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p를 보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차는 단순한 실용성의 의미 뿐이었다.
자동차 광고는 나오면 바로 돌려 버렸다.
그런데 jeep 는 달랐다.
그 매력적인 모습이란, 산과 강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은 나를 흠뻑 뻐져들게 했다.
첫눈에 반해 버렸다.
다음 날 바로 jeep를 샀다.
국방색 랭글러 모델이었다. 드라이브는 전혀 하지 않던 내가 매일 아내를 태우고 돌아다녔다.
국방색 jeep는 친구가 되었다.
소비에는 전혀 관심도 없어, 아내가 사주지 않으면 옷도 살 줄 몰랐다.
여행도 젊을 때 너무 돌아다녀서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jeep를 타고 나서는 근거리 여행을 자주 했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가는 듯한 착각이었다.
맑스의 物神崇拜(fetishism) 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줄 알았다.
구두쇠는 아니지만, 전혀 소비를 하지 않던 내가, jeep 라니.
혹시, 물신숭배는 아니지만, 내 안의 마초가 jeep를 탐했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틀림없었다. 보수적이고 유복한 가정의 맏아들로 자라나서 주방에는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것 이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 유전자 어딘가에 숨어 있던 마초, 남근우월주의자인가. 아니면 유교적 남성중심주의자였던가.
나는 군대와 경찰 검찰 등 권력 기관을 너무나 싫어하는데, 그렇게 부정하면서 살아온 나의 어딘가에 마초가 숨어 있었던 것인가.
아내가 죽기 전까지, 나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jeep 는 나의 새로운 삶을 주었다.
아내도 그런 우리의 삶을 만족해 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내가 죽고, 너무나 많은 술을 마셔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jeep는 주인 잃은 것처럼 아파트 주차장에 서 있기만 했다.
jeep를 보면 아내가 생각났다. 집을 나서면서 jeep 가 보이면 애써 외면했다.
jeep 는 더 이상 나의 연인이 아니었다.
더 이상 jeep를 세워두기만 해서는 차가 엉망이 될 것 같아 팔아버렸다.
jeep를 팔고 또 다른 삶이 보였다.
차가 없는 생활은 다른 것들이 보였다.
거리를 걸으면서 섬세하게 모든 것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바람의 소리와 별의 반짝임도 보였고,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거리의 표정을 보았다.
jeep 와는 다른 의미의 삶이었다.
jeep는 잠시 스처갔던 불륜이었다.
첫댓글 지프와의 시절인연
멋지게 잘 보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