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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저는 서울 광림교회에서 열린 감리교 총회에 참석했었습니다. 등록을 하니까 총회에서 가방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 가방속에는 총회자료와 함께 감리교회 교리와 장정이 들어있었는데 처음에는 왜 교리와 장정이라는 책을 주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회의를 하는데 보니까 앞에 나와서 말하는 분들이 대부분 교리와 정정을 근거로 자신들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장정 제 몇조 몇항 몇단에 보면...” 그 때 비로소 교리와 장정책을 넣어준 이유를 알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리와 장정이라는 것은 바로 감리교회의 헌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리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는 교리와 장정이라는 헌법을 기준으로 하여 형성된 것입니다.
한 단체의 비전도 중요하고 사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단체의 기준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한 단체가 구성되어 질 때 반드시 하는 작업중의 하나가 바로 정관을 만드는 일입니다. 정관이 바로 그 단체의 기준이요 규칙입니다. 그 단체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이 정관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나라와 국민과의 관계를 정한 것도 헌법이지요. 만약 헌법에 군주국이라고 되어 있다면 그 나라의 주인은 군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헌법은 우리 나라가 자유 민주국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에도 이런 헌법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기준을 밝혀주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를 명시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타난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 하나님의 백성들이란 이렇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라고 십계명, 혹은 율법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 십계명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드디어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로 시작된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출 19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설명합니다.
20-23장은 이스라엘이 언약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명시하는 율법이 선포됩니다. 그 중에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24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 언약을 맺는 언약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가 율법에 담겨있고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받은 율법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율례(법들)입니다. 계명을 일종의 헌법이라고 한다면 율례는 그 헌법을 시행하는 일종의 시행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기록한 것입니다 두 돌판에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직접 기록했습니다. 십계명을 영어로는 ‘데칼로그’라고 하는데 이 말은 ‘데카’라는 말과 ‘로고스’ 라는 말의 합성어 입니다. 데카는 열(10)이라는 뜻이고 로고스는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데카로그’는 열개의 말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율례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할 법들(시민법)입니다. 민법, 형법, 상해법 약자보호법 등등 사회정의를 세우는 데 필요한 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법으로 일종의 종교 의식법입니다.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절기는 무엇이 있고 어떻게 지키는가? 등등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출애굽기 20-23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십계명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왜 하나님은 열가지 계명과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을까요? 어떤 신학교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계명이 열개 밖에 없을까요?’ 그러자 한 학생이 이렇게 정답을 대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사람이 만들었다면 10가지가 아니라 수십가지가 되겠지요.’
어떤 책에 보니까 한 신학자가 십계명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관찰을 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은 세 숫자에 기초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 둘, 그리고 열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가시적인 신체구조와 같습니다. 사람의 몸도 하나 둘, 열입니다. 몸, 얼굴은 하나, 눈, 귀는 두 개지요, 손과 발도 두개입니다. 또 사람의 손가락 발가락은 열개입니다. 하나 아니면 둘, 그리고 열이라는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분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들을 두 돌판에 새겨서 주신 것입니다. 계명의 내용도 크게 둘입니다.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이지요, 한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지켜야할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이웃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를 자세히 나누어 보면 열개의 계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입니다. 원래 열이라는 숫자는 만수입니다. 충분한 숫자이지요. 사람 몸에 열개의 손가락 발가락으로 충분한 것처럼 더 이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 둘, 열이라는 숫자와 연결되게 계명을 만드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십계명이 인간의 삶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열가지 계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계명을 잃어버리면 정체성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사는 기준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계명을 기억하고 계명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사는 길입니다.
십계명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것을 보면서 한번 같이 살펴보십시다.
첫 번째 계명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다른 신들과 비교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직 한분이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다원주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도 말며 섬기지도 말라’ 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어떤 형상인 우상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돌을 다듬어서 만들었다 하더라고 그것은 나무요 돌이지 하나님은 아닙니다.
세 번째 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호소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계명은 단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요즘 영어에는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이 ‘제기랄’과 같은 욕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찾는 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이 날을 지켜야 합니다. 요즘 신약시대에는 안식일 대신 주일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날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다섯째 계명에서 열 번째 계명까지는 사람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계명이지요.
