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봄작가회가 낯설던 시절이 있었다. 등단 이후 회원의 날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2013년 봄에 금정역에 처음 내렸었다. 아직 등단 인증패를 받기 전이었고, 그날 처음으로 발행인님과 작가님들을 만났었다. 그리고 이후로 금정역 어느 술집에서 몇 번의 모임이 있었다.
군포는 문학의봄작가회가 태동하고 발전한 곳이다. 작가회가 점점 성장하는 동안 많은 신인들을 꽃피워 왔다. 어떤 꽃들은 한철 피었다가 지고 다시 피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꽃은 홀씨를 어딘가로 날려보내어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해살이 풀꽃인 줄 알았는데, 해마다 자기 자리를 지키며 꽃을 피우고, 뿌리를 내리며 큰 나무로 자라기도 했다. 내가 여기 문학의봄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하기까지 누가 곁에 있었을까. 어떤 힘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몇 년 만이라서 반가운 거리에 때마침 벚꽃들이 만개하고 있었다. 살랑살랑 봄바람을 맞으며 꽃잎들이 팔랑팔랑 춤을 추고 있었다. 사월은 벚꽃의 계절임을 실감했다. 스산한 거리를 이렇게나 화사하게, 우수의 젖은 마음을 이렇게나 두근거리게 하다니. 그런데 자세히 보니 벚꽃나무들은 수명이 꽤 오래된 듯했다. 가슴엔 구멍이 숭숭하고, 맨들맨들하던 수피도 울퉁불퉁 거칠었다. 늙어가는 나뭇가지가 안간힘으로 피우는 꽃잎들을 보면서 언젠가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인생 어디쯤에선가 길을 잃었던가? 늙은 벚나무처럼 꽃잎을 피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가? 그리고 이 거리에서 길을 찾았던가? 그러나 오늘 밤 흩날리는 저 벚꽃처럼 오래도록 헤매었던 날들을 뒤로하고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았다. 내 시詩의 근간인 문학의 봄이 있었기에...
2014년 첫 시집을 준비하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 시를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울 때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도 시인'이라는 자아도취에 흥분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서두르는 마음으로 내 시집을 세상으로 내보내고 싶은 조바심이 들었을 터이다. 벚꽃이 피는 파란 봄 하늘에 내 시들을 쏘아 올려 보고 싶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어느 시인에게 원고를 보여드렸다. 추후 연락을 주시겠다는 말씀만 믿고 기다렸었다. 기다리는 마음을 알리 없으신 시인으로부터는 꽤 오래 연락이 없었다.
'내 쪽에서 다시 전화를 해야 하나?' 하는 불안감에 '내 시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망설이고 계시지는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조급한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드리게 되었고, 그분의 빨간 펜이 사정없이 흔적을 남긴 원고를 받았다.
아무리 부족해도 자신의 작품에는 나름대로 애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붉은 흔적으로 지워지고 얹힌 내 시들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둔중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흔들렸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시집을 낼 것인가. 다시 처음부터 보태고 빼고 퇴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차라리 이 원고 뭉치를 문서세단기에 갈아 넣어야 하는가.
그 여름, 혼돈이었던 내 마음처럼 장마전선이 연일 오르락내리락하고, 땡볕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문학의봄 안양파 작가님들이 '우르르 콩콩' 천둥을 치더니 누군가 번개를 때렸다.
모 작가님의 댓글처럼 글 쓴다고 술꾼들만 는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술 마시고 운전하면 음주운전이라 안되지만, 술 마시고 시 쓴다고 정의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잖은가. 남이야 건강을 챙겨주건 말건 우리는 똑! 소리 나는 음주 시인 아닌가. 그리해서 여름 한복판인 팔월에 금정역으로 향했다.
등단 이후 금정역에서, 인사동에서, 인천에서 서너 번 술자리를 했지만, 아직은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다. 낯선 그 느낌을 지우려고 열심히 술잔을 비웠다. 일단 한 걸음 가까이에서 대화를 하니 친근해졌다. 시인들도 술이야 마시지만, 정치며 사회며 꼴도 보기 싫으니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저 여느 소시민들의 술자리와 다름없다.
