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22,30; 23,6-11; 요한 17,20-26
+ 오소서, 성령님
어제 성모의 밤 끝나고 성모님 바로 들어가시라고 하기가 뭐해서 아직 앞에 모시고 있는데 괜찮으시죠? 어제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최고 의회에 소환되는데요, 이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재판하여 죽이기로 결의하고 빌라도에게 넘겼던 바로 그곳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하여 대사제에게 서한을 청하여 다마스쿠스로 향했던 바오로(사도 9,1-2)는 이제, 그 자신이 예루살렘에 와서 체포되어 예수님을 재판했던 최고 의회 앞에 섰습니다.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를 없애버리려 했던 사람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본받는 사람으로 변모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의원들 가운데 사두가이와 바리사이가 섞여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둘로 갈라져 싸웁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고, 바리사이들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라는 말씀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법정에 넘길 때, 너희에게 일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마르 13,11)라는 말씀을 바오로 사도는 그대로 실천했는데요,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위기를 모면하거나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그러나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선포하였습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에게 이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주장으로 바리사이들과 대면하기 위해 부활에 대한 공통된 믿음에 호소한 것입니다. (L.T. Johnson, 401) 즉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바오로 사도는 선교하고 있고,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령께서 바오로 사도 안에서 하고 계신 일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가 주님의 기도와 비슷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어떤 학자는 요한복음 17장의 기도가 영원의 관점(sub specie aeternitatis)에서 쓰였다고 말하며(Lagrange, 437)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Brown, 2:747)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도 이 기도를 바치고 계셨을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첫째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모두 도망가리라고 예고하셨지만, 그들이 돌아와 당신에 대한 복음을 전하리라는 것을 믿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말을 듣고 당신을 믿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시는데, 그 일치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저 사람과 나의 의견이 일시적으로 같다고 해서 일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함께 흉을 볼 때, 그 사람과 나의 일치가 이루어진 것 같지만, 그는 다른 곳에서는 내 흉을 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의로움을 향한 일치가 아니라, 이로움을 향한 일치는 언제든 분열되고야 맙니다. 대표적인 예가 제1독서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입니다.
참된 일치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삼위일체의 일치를 본받는 것이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낮에 솔로몬 대학에서 한밭 수목원을 다녀오셨습니다. 수목원에 많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쁘다고 감탄하는 것은 ‘어쩜 저렇게 꽃 색깔이 다 똑같을까?’가 아니라, ‘어쩜 저렇게 형형색색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입니다. 똑같은 색깔이 일치가 아니라, 다양함 가운데 조화가 일치입니다.
일치는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끼리 하나되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아버지,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치는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그리고 돌아가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버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엘 그레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1580년
출처: Christ Carrying the Cross (El Greco, New York)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