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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9월 30일 수요일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예로니모 성인은 347년 무렵 달마티아의 스트리돈(현재 보스니아의 그라호보 근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공부한 다음 트리어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였으나,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379년 사제가 되어 382년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옮겼는데,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가 그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그는 성경 주해를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베들레헴에서 세상을 떠났다.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욥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며, 누가 그분과 겨루겠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시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 욥기의 말씀입니다. 9,1-12.14-16
욥이 친구들의 1 말을 받았다.
2 “물론 나도 그런 줄은 알고 있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3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4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하리오?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을 옮기시고
분노하시어 그것들을 뒤엎으시는 분.
6 땅을 바닥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
7 해에게 솟지 말라 명령하시고 별들을 봉해 버리시는 분.
8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
9 큰곰자리와 오리온자리, 묘성과 남녘의 별자리들을 만드신 분.
10 측량할 수 없는 위업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
11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
12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
14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께 답변할 수 있으며 그분께 대꾸할 말을 고를 수 있겠나?
15 내가 의롭다 하여도 답변할 말이 없어 내 고소인에게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네.
16 내가 불러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해도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리라고는 믿지 않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티모 3,14-17)와 복음(마태 13,47-5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먼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오겠다고 하거나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다음에 따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루카 9,60).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9,62).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 고민하고 갈등을 겪게 됩니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피할 수 있는지 계산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받을 이익이나 손해 등을 함께 따져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아쉬움이나 미련과 같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감정들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결국은 빈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모습처럼, 하고자 하는 것과 하고 있는 것이 다른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왕태언 요셉 신부)
성경을 파고 드십시오. 거기서 모든 것을 다 얻을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만날때 마다 부러운 절친 신부님이 있습니다. 탁월한 지적 능력과 외국어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국제 회의 때 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앉아있는 저와는 달리, 유창한 영어로 5분, 10분 원고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영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불어, 독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시는 예로니모 사제도 그랬습니다. 수학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그 어려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했습니다. 예로니모의 출중한 언어 능력을 잘 알고 있었던 다마소 교황님께서는 그에게 큰 사명 하나를 맡기는데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작업이었습니다. 성경 통독이나 필사 한번 하는 것도 많은 시간과 열정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단어 하나하나, 문장 한줄 한줄, 사전 찾아가며 번역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로니모 사제는 교황님 말씀에 기쁜 마음으로 순명했습니다.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한 일을 맡겨주심에 깊이 감사드리며, 행복한 얼굴로 하루 온 종일 책상 앞에 엎드려 번역작업에 헌신하고 몰입했습니다.
예로니모는 진지하고 치밀하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번역하며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성경은 곧 하느님이라는 진리였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진리를 깨달은 예로니모 사제였기에 오늘 우리에게 확신을 갖고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성경을 흠모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여러분을 감싸줄 것입니다.”
“성경을 파고드십시오. 성경 안에서 찾으십시오. 거기서 모든 것을 다 얻을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권능도 하느님의 지혜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삶에 의문이 생길 때, 예기치 않았던 고통이 난데없이 찾아올 때, 백번 천번 생각해도 도무지 납득히 가지 않는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다른 모든 것 다 제쳐두고 성경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외국에 나갈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권’입니다. 여권에는 내가 누구인지, 어느 나라의 국민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외국에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여권은 단순한 신분증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고, 그 나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표지가 됩니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하다가 여권을 잃어버리면 참 난감해집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와 비슷한 표지가 있습니다. 바로 ‘인호(印號)’입니다. 우리는 세례와 견진을 받을 때, 그리고 사제가 성품을 받을 때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인호가 새겨진다고 배웁니다.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도장은 아니지만, “너는 나의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표지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하느님의 표지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아벨을 죽이고 두려움에 떨던 가인에게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도록 표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할례도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표지였습니다. 무엇보다 탈출기의 파스카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그 피가 있는 집은 죽음의 재앙에서 보호받았습니다. 그 표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집은 나의 것이다. 이 백성은 내가 지킨다.” 하느님의 재앙이 지나간다, 하느님의 재앙이 건너간다는 의미에서 ‘파스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우리가 죽음을 넘어갈 수 있기에, 이 또한 파스카라고 이야기합니다.
