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
렘 33;1-18, 32;17
일을행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의 말씀은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기 직전의 위기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있다는 것과
두 번째로 말씀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시위대 뜰에 갇혀있는
예레미야를 바라보면서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데
왜 고난과 역경이 있는가?”라는 신앙적 고민을 하게됩니다.
이 때 기억해야할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를 행하며 의의 편에 서 있다면 반드시 반대와 대적과 박해와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
의를 행하는 것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 땅에서 흘리는 의를 위한 피는 영원한 천국에서 아름다운 상급과
면류관의 재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성경은 의를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내생에서만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속에서도 큰 축복을 약속합니다. “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며, 의인은 땅을 차지하고,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의인은 돝는 볓과 같고,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고, 그 열매는 생명나무요,
악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해서 쌓아는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의를 행함으로 당하는 손해와 박해와 고통이 있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영원한 천국에서의 받을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소망하시며
미래의 삶과 후손들이 누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그 때 의를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수고와 눈물이 아니라 기쁨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1절에서
또 한 가지 발견하는 정보는 “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그에게 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감옥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2절에서 “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하는
이가 이와같이 이르시도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바로 ‘여호와 아사’ 즉,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본문 앞의렘 32장에서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사촌의 땅을 살 것과 매매증서를 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예언적인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과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한 예레미야는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를 합니다.
그의 기도에 집중적으로 ‘여호와 아사’의 ‘아사’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호와 아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만나게 됩니다.
첫째로; 여호와 아사의 하나님은 창조를 행하시는 분이시다.
렘32장 17절에서 “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라 합니다.‘
지으셨사오니’가 바로 ‘아사’ 입니다.
즉,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행하시는 분, 존재와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1장 가운데에서 보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만들다. 창조하다’는 의미로 ‘아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둘째로; 여호와 아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 내재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렘32장 20절 에서“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으로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라 합니다.
여기서 ‘행하셨고, 행하사’ 이것이 ‘아사’입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간구 속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친히 행하시고 일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실 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속에 함께 하셔서 간섭하시고, 통치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로; 여호와 아사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렘32장 18절에서 “
주는 은혜를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오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라 합니다.
여기서 ‘베푸시며’란 단어가 바로 ‘아사’입니다.
즉, 창조하시고, 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 가운데 거하며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마음껏 은혜를 베푸시고,
거역하고 죄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본심은 모든 부모의 마음처럼 심판에 있지 않고 은혜와 축복에 있습니다.
결국 심판도 은혜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가장 역설적인 웅변인 것입니다.
넷째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이 여호와 아사의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 3절에서 도전하십니다.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너’는 복수 ‘너희들’이 아닙니다.
단수입니다.
즉, 유다 모든 백성을 향하여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를 향한 도전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관심조차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예레미야를 유다의 중보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통로일 뿐 아니라 그들을 중보하는 중보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대상인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지금 교회와 성도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
네가 부르짖어야한다”라고 말입니다.
일 년에 합법적으로 30만이 넘는 영아를 살해하는 이 땅의 죄를 어깨에 짊어지고,
음란과 성적인 타락과 우상숭배와 교만과 거역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어깨에 짊어지고
이 땅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각종의 우상숭배들,
물질을 숭배하는 바알숭배와
교만과 성공을 추구하는 아세라 신상을 섬기는 교회 내의 우상숭배와
왜곡된 복음과 교만과 분열의 한국 교회의 죄를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 꿇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이렇게 부르짖을 때
1) 내가 응답할 것이다.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렘 33장 6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시고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짖어야할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이 땅의 역사속에서 당신 홀로 행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당신의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그들의 입술로 선포한 후에 행하십니다.
나라와 교회와 가정과 삶속에 새 일을 행하시는 데 있어서
우리의 기도를 통로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2)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겠다.
크고 은밀한 일’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있으나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은 일입니다.
부르짖을 때에 그 일을 보이시고, 그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렘33장 14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공의로운 가지’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진정한 구원과 안식의 역사가 있을 것이며
마침내 그 성읍 즉 그 믿는 자들의 이름을 ‘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일컬음 바 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렇게 예레미야가 부르짖고 구할 때에
하나님의 비밀한 일을 드러내시고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가 부르짖을 때에
다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관한 크고 비밀한 것을 보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의 부르짖음과 예언적인 선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길을 예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3)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라.
바라기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교회와 모든 성도가 응답하여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는 마지막 시대의
세례요한과 같은 교회와 성도가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시며,
이 시대를 향한 예언적인 중보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한 일을 풀어 놓고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들, 세례 요한과 같은 교회가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