다섯 번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야할 마땅한 일 가운데 하나님은 제일먼저 육신의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특별히 이렇게 할 경우에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기독교는 효를 모르는 종교가 아닙니다. 가정의 중요성과 효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사실은 성경입니다. 불교는 가정에 대해 말하지 못합니다. 유교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사실 효를 제일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성경은 ‘부모 공경’에 대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섯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일곱 번째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
여덟 번째 계명은 ‘도덕질 하지 말라’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라’ 그리고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 집을 탐내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흥미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지킬 다섯 번째 계명에서 열 번째 계명까지를 자세히 보면 중간에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라 라는 규정은 사람의 행동에 대한 것이지만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과 마지막 열 번째 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라는 것은 행위라기 보다는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음에 품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은 책임을 묻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가 정말 공경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 ‘네가 정말 네 속에서 일어나는 탐심을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외적인 행동 이전에 우리 안에 있는 타락한 본성을 끄집어 내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하나님앞에서 이 율법을 통해 완전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십계명은 그 자체로서는 하나의 숙제입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내면으로부터 부모를 향한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인간속에 있는 탐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겐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이것을 잘 지켜서 구원을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과 율법은 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이 땅을 살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의로워지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입니다. 주님의 보혈이 우리들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십계명의 특징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 십계명은 어떤 특징들이 있습니까? 첫 번째로 우리는 제일 먼저 십계명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기 위해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 계명, 규칙이라면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저도 규칙, 법규라는 말이 싫습니다. 저는 혹시 택시를 탈 때 가능하면 앞자리에 안앉습니다. 왜냐하면 안전벨트를 하기 싫어서입니다. 그냥하라 그러면 할 텐데 법이요, 벌금을 내야되요 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거부반응이 생깁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많은 남자들은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녀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을 갖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예수 믿으면 그다음부터는 자유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술도 못마시고, 담배도 끊어야 되고, 주일에는 놀러도 못하고... 대부분 ‘무엇도 못하고 무엇도 못하고...’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이 너무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 것이 자유도 빼앗기고 인생의 재미도 잃어버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제일 좋은 것, 인생의 가장 귀한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진정한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떤 법이나 규칙으로 묶어두거나 또는 형벌이나 저주로 위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계명의 의도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기 위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두 번째 계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면 삼 사대까지 벌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6절)고 하셨습니다. 멸망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를 베풀고 복을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신4:40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그렇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입니다. 아빠가 사랑하는 딸에게 “밤늦게 다니지 마라 10시까지는 꼭들어와야 돼!”라고 말할 때 이것은 딸을 행동을 제약해서 딸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저는 집사람과 데이트 할 때도 밤늦게 다니지 못했습니다. 장인 어른이 집사람에게 항상 한 말이 “밤 9시가 지나면 남자들은 늑대가 된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밤 9시가 되면 집사람은 빨리 집에 들어가야 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우리 자신을 붙들어매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사람들의 말, 역술인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말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유언비어가 난무합니다. 자기를 속이는 말인지 자기에게 유익된 말인지 혼동하기 쉽습니다. 사기꾼들은 기준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삼들을 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길을 비추는 빛이요 우리 발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시119:105)
하나님의 백성과 율법
십계명의 두 번째 특징은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십계명은 언약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출20-23장을 율법서, 혹은 언약서, 언약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1-2)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먼저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내가 누구냐?” ‘나는 네가 애굽 땅 종살이에서 너를 해방시킨 여호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율법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 즉 언약의 표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이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킴으로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해 나갔습니다. 언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리를 잃어버렸습니까? 바로 계명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할 때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언약이 파기되었다, 더 이상 시내산의 언약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준비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딸을 낳고는 로루하마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고는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었습니다.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말이지요.
같은 시대에 예언한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계명과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렸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 이 시대의 진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이 기갈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은 계명을 안지켜도 상관없습니다. 물론 지옥을 가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했는가,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이 나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주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희미해진 때였습니다.
사사시대가 왜 혼란스러웠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기 소견대로 행했습니다. 그러다가 다 방황했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말씀을 잃어버리면 그 때부터 문제가 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의 언제든지 놀라운 부흥과 축복을 주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이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부흥에 관한 글을 많이 썼던 레오날드 레이븐 힐이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교회의 부흥이 왜 지체되는가?”라는 책에서 그 분은 “교회의 부흥이 지체되는 이유는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숨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교회가 분열되고 영적인 능력을 잃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보다 자기들의 소견,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모이고 자기 주장을 앞세우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여러 교회를 분석했던 어떤 교회성장학자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회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성장한 교회, 또 음부의 권세를 깨는 능력을 소유한 교회들을 조사 분석했더니, 성도가 많았기 때문도 아니었고, 멋있고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을 가졌기 때문에 성장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능력있게 사역하는 교회들을 보면 주일 아침예배와 주일 저녁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숫자에 편차가 거의 없는 교회였다고 분석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저는 그 조사결과에 동의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계명, 십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방법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순종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말할 때 ‘말세가 되면 불법이 성행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두 단어가 불법이라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사람들이 불법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하게 되면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 우상숭배에 빠질 수 없어요.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살인이나 간음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쉬워집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지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짐이 됩니다. 막 결혼한 신부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 상을 차리는 것은 짐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그러나 자식 새끼 낳고 삶에 지치고 사랑이 식어가기 시작하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밥하는 것이 짐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 남편들은 눈치를 잘 봐야 합니다. 괜히 아침 해달라고 했다가는 쫓겨날 수 있습니다. 아침밥 달라고 하기 전에 사랑부터 확인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14:2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또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5:2-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맞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진짜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더 이상 방황하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축복으로 알았습니다. 그 계명과 율법이 삶의 등불이요, 빛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따라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누가 복있는 사람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붙들어매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