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太宗] 이방원
양력 : 1367년 6월 21일
음력 : 1367년 5월 16일
시 일 월 년
甲 辛 丙 丁
午 卯 午 未
75 65 55 45 35 25 15 5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기토당령, 오미공망, 56세 1422년 임인년 음 5월 10일 사망.
(생년월일은 태종실록 총서에서 발췌한 것이고 출생시는 도무사가 추정한 것임)
(태종실록 총서 -- 원(元)나라 지정(至正) 27년,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6년 정미 5월 16일 신묘에 함흥부(咸興府) 귀주(歸州) 사제(私第)에서 탄생하였다.)
태종[太宗]
1367 (공민왕 16) ~ 1422 (세종 4).
조선의 제3대 왕(1401~18 재위).
헌릉, 사적 제194호, 조선의 제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 아버지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이며,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비는 원경왕후(元敬王后)로 민제(閔齊)의 딸이다.
태조의 아들들이 대개 무인으로 성장했지만 이방원은 무예나 격구보다는 학문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1382년(16세, 임술년 우왕 8년) 명(明)나라 홍무(洪武) 15년 임술년에 고려(高麗) 진사시(進士試)에 오름. 민제의 딸(후일 원경왕후, 1365-1420) 과 결혼함. 이방원이 부인(당시 18세)보다 2살 아래였음.
1383년(17세, 계해년 우왕 9년) 문과에 병과(丙科) 제칠인(第七人)으로 급제에 합격.
1388년(22세, 정묘년, 창왕 즉위년) 정사 이색(李穡)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부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여 정권의 실력자가 됨.
1391년(25세, 경오년, 공양왕 3년) 공양왕(恭讓王)이 밀직사 대언(密直司代言) 벼슬에 승진시키어 항상 근밀(近密)한 자리에 두었다.
1392년(26세, 신미년, 공양왕 4년) 3월 이성계의 낙마사건을 계기로 정몽주(鄭夢周)를 중심으로 한 고려의 중신들은 이성계파의 인물들을 유배시키고, 그간의 개혁법령을 폐지하는 등 반격을 시도했다. 이때 이방원은 수하를 동원하여 정몽주를 살해함으로써 대세를 만회했으며 7월 공양왕을 폐하고 부친 이성계가 왕으로 추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모친 한씨 사망,
1394년(28세, 계유년) -- 장남 양녕대군(1394-1462) 출생.
1396년(30세, 을해년) -- 차남 효녕대군(1396-1486) 출생.
1397년(31세, 정축년) -- 삼남 충녕대군(1397-1450) 출생 (후일 세종대왕)
1398년(32세, 무인년) 그러나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일파의 견제로 조선 건국 후 개국공신에도 들지 못했다. 정도전과 조준은 신진 사류 중에서도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인물로 이들의 정책은 이전의 권문세가나 이색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불만을 야기했다. 이러한 때에 계모 강비(康妃) 소생의 어린 방석(芳碩)이 세자로 책봉되고, 자신의 세력기반인 사병마저 혁파될 상황에 처하자 태조의 와병을 계기로 이방원 등이 정변을 일으켜 정도전·남은 일파를 제거하고 곧이어 방석·방번(芳蕃)마저 살해했다. 결국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음. 이후 이성계는 함흥으로 낙향하여 한양으로 모시러 오는 이방원의 차사들을 살해하여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남.
1400년(34세, 경진년, 정종 2) 동복형제인 방간(芳幹)이 주동이 된 제2차 왕자의 난 을 진압하고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1월에 정종이 양위의 형식으로 물러나자 왕위에 올랐다
1402년(36세, 임오년, 태종 2년) 부친 이성계 무학(無學)의 설득으로 함흥에서 한양으로 올라옴.
1407년(41세, 정해년, 태종 7년) 장인 민제(중전 민씨의 부친)의 가문이 외척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양녕대군을 지지하고 그 주위에 수구파가 결집하자 장인과 처남(민수구와 민무질)들을 과감하게 처형했음.
1408년(42세, 무자년, 태종 8년) 부친 태조 이성계 사망함.
1416년(50세, 병신년, 태종 16년) 장인 민제의 3남과 4남을 처형함.
1418년(52세, 무술년, 태종 18년) 6월 왕세자 제(
-양녕대군)를 폐하고 3남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8월10일에 양위함. 그러나 선위한 후에도 군정과 중요한 정사는 직접 처리하면서 세종의 치세를 위한 토대를 닦았다.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對馬島]원정을 단행했다. 세종에게 양위한 후에 세종의 장인 심온(沈溫)을 병권남용의 죄를 들어 전격적으로 처형(1418년 사건)했다.
1419년(53세, 기해년, 태종 19년) 형님이고 이씨조선 2대 왕인 정종 이방과 사망.
1420년(54세, 경자년, 태종 20년) 부인 원경왕후 사망.
1422년(56세, 임인년, 태종 22년) 음력 5월 10일 사망함.
태종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예리한 인물이었다. 정사를 의논할 때 대신들이 형식적인 답변을 하거나 다른 뜻을 품은 우회적인 발언을 하면 바로 정곡을 찔러 무안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탁월한 것은 정치력과 결단력이었다.
그는 여러 정치세력과 신하들의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활용했다. 문제를 판단하는 데는 명분이나 인연, 과거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있었다.
태조의 배향공신을 책정할 때 그때까지 역적으로 규정되어 있던 정도전과 남은을 선발하게 했으며 자신에게 항거한 죄로 유배시켰던 황희(黃喜)를 세종에게 추천하여 중용하게 했다.
또한 장인 민제의 가문이 외척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양녕대군을 지지하고 그 주위에 수구파가 결집하자 장인과 처남들을 과감하게 제거했으며 세종에게 양위한 후에도 세종의 장인 심온(沈溫)을 병권남용의 죄를 들어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1418년 왕세자 제(
)를 폐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2개월 후 선위했다.
그러나 선위한 후에도 군정과 중요한 정사는 직접 처리하면서 세종의 치세를 위한 토대를 닦았다. 세종대의 흥륭도 실은 태종의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시호는 공정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며, 묘호는 태종이다.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獻陵)이다.
첫댓글 토사구팽의 대표적 인물.... 왕위를 찬탈하는데 도움을 많이 준 처가, 사둔 등등을 처형하고... 정변에 공이 많은 장수들을 은퇴 낙향시키고...등등... 지독한 사람....
사주가 종살격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