신약에 와서는 이 표지가 더욱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피와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새로운 인호를 새겨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재앙에서 보호받는 백성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은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으로 파견됩니다. 여권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호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성공이나 재물이나 명예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면서도 정작 그리스도를 잘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예로니모 성인은 바로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평생 성경을 사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더욱 정확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큰 일을 하였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은 단순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여권만 가지고 있다고 그 나라를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여권에 대한민국이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저절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은 아닙니다. 견진성사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복음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인호가 새겨졌다면 이제 그 인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병든 이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연민을 알게 됩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알게 됩니다. 가난한 이를 가까이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용서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삶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을 읽었다면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한 번 더 품어보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이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을 읽었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읽었다면 걱정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인호가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라는 하느님의 약속이었다면, 신약의 인호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합니다.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 그러니 이제 너는 나를 세상에 보여주어라.”
우리에게는 세상의 여권보다 더 소중한 영적인 여권이 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받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인호입니다. 그 여권의 국적은 ‘하느님 나라’이고, 그 여권에 새겨진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그 여권을 지닌 사람의 삶의 지침은 성경입니다. 오늘 성 예로니모의 축일을 지내면서 다시 한번 성인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매일 성경을 조금이라도 가까이하고,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다.”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롯한 마음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님 따르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마음을 담기 마련이지요
어떠한 마음으로
내딛느냐에 따라
걸음걸이도 달라질 테지요
부풀린 마음으로는
끝까지 가기 어려울 겁니다
쉬 꺼져버려 멈출 수 있으니까요
갈라진 마음으로도
끝까지 가기 어려울 겁니다
여러 갈래길에서 헤맬 테니까요
오직 오롯한 마음만이
흐트러짐 없이 곧은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룰 겁니다
그곳이 어디에든
님 계신 곳에
나 또한 있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오늘의 성인
성 예로니모(Jerome)
신분 : 신부, 교회학자, 성서학자
활동연도 : 347-419년
같은이름 : 예로니무스, 제로니모, 제롬, 지롤라모, 히에로니모, 히에로니무스
달마티아(Dalmatia)의 아퀼레이아(Aquileia) 근처 스트리도니아(Stridonia)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성 히에로니무스 소프로니우스(Hieronymus Sophronius, 또는 예로니모)는 12세 때 로마(Roma)에서 당시의 저명한 문법학자인 도나투스(Aelius Donatus)의 문하생으로 수사학과 라틴어 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지식은 물론 고대 학자들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연구 업적으로 명성을 날리다가 19세 때 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트리어(Trier)에 정착하여 정부 관리로 일하였는데, 이때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는 370년경 고향인 아퀼레이아로 돌아와 발레리아누스 주교의 지도하에 같은 뜻을 갖고 있던 몇몇 친구들과 함께 복음적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373년에 예루살렘을 순례한 후 안티오키아(Antiochia)에 머물면서 라오디케아(Laodicea)의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주교로부터 성서 주석 방법과 그리스어를 공부하였으며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기도 했다.
그 후 칼치스 사막에서 375-377년까지 은수생활을 하면서 그리스어를 익히고 어느 랍비로부터 히브리어를 새로 배웠으며, 사막의 은수자인 테베(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의 "성 바오로(Paulus) 전기"를 썼다. 그런데 은수자들 사이에 아리우스(Arius) 이단 문제로 대립하자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379년 안티오키아로 갔을 때 일정한 사목직을 맡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바울리누스(Pauli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380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곳의 총대주교인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월 2일)의 강의를 듣고 오리게네스(Origenes)의 성경 주석 방법에 매료되었으며,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3월 9일) 주교와 교류를 가졌다. 이때부터 그는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들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382년에 로마로 왔는데,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는 그를 비서로 임명하고 신구약성경 모두를 라틴어로 새로이 번역하는 대업을 맡겼다. 서방 교회에서 이미 여러 개의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있었지만, 교황은 히에로니무스에게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라틴어 성경본을 만들도록 위촉한 것이다.
