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자비와 공정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마태오 23,23-26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노골적으로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 실제 삶에서는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면서 매우 하찮은 것까지 십일조를 내는 것에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시라’는 1미터 정도 곧추 자라는 다년초로, 유다인들은 향기가 나는 그 씨를 양념으로 썼다고 합니다. ‘소회향’은 30센티미터 정도 자라는 한해살이 풀로, 그 씨를 역시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는 데 썼습니다. 박하는 매우 흔한 것이었고, 시라와 소회향은 들에서 그냥 자라기도 하지만 경작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매우 하찮은 것까지 십일조를 내면서 더 중요한 실천 사항들은 간과하고 무시하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불행 선언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겉보기에 하느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자선, 단식, 기도를 심지어 ‘숨은 일’로 하라 하셨던(마태 6,18 참조)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의 신앙 행위가 그저 자신들의 공적을 드러내고 남에게 보여 주려는 비뚤어진 행위였을 뿐입니다.
이 복음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 각자가 일상에서 행하는 신앙생활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내 욕심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위선자인가를 식별해야만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요한 기도를 제시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박기석 신부님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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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겸손의 삶」
라틴어에서 겸손을 뜻하는 단어 Humilitas는 흙, 먼지를 뜻하는 Humus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겸손이란 말은 흙에서 난 인간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할 때, 교만과 허영심 등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겸손은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생겨난다.”라고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부족하고 나약한 나 자신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겸손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를 깨닫지 못해서 하느님과 나의 위치가 뒤바뀌었을 때 우리 안에는 교만이 자리 잡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이며 죄인임을 인식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희망을 두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내게 몇 가지 불능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1) 청각불능. 남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 집착합니다.
2) 시각불능. 남의 결점과 잘못만 눈에 들어옵니다.
3) 언어불능. 언어폭력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자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놀라는 것이 인생이다(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마태오 23,23-26)
あなたたち偽善者は、
杯や皿の外側はきれいにするが、
内側は強欲と放縦で満ちている
マタイ23・23-26)
You cleanse the outside of cup and dish,
but inside they are
full of plunder and self-indulgence.
(Mt 23:23-26)
年間第21火曜日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ノヒガ ザンガ ジョッシエ コットン カックシ ハジマン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ク アヌン タミョッカ バンゾンウロ カドッ チャ イッタ。
(마태오 23,23-26)
あなたたち偽善者は、
아나타타치 기젠샤와
杯や皿の外側はきれいにするが、
하이야 사라노 소토가와와 키레에니 스루가
内側は強欲と放縦で満ちている。
우치가와와 고오요쿠토 호오쇼오데 미치테이루
(マタイ23・23-26)
You cleanse the outside of cup and dish,
but inside they are
full of plunder and self-indulgence.
(Mt 23:23-26)
Tuesday of the Twenty-first Week in Ordinary Time
Matthew 23:23-26
Jesus said: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pay tithes of mint and dill and cummin,
and have neglected the weightier things of the law:
judgment and mercy and fidelity.
But these you should have don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
Blind guides, who strain out the gnat and swallow the camel!“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cleanse the outside of cup and dish,
but inside they are full of plunder and self-indulgence.
Blind Pharisee, cleanse first the inside of the cup,
so that the outside also may be clean.”
2026-08-25「十分の一の献げ物もないがしろにしてはならない」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1火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御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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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十分の一の献げ物もないがしろにしてはならない>
そのとき、イエスは言われた。23・23「律法学者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あなたたち偽善者は不幸だ。薄荷、いのんど、茴香の十分の一は献げるが、律法の中で最も重要な正義、慈悲、誠実はないがしろにしているからだ。これこそ行うべきことである。もとより、十分の一の献げ物もないがしろにしてはならないが。24ものの見えない案内人、あなたたちはぶよ一匹さえも漉して除くが、らくだは飲み込んでいる。
25律法学者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あなたたち偽善者は不幸だ。杯や皿の外側はきれいにするが、内側は強欲と放縦で満ちているからだ。26ものの見えな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まず、杯の内側をきれいにせよ。そうすれば、外側もきれいになる。」(マタイ23・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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パク・ギソク神父様の毎日のミサ・「今日の黙想」です。
今日の福音で、イエス様は律法学者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を、はっきりと「偽善者」と呼ばれます。それは彼らが、実際の生活では、正義、慈悲、誠実という律法の中でより重要なことをないがしろにしながら、非常にささいなものにまで十分の一を献げることにこだわっていたからです。
「いのんど」は一メートルほどの高さにまっすぐ伸びる多年草で、ユダヤ人は香りのよいその種を香辛料として使っていたそうです。「茴香」は三十センチほどに育つ一年草で、その種も料理の味と香りを引き立てるために使われました。薄荷はごくありふれたものであり、いのんどと茴香は野に自生することもあれば、栽培されることもありました。このような非常にささいなものにまで十分の一を献げながら、より重要な実践を見過ごし、ないがしろにしていたのですから、律法学者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に対するイエス様の不幸の宣告は、当然で正しいものでした。
そのとおりです。律法学者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表向きには神様のために生きているように見えましたが、実際には自分自身のために生きていました。律法の教えを日々の生活の中で実践する施し、断食、祈りさえも「人に気づかれないように」行いなさいと教えられたイエス様の目には(マタイ6・18参照)、彼らの信仰の行いは、自分たちの功績を誇示し、人に見せるためのゆがんだ行いにすぎませんでした。
この福音のみことばを通して、私たちは今、それぞれが日々行っている信仰生活を振り返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果たして私は、神様のみ旨を実践する信仰者として生きているのか、それとも自分の欲望を神様のみ旨であるかのように正当化して生きる偽善者なのかを、識別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今日の朗読でパウロ使徒は、私たちが日々の生活の中で神様のみ旨に心を向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大切な祈りを示しています。
「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御自身、ならびに、わたしたちを愛して、永遠の慰めと確かな希望とを恵みによって与えてくださる、わたしたちの父である神が、どうか、あなたがたの心を励まし、また強め、いつも善い働きをし、善い言葉を語る者としてくださる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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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の福音を読み、自分の信仰の外側ではなく、心の内側を誠実に見つめ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正義と慈悲と誠実を日々実践できる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