집안 이야기에 돈 걱정, 취준생인 아이들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도 마지막에는 시를 이야기한다. 그러던 중 작가회 새내기로서 약간의 근성을 발견하신 듯한 발행인님이 내게 몇 말씀해주셨다. 발행인님의 눈빛은 잔잔하고 목소리는 고요했다. 부지런히 카페에서 글을 읽고, 쓴 글을 올리라고 무심하게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무언가 잡은 듯 내친김에 최근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원래 처음 낼 때는 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된다. 누군가 더하고 빼주다 보면 자신의 민낯이 없어져 버려서 재미없으니 그냥 한번 세상을 향해 툭! 던져보라.'라며 토닥토닥 답을 해주셨다. 그 말씀은 간결하고 명쾌했다. 그렇다. 첫 시집은 날 것의 그것이다. 민낯인 그것이다.
서랍 속에 잠든 내 원고를 다시 붙들었다. 빨간 펜의 의미를 새기며, 살리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첫 시집을 준비하는 중에 카페에서 이달의 작품으로 처음 선정이 되었다. 출간을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아직도 나는 내 시에 대하여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였다. 당선 소감을 카페에 올리면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내면을 고백했다. 그때 어느 선배 작가님이 진심 어린 충고의 글을 남기셨는데 어려운 시기에 참 용기가 되었다.
'모난 돌도 석수의 정을 맞아야 어엿한 형체를 갖추어 가며, 후대에 길이 남을 작품이 탄생됩니다. 망치가 아니라 바위로 맞아도 얼굴색이 변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심사평이 항상 화자의 시심을 정확히 꿰뚫고 파악하여 그 부족함을 온전하게 끄집어 내기란 결코 쉽지는 않으리라 저 역시 미루어 짐작합니다. 따라서, 나(화자)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이해하고 취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들(심사위원=독자)의 지적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성은 있다고 보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합당한 고쳐나갈 지적이라면 취하고, 이에 반하여 "어? 이건 아닌데?"라는 판단이 확고히 서실 땐 참고만 하시고 버리셔도 무방할 것이라는 거지요.'
똑같은 상황에서 누군가의 말에는 용기를 얻고, 누군가의 말에는 좌절하게 된다. 물론 두 말 모두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하는 말일 거다. 그런데 말 한마디가 그를 발돋움하게 하거나 싹을 도려내기도 한다면 어떨까. 말 한마디, 글 하나의 힘이 그렇게 누군가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봄밤이 깊다. 오늘 밤은 어느 시인의 기분이 좋아서 2차에 3차까지 거나하게 쏘셨다. 벚꽃처럼 정이 푸지다. 쏘는 마음이 즐거우라고 우리들은 모두 행복해졌다. 어떤 모임이든 모이면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한다. 들러보니 옛사람의 빈 자리가 느껴진다. 어딘가로 날아가서 꽃을 피우고 있으리라. 그 꽃들이 그곳에서 더욱 멋진 꽃을 피우길 바란다.
떠난 자리에는 새 사람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새로운 꽃들이 잘 자리잡고 뿌리를 내려 해마다 꽃이 필 수 있도록 잘 북돋아주는 것이 내 몫이다. 선배들이 내게 주셨던 말씀들이 나를 이끌어주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야 한다. 꽃과 나무는 땅을 옮기면 몸살을 앓는다. 토양에 적응할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홀로 돌아가는 발길을 걱정하는 선배작가님의 전화 한통을 받는다. 별빛처럼 따라와준 염려가 혼자가 아니라는 듯 마음이 든든해진다. 벚꽃나무 건너편에서 새순을 틔우는 나무들이 시선을 끌고 있다. 밤 하늘을 향해 뾰족뾰족 움트는 새잎들은 꽃잎처럼 향기롭다. 파르스름한 초승달이 가늘게 눈을 뜨고 아파트 숲속 나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봄밤의 분위기 때문인지, 꽃들의 향기 때문인지 숨이 막히다. 가로등 불빛으로 겨우 존재를 알리고 있는 새순을 따서 입에 넣으면 까무룩 쓰러질 거 같다. 꿈속에서 보는 무릉도원처럼 몽환적이다. 오늘 밤이 아니면 보지 못했을 저 연녹색 그림자, 흐린 불빛 아래 나와 함께 서 있는 숨결들이 따습다. 그렇다. 저 수많은 잎들은 혼자가 아니기에 흔들리면서도 자라고 있다.
