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각자 살기 바빠 SNS를 통해 근황 정도만 얼핏 아는 지인께 구매한 나의 두 번째 카메라를 5년째 잘 쓰고 있다. 사실 작년부터 눈에 들어온 풀프레임 미러리스 모델이 있어 얼마 전 지급된 프리랜서 지원금으로 구매해 세 번째 카메라로 삼아볼까 했으나, 더 끌리는 신상이 나와 조만간 책정될 가격을 보고 구매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새 카메라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 이래로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세 번째 카메라가 생기면 지금의 카메라로 기록한 걸 종종 활용하게 될지에 대한 것이며, 보정이 자유로운 RAW 파일로 담았으니 첫 카메라 때와 달리 그 연은 계속 이어질 듯싶다. 한편 나의 첫 카메라는 기자단으로 연 대학생 대외활동을 해내기 위해, 음료수 공장 야간 아르바이트를 일주일하고 얻은 수익으로 마련했다. 3년 조금 넘게 썼던 첫 카메라는 두 번째 카메라 도입 이후 가끔 먼지 수북하게 쌓인 걸 물티슈로 닦을 때만 손에 닿는다. 그 카메라로 담긴 내 23~26살 10월의 기록은 역시 첫 외장하드에 담겨 있고, 가끔 여행기에 옛 사진이 필요할 때 살펴보지만 역시 쓸만한 게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된다. 이때 쓸만하지 않다는 표현의 근거는 크게 초점이 맞지 않아 흔들림이 심하더나, 구도의 불안정함에 있다. 오늘의 여행기는 모처럼 기차여행자 감각을 발휘해 언제 어디서 마주치던 그저 아름다운 간이역에 대해 경북 군위 화본역으로 다루게 되었다. 청량리역~경주역 간 중앙선 373.8km 중 299.3km 지점인 군위 화본역은 첫 번째 카메라로만 두 번 보고 담고, 지금의 두 번째 카메라론 꼭 5년 만에 처음 마주했다.
오전 8시쯤 집을 나서 괴산, 문경, 상주, 구미 거쳐 3시간쯤 지나 군위에 진입했다. 우선 우보역과 영화 리플포레스트 촬영지를 첫 목적지로 삼아 둘러보고 군위 화본역에 닿으니 오전 11시 반이었다. 혹여 1시간 정도 머물며 화본역에 정착하는 무궁화호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시간표를 살펴보니, 오후 12시 7분에 정차하는 청량리발 부전행 무궁화호가 있어 천 원짜리 승강장 입장권을 구매했다. 본래 역 구내 승강장은 열차 이용객들을 위한 공간이라 그 외 목적으로 찾는 이들은 역무실에서 입장권을 발급받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군위 화본역, 강릉 정동진역처럼 관광명소화된 기차역이 아닌 이상 그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나 역시 기차여행을 몇 년째 다니고 있지만 승강장 입장권을 발급받은 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 때문일까? 승차권 아닌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한 역무원님 호출부터 그 느낌은 굉장히 신선했다. 그 와중엔 이번을 계기로 전국 기차역의 입장권을 모아보는 재미도 나름 탁월할 것 같은 생각도 뒤따랐다. 하지만 보통은 개성 없는 종이 승차권 양식이란 사실을 검색으로 곧 접하며 그 생각 역시 알아서 접게 되었다.
입장권 발급 후 승강장으로 향하며 코레일톡 어플을 켰다. 내가 화본역에서 맞이할 중앙선 무궁화호의 운행 상황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는데, 15분 정도 지연 운행 중인 걸 확인하고 한결 더 여유롭게 군위 화본역 구내를 살펴봤다. 모든 게 5년 전과 크게 바뀌지 않아 새로운 변화의 포인트를 찾는 재미는 전혀 없었지만, 역 앞 광장에서 신명난 국악이 울려 퍼졌던 5년 전을 되새기며 그동안 세월을 한층 더 머금은 급수탑부터 마주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2시 25분쯤 군위 화본역으로 진입한 무궁화호를 맞이했다. 정시운행의 목표와 다르게 20분 가깝게 지연된 무궁화호의 급박함은 1분의 정차 시간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유난히 빨리 끝칸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걸 보며 회복운전에 최선을 다했을 기관사님의 노고가 엿보였다. 내가 타거나 마주치려는 기차가 아니면 운행 상황을 살피지 않는지라 끝까지 확인 못했지만, 부산 부전역에 종착하며 과연 몇 분이나 지연 운행되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참고로 청량리~부전 간 무궁화호는 중앙선, 동해남부선을 두루 거치며 8시간 가까이 운행하는 근성열차다. 6시간 40분 걸리는 부전~목포 간 무궁화호, 7시간 17분 걸리는 부산~동해 간 무궁화호도 체력이 허락될 때 전 구간을 꼭 경험해보고 싶다.
화본역 정면 기준 좌측엔 옛 유선형 새마을호 객차가 활용된 열차카페가 있다. 코로나19로 출입문이 굳게 닫힌 듯싶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으나, 기관차 부분이 진짜 PP인 줄 알던 5년 전과 달리 따로 제작된 조형물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채며 시선의 성숙을 체감했다. 그러고 보니 장항선을 끝으로 유선형 새마을호가 종운한 것도 벌써 2년 전 추억이 되었다. 사실 나는 새마을호와 얽힌 추억이 없어, 당시 종운 소식 역시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끔 마주칠 때면 왠지 모르게 애틋해진다.
기다렸던 무궁화호와의 짧은 만남 이후 군위 산성면의 중심인 화본마을을 횡단하는 것으로 5년 만의 재회를 장식했다. 횡단 구간은 회화나무부터 옛 산성중학교(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이 부분 역시 그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어 나만 세월을 견디지 못한 듯한 서글픔이 내 주변을 가득 맴돌았다. 조금 서글펐으나 나이는 나만 먹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기에 억울하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젊었던 어느 날을 앞으로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이곳만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대구 근교 나들이로 군위 화본역과 그 일대를 택하게 된다면 변함 없이 그때 그 모습으로 내 추억 자극 받는 재미 하나는 확실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옛 산성중학교에 꾸려진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의 명칭은 조만간 <할머니 할아버지 어렸을 적에>로 바꾸거나 신세대 부모님들의 추억이 반영되어야 꾸준히 사랑 받는 군위 가볼만한곳으로 거듭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