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맛'을 읽고는 그 다음 책을 읽기로 했다. 아프긴 했지만 가는 날 전화 한 통 해 줄 생각을
못 했던 아쉬움이 자꾸 살아나곤 한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어느새 그리워 책을 더듬어본다.
은평구 응암동에 자리잡은 헌 책방
응암동 구석구석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 위치가 어디쯤인지 글에선 찾을 수가 없다.
읽은 책만 파는 곳
수험서, 문제집, 처세술.... 이런 책들은 팔지 않는 곳
책방은 문화 공간이기에 각종 문화 행사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곳
삼십 대 젊은이답게 차가운 눈으로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고, 참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만남의 장을 갖기도 하는 곳.
차를 마시기도 하는가 보던데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차마시는 이야기는 못 보았다.
독특한 공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지 못 해 외로운 적이 있다.
생각이 닮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적도 있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붙이고 또 붙인다.
어찌 이리도 생각이 같을꼬. 신기하기도 하고 힘도 솟는다.
큰 아이와 나이가 같던데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내 이야기를 대신 해 준 젊은이가 있어 신기하다.
미처 생각지 못 했던 것들을 콕콕 찍기도 한다. 공감이라기 보다는, 수긍이라기 보다는 삶의 두께에 비해 두텁기 그지없는
삶에 철학에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gentle madness
종로서적을 그리워하는 독서광 하나가 소개한 책에 몇 개의 포스트잇을 더 붙여둔다.
책의 가치를 모르고 그저 모든 책을 종이뭉치처럼 본다면 책을 소유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책은 숨 쉬는 생명이고 하나하나가 모두 귀하다. 책은 사람 아래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책과 그 안에 들어앉은 글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람 위에 있다가 죽어서도 땅에 묻히지 않고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귀천한다. 하늘 위에는 아마도 거대한 바벨 도서관이 있어서 무지한 인간들, 시건방진 사람들을 향해서 매일 조소를 보내고 있을 거다. - 53쪽 -
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주인 혼자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가치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그 가치는 책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동네 한 구석에서 연기처럼 피어나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 고향 동네에서는 밥 먹을 때가 되면 온 동네에 밥 냄새가 난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동네 골목 곳곳에 들어선 작고 소박한 책방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바로 구수한 밥 냄새가 되어 사람들을 배부르게 만들고 배고픈 사람에게 원없이 뜨끈한 밥을 퍼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작은 책방이, 그 책방을 들고 나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281쪽 -
그의 운영방침이 어떠하든, 철학이 어떠하든 건강한 생각을 실천하며 사는 젊은이가 이 피폐한 도시 어느 한 귀퉁이를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기억에 남아 있다면 응암동 쪽으로 발길이 닿는 날, 들러보아야겠다. 그 책방이 운영한다는 '순환도서'에 내 놓을 책은 없다. 난 내가 가진 책들이 내 재산이기에 누구에게 빌려주기도 싫은 사람이니까. 그의 이론대로라면 나는 책의 생명력 한 자락을 옭아매어 두고 숨통을 조여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첫댓글 에이, 보긴 했지만 안 읽을 것 같아 안 사려고 했는데 도요새님이 또 헷갈리게 만드시네요. 나도 그 젊은이에게 박수는 보냅니다.
글쎄요, 취향이 다 다르겠죠? 생각이 같은 사람의 글을 보다보니 뭔가 내 안의 것이 정돈되고 힘이 주어졌어요. 의외로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정가네님은 더 묵직한 글을 읽으시옵소서. ^^*
엥. 난 책 버려야 하는뎅....ㅠ.ㅠ 둘 곳이 없어요.
저두 책에 치여 숨을 못쉴것 같아요., 그저께도 좀 뽑아 버리려고 고르다가 도로 다 쑤셔 넣었으니... 이사가긴 글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