그 당시 그는 헬비디우스(Helvidius)의 이론을 반박하는 “헬비디우스 논박, 복되신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하여”(383년)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는 헬비디우스가 마리아는 예수 외에도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성 히에로니무스는 성녀 마르첼라(Marcella, 1월 31일)와 성녀 바울라(Paula, 1월 26일) 등이 주축인 상류층의 미망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수도생활의 이상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켰다. 그런데 그의 후원자이던 성 다마수스 1세 교황이 선종하자 그의 재능을 시기한 일부 적대자들이 여자들의 집에 들락거리는 성 히에로니무스를 의심하고 비난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안티오키아로 가서 성녀 바울라와 그녀의 둘째 딸인 성녀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9월 28일) 및 일단의 로마 그룹과 합류하여 이집트로 갔다가, 386년 여름부터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귀족 부인 성녀 바울라가 따라와서 자신의 돈으로 세 개의 남자 수도원과 한 개의 여자 수도원을 세우는 데 경제적 뒷받침을 하였다. 그리고 성녀 바울라는 여자 수도원의 원장을, 성 히에로니무스는 남자 수도원의 원장을 맡았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수도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직접 강의를 맡았다.
그 후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34년 동안 성경 번역 활동에 몰두하면서 당시 몇몇 이단적인 가르침을 반박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예를 들어 요비아누스(Jovianus)의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부인과 사제의 독신 그리고 성인들의 유해 공경 반대에 대해서 명확한 근거로 반박하였다. 그러나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장 큰 논쟁은 자신의 옛 친구이자 오리게네스의 지지자이며 성경 번역에도 공이 있던 루피누스(Rufinus)와의 사건이었다.
본래 오리게네스 신학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성 히에로니무스는 콘스탄티아의 에피파니우스와 예루살렘의 요한 사이에 벌어진 오리게네스 신학 논쟁에 휘말렸다. 이때 에피파니우스를 지지함으로써 요한을 지지했던 루피누스와 등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오리게네스주의와 반대 입장에 서게 되었다. 또한 394년부터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와 서신 연락을 하며 펠라기우스주의 이단을 몰아내는데도 힘을 보탰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장 큰 업적은 391년부터 406년까지 계속된 성경의 라틴어 번역이었다. 391년부터 신약성경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70인역"(Septuaginta)을 배척하는 유대인 랍비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새로이 번역했다.
406년까지 계속된 이 엄청난 작업으로 번역된 라틴어 성경에 '불가타'(Vulgata, 대중적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성 히에로니무스 당시가 아니라 13세기 때였다. 그 이유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성경본이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므로 로마 교회가 트렌토(Trento) 공의회에서 이를 공식적인 성경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406년부터 임종할 때까지 그는 수많은 성경 주석서를 남겼고, 그의 번역 사업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을 남겼다. 415년에 펠라기우스주의자(Pelagianos)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이듬해인 416년 펠라기우스주의자인 폭도들이 베들레헴 수도원을 불태우고 그를 해치려 하였으나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 후 성 히에로니무스는 419년 9월 30일 베들레헴의 수도원에서 72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는 아마도 라틴 교부들 가운데에서 가장 박학한 학자였고, 동 시대인들 중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신학교의 수호성인 또는 수덕생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그레고리오 (Gregory)
활동년도 : 240-326년
신분 : 주교, 증거자
지역 : 아쉬티샷(Ashtishat)
같은 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아르메니아(Armenia)의 코스로프 1세(Khosrov I)를 제거했던 아나크(Anak)의 아들이라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부친과 함께 카이사레아(Caesarea)로 피신하여 살았는데, 그는 여기서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코스로프의 아들 티리다테스(Tiridates)가 즉위하면서 개종하고, 그리스도교가 아르메니아의 국교임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아쉬티샷의 주교로 축성되면서부터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도화시켰고, 이방인 성직자를 양성하여 복음화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아르메니아의 사도요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소피아 (Sophia)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과부
지역 :
같은 이름 : 쏘피아
전설에 의하면 성녀 소피아는 동정 순교자 성녀 피데스(Fides)와 성녀 스페스(Spes) 그리고 성녀 카리타스(Caritas, 이상 8월 1일)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자신의 세 딸의 순교한 지 3일 후에 그들의 무덤에서 기도하던 중에 평화롭게 선종하였다. 지혜라는 의미를 지닌 성녀 소피아의 생애와 관련이 있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동방 지역에서 세 가지 신학적인 덕목들 즉 피데스(신덕), 스페스(망덕), 카리타스(애덕)의 원천인 신적인 지혜를 숭배하던 관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치 신학적인 덕목들을 의인화해서 우화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