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나이가 들어 수명을 다하거나 질병, 사고로 인해 죽는다. 또한 자살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 몸을 이루는 60조 개의 세포들의 죽음과 연결된다. 반대로 우리 몸의 세포들이 죽으면 우리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몸은 건강할 때도 매일 수많은 세포들이 인간들의 자살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포토시스(apoptosis)를 일으킨다.
아포토시스란 무엇인가?
세포는 화상이나 심한 충격, 또는 독극물 등으로 인해 크게 손상당하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타의적인 세포의 죽음을 ‘네크로시스(necrosis)’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세포 밖에서 물이 세포 안으로 급격히 유입되어 세포가 터져 죽는다.
반면에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포토시스(apoptosis)’는 피부 세포처럼 빈번하게 교체되는 세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피부 세포가 노화되면 아포토시스가 일어나는데, 세포의 노화는 시간이 아니라 세포 분열 횟수에 따라 정해진다.
예를 들어 인간 세포의 경우에는 50~60회 분열을 하면 아포토시스를 일으킨다. 세포 안의 염색체 끝에는 염색체의 끝을 보호하는 텔로미어라 불리는 특수한 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는 세포 분열을 할 때마다 짧아진다. 그 길이가 원래의 절반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세포 분열이 일어나지 않고 아포토시스를 일으켜 세포가 죽음을 맞이한다.
아포토시스는 세포의 노화 외에 호르몬, 바이러스, 방사선 등의 다양한 자극으로 세포가 비정상이 되었을 때도 일어난다. 이렇게 노화되거나 비정상이 된 세포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개체 전체가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아포토시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매일 암세포가 발생하는데, 이 아포토시스 덕분에 암세포가 자살을 하기 때문에 암에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아포토시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 몸에 암이 생길 수 있다.

아포토시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세포의 죽음이다.ⓒ윤상석
또한 동물의 발생과 분화 과정 중에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기 위해서도 아포토시스가 일어난다. 사람의 경우, 태아의 손이 발생할 때 처음 모양은 손가락이 없는 주걱 모양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손가락 사이에 아포토시스가 일어나 손가락과 발가락이 벌어진다.
아포토시스는 어떻게 일어날까?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나 암세포로 변해 비정상 세포가 되면, 면역 세포가 다가온다. 면역 세포는 비정상 세포의 표면에 단백질을 결합시키는데, 이것이 신호가 되어 비정상 세포에서 ‘카스파아제(Caspase)’가 활성화된다.
카스파아제는 세포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단백질을 잘게 자르는데, 그중에는 DNA를 분해하는 효소를 평상시 억제하는 단백질도 포함된다. 그러면 DNA 분해 효소가 작용하기 시작하고 DNA가 조각난다. DNA가 조각나면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세포는 ‘아포토시스 소체’라는 작은 주머니로 갈라져서 이웃 세포나 대식 세포에게 먹히고 갈라진 세포 성분들은 재활용되어 다시 새로운 세포의 재료가 된다.

아포토시스가 일어나면 세포는 ‘아포토시스 소체’라 불리는 작은 주머니로 갈라진다. ⓒ윤상석
아포토시스가 일어나지 않는 세포들
생명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심장의 심근 세포나 뇌의 신경 세포 등은 아포토시스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 세포들의 죽음은 몸 전체에 매우 치명적인데, 이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의 교체되지 않고 몸 전체의 수명과 같이한다. 그리고 이 세포들은 ‘아포비오시스’라는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신경 세포는 주위의 신경 세포와 이어져 있는데, 아포비오시스가 시작되면 주변 신경 세포와의 연결이 적어지고 세포가 수축하기 시작한다. 결국 주변 신경 세포와 연결이 모두 끊어지고 DNA가 크게 조각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포비오시스로 죽은 세포는 아포토시스와 달리 세포가 조각나거나 흩어지지는 않는다. 대신에 서서히 대식 세포에게 먹히거나 그대로 방치된다.
뇌의 신경세포는 태어난 후 대부분 세포 분열이 일어나지 않아 그 수가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아포비오시스가 일어나 그 수가 점차 줄어든다. 노화 과정에서 뇌 신경 세포의 아포비오시스가 지나치게 진행되어 생기는 질병이 바로 치매인 알츠하이머병이다.

아포비오시스가 지나치게 진행되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윤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