은 차단되고 완전한 내면의 상태만 존재하게 되어 꿈과 같은 상태가 된다. 즉 생각은 환각일 수 있다. 생각이 끊어지는 틈새로 생생한 현실이 순간 확연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걸 “깨어남, 각성”이라 한다. 생각은 범주화된 지각의 언어적 지시과정이다. 생각은 지각의 상위과정이 아니고 기억처럼 지각처리 과정의 한 단계이다. 지각은 단편적 감각 입력이 ‘무엇’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여기서 ‘창조적’이라는 말은 인간두뇌가 외부대상을 지각하는 과정이 ‘있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두뇌가 꾸며낸다(날조fabrication, 구성configuration)는 말이다. 따라서 100% 정확성을 가진 외부인식은 불가능하다. ‘있는 그대로’와 ‘사실’이라는 개념 또한 두뇌가 조작해낸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외부세계 인식 자체가 온통 사이비-진실, 거짓이라는 말인가? 그런 건 아니다. 지각은 그 자체가 만들어가는 창의적 과정이기에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다양한 의미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문화와 문명은 개인과 집단, 민족과 인종 사이의 차이가 상호 교류되면서 오늘날 세계문명을 건설했다.
③가상세계는 환각이다, 그것은 창조적이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갇힌 자유이다.
생각은 현실을 반영하는 환각이란 관점에서 꿈과 같고, 그리고 생각은 언어에 의한 상징적 표상이므로 실재가 없다. 결국 자기 내면에 몰입된 생각과 꿈은 내적으로 고립된 환각의 세계이다. 신체감각이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논리적 사고 없이 영화에 몰입해 있다면 현실과 영화는 구분하기 어렵다.
가상세계는 인공지능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각자료를 바탕으로 지각을 꾸며낼 때부터 벌써 시작되었다. 지각은 그 자체가 세계를 흉내 낸 환각이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생각은 그 자체로 환각이다. 우리가 생생한 대상을 직접 경험할 때 환각에서 벗어나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가 중첩된 세계에 참여하게 된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꿈과 생각이라는 특별한 지각과정이 물리적 인과관계의 사슬에서 벗어나 무제한의 가상세계를 출현시켰다. 물리적 공간의 인과율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은 자연 속에 가상세계라는 또 하나의 자연을 탄생시켰다. 이른바 에델만이 이야기하는 세컨드 네이처 the second nature(이차적 자연, 실제의 자연을 모방한 자연)이다. 자기 문제에 생각이 몰입할수록 자신만의 현실이 실체화된다. 모든 사람은 각기 고유한 현실을 창조하여 거기에 갇힌다. 생각으로 조작해낸 현실이 심각해질수록 비현실적이 된다는 역설이 생겨난다. 그래서 현실에 빠진 사람은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두엽이 처리해야 할 현실문제에 몰입할수록 감각이 사라지고 기억에만 의존한 강한 생각이 만들어진다. 결국 생각만 존재할 때 생각은 환각이 되어 완벽한 가상세계가 출현한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현실도 환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