내가 싹 틔운 시 하나로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불쏘시개로 사라질 나의 시들을 시집으로 묶어주었다. 그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하나의 꽃잎이 피기까지 햇살과 바람과 빗물이 다녀갔다. 하나의 시가 하나의 시집이 되기까지 누군가의 다정한 격려와 진심을 담은 충고가 있었다. 늙은 저 벚꽃나무도 작은 가지에서 자라났다. 시간이 흐르고, 바람을 견뎌내며 꽃을 피웠다. 잔 가지를 쳐내며 자랐고 등이 굽도록 여린 꽃들을 피워냈다.
첫댓글 12년 겨울 당선자 발표 후 17기로 처음 사무실을 찾던 때가 13년 1월이었는데 현재 46회 공모 중이니 세월 참 빠르군요.
등단 7년 차로 문예지의 주간, 작가회의 총무국장, 출판사의 재정국장일 정도로 능력과 책임감 있는 조직의 중심이 되었어요.
지금의 신념과 성실함 꾸준히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에요~
한결같은 문학의봄 발행인님과 작가회 여러분들 덕분에 오늘까지 왔습니다.
더욱 멋지고 든든한 후배들이 들어와서 행복하고요.
늘 감사합니다.
20년 가까이 전철이나 기차, 버스, 승용차를 타고 금정역을 지나쳤으면서도 그곳에 벚꽃길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문봄작가회와 강시인님에게 의미 있는 장소인 금정역 어느 술집에 두 번 갔던 일이 제게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금정역 벚꽃들이 어제 내린 비에 낙화했겠네요.
피었다가 지는 짧은 순간을 위해 또 한해를 보내겠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기술이 아니라 지적감성을 호출하는 스토리텔링!!!
봉화샘 말씀 명심할게요. ㅎㅎ
금정역 어느 술집에서 위대한 수필 한 수가 탄생했네요.
잔잔한 글에 감동 충만!
작은 가지에서 시작하여 찬란한 꽃을 틔우는 저 늙은 벚꽃나무의 전설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금정역에 그리 아름다운 꽃길이 있는 줄 몰랐네요.
가을이면 단풍도 예쁘게 물들 것 같아요.
늘 응원에 힘 입어 힘을 냅니다.
충성!!!
역사는. 술자리에서 이루어지죠. ㆍ역시 사람에겐 사람이 희망입니다
문봄 역사는 금정역 어느 술집에서 이루어졌어요.
실력있는 작가님들이 점점 늘어나 금정역 벚꽃처럼 흩날리고 있네요.
즐거워라ㅎㅎ
근데 <금정역 어느 술집에서>는 누군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되는거 아닌가? ㅎㅎ 저작권료는 안받을테니 술사유 ㅋㅋ
ㅋㅋ 술이야 얼마든지 사쥬 ㅎㅎ
마음의 금정역!
듣기만해도 설렙니다.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
감사할 축복입니다.
외국서 문학활동은 ~
저마다의 개성이 독특하지요.
어느정도 긍정합니다.
지나친 합평이라는 것으로
상처받고 입을 닫기도 하지요.
노래에도 자기 고유의 창법이
있듯이 글맛도 같은 원리라
생각돼요. 윤슬 강순덕이면
더이상 없지요. 쓰면서 좋고
나중에 읽으면서도 좋으면
딱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쓰신 글맛 존중합니다. 기아오라!
맞습니다.
그리운 공간이 있다는 건 보물창고와도 같은 거죠.
남의 나라에서의 문학이란
보물창고가 더욱 크고 넓다는 거겠지요?
저야 제 보물 꺼내놓는 거라 좋지만,
읽는 관점에 따라서는 우숩게 여겨질 글도 있을 테지요.
감안해야지요.
정다운 글 감사드리며,
백선생님의 건강을 늘 기원합니다.
그런데 '기아오라'는 무슨 의미인지 궁금.ㅎㅎ
@윤슬 강순덕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어요.
기아오라!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힘내세요.
또 만나요.
@백동흠 좋은 말이네요.
하와이에서는 알로하
뉴질랜드에서는 기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