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세상에 사는 매 순간이 바로 증언할 기회입니다.
나는 이사를 참으로 많이도 다녔습니다. 이사 갈 집을 찾으면서 집안에 가득한 책이며 모든 짐들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새로 생겨납니다. 아내는 이사를 여러 번 다녀서 지긋지긋한 모양입니다. 아주 시원찮은 남편을 두어서 고생을 하는 아내를 보는 일도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버리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픕니다. 정작으로 버려야 할 것은 버리지 못하고 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버리고 삽니다. 지금껏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버리려니 마음이 허전해서 다시 끌어다가 놓습니다. 소중한 추억이 묻어 있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사는 듯해서 항상 끌고 다니던 것들이 지금은 모두 쓸모없는 것으로 변해버렸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온지가 며칠 전 같은데 어느덧 11년이 되었는데 세상사는 시간도 참으로 긴 것 같지만 순간이고 우리가 사는 집도 잠시 머무는 여관과 같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사실 모두 잠시 빌려 쓰는 것인데 그 재산을 가지려고 그렇게 아등바등한 내가 참 바보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천지자만물지역려'(天地者萬物之逆旅)란 말이 이제는 아주 친숙해집니다. <대자연은 모든 것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무는 여관과 같은 곳>이라는 뜻이지요.
어느 사람이 부자 집에 가서 하루 밤을 묵게 해달라고 사정하였습니다. 부자는 아래 동네를 가르치며 “저 아래 여관에 가서 묵으시오. 우리는 여관이 아니오.”하고 냉정하게 잘라 거절하였답니다. 그러니까 그 행인이 부자에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여기서 몇 대나 살고 있소?” 부자는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서 지금껏 10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행인이 “그러면 그 분들이 여기서 지금도 다 살아계시오?” 하고 묻자 “모두 돌아가셨지요. 별 이상한 사람도 다 보겠네”하면서 문을 닫으려고 할 때, 행인이 조용히 “그것 보시오. 당신의 10대조 조상부터 모든 분들이 이 집에서 여관처럼 묵었다 갔는데 이 집이 어찌 여관이 아니라고 하시오.” 그래서 부자는 할 말을 잃고 그 사람을 그 집에서 묵어가게 하였답니다.
사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세상에 왜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으며 또 욕심을 부리고, 사람을 모함하고, 심지어는 죽이고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교회에서도 말들이 많고, 각자가 가장 똑똑하다고 내세우는가 하면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들 나름대로 어떤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지만 왜 그렇게 복잡한 인생인지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리스도교회도 서로 갈라져서 각자가 옳다고 대놓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독하고 있으면서 서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부끄럽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난받고 미움 받는 것이 아니라 친척들과 친구들끼리 한 형제들끼리 서로 고발하고 헐뜯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이 일치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교회에는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불교 신자들이 축구경기를 했답니다. 예수님이 관전을 오셨는데 예수님은 아주 멕시코 사람들 모자 같은 큰 모자를 쓰시고 축구장에 오셔서 응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침 그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공을 차서 불교신자들의 골대에 멋지게 골인을 하였답니다. 예수님은 모자를 벗어 던지시며 “잘한다. 잘해!” 하고 신나 하시더랍니다. 불교신자들이 입을 삐죽이며 예수님을 쳐다보는데 이번에는 불교 신자가 공을 잡고 쏜살같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골대 쪽으로 몰고 가니까 예수님이 “잘한다, 잘해”그러면서 공을 같이 쫓아가면서 응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멋지게 골인을 시키니까 다시 모자를 던지시며 기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꼴 비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물었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 편이시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머리를 긁으시며 “둘 다 모두 내편이랍니다.”
오늘 주님께서 증언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매 순간이 바로 증언할 기회가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박해를 받을 때, 이사 짐을 싸면서 자신을 정리할 때, 과거에 묻혀서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할 때, 우리의 감정이 격해져서 친구도 잃어버리고 서로 싸우며 헐뜯을 때, 세상만사 순간이 정말 눈 깜박일 순간이라는 것을 느낄 때, 종교가 서로 다르다고 편을 가를 때,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함부로 부를 때, 낙엽이 떨어지고 바람에 흩날릴 때, 이렇게 예수님은 증언할 기회가 많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증언할 것인지 언변과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이 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인내하면서 주님을 증언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죽기까지 인내하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