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반스의 ‘선인장과 슬리퍼’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인근에서 일어나는 경매를 이용해서 가재도구를 갖추었다. 그렇게 장만한 것들 중에는 어린이들이 노는 나무 위의 집만큼이나 큰 옛날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이 옷장 스타일 텔레비전의 쌍여닫이문을 닦으려면 공택제가 반 깡통이나 들었다. 이 거대한 기계 위에는 가족공용성경책이 놓여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경매에서 건진 것이었다. 언젠가 난 우리 집은 아무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데 왜 그걸 그렇게 전시해두는 거냐고 어머니에게 들은 물은 적이 있다. 그리고 어머니 대답에서 우리와 같은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걸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책 앞 표지를 넘기면 이전에 그걸 소유했던 가족의 가계도가 나왔다. 그들이 죽었거나 종교를 버려서 그게 경매의 매물로 나와 우리집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다른 집의 가족공용성경책이 우리 집에 있다니 야릇하던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는 다른 종류의 가종공용성경책이 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사회계층의 지표로서, 경매에서 구입한 중고책이었다. 다름 아닌 워드록출판사판 ‘비턴 여사의 살림 교본’이다. 두께가 10센티미터에 1997페이지나 되는 것으로 정말 살씬 돼지같은 책이다. 어머니는 아르누보 문양이 책등과 두꺼운 표지로 장정된 이 책에 적극적인 경의를 표하여 파블론 비닐로 쌌다. 나는 당시에 본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흑백이든 컬러이든 그 책에 수록된 많은 도판에는 큰 흥미를 느꼈다. 냅킨을 접는 기술에는 장장 17페이지에 걸쳐 삽화가 수록되어 있었다. 멧돼지 머리, 주교, 납작한 향주머니, 선인장, 슬리퍼 따위와 같은 모양으로 접는 기술이다. 이 모양들을 만들려면 세탁한 다음 가볍게 풀은 먹인 큼직하고 깨끗한 린넨이 있어야 한다. 내가 매일 둘둘 말아 플라스틱 냅킨 고리에 넣어 사용하는 흐늘흐늘하고 얼룩진 면 냅킨으로는 그런 모양을 만들려고 해보았자 헛수고일 게 뻔하다.
냅킨 한 종목만 가지고도 그 정도이다. 그 책의 나머지는 그처럼 기묘하면서 호사스러운 것들의 조합이ㅡ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 변두리 주민이었던 나는 의아했다. 어쩌면 어딘가 아직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정말 식기전용실이 따로 있는 집이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주책에 빠진 사람들이 꽃자루 같은 받침이 달린 진열용 자기 접시에 씨 없는 작은 과일들을 산처럼 수북히 쌓아농고, 소를 넣은 메추라기 요리를 루리타니아 왕의 왕관 같은 용기에 담아 내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컬러 도판이 가리키듯 세상에는 정말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수프가 있는걸까? 주류 목록은 또 어떻고, 삽화 하나에 술이 스물 여덟 병이나 꽉꽉 채워져 있고, 사토 라피트와 에뮤 부랜드의 부르고뉴 와인이 나란히 있다. 제목이 ‘부엌’ 1번 삽화와 같은 부엌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이 부엌의 구성 요소는 이렇다. 높은 웨일스 식 찬장, 거대한 테이블, 기차역 시계, 구석에서 뒷짐 지고 무시할 수 없는 자세로 서 있는 충실한 살찐 요리사, 이 모든 게 어떻게 우리의 생활에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인가?
별로 적용되지 않는다. ‘비턴 여사의 살림 교본’은 마치 사전처럼 가끔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권위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어머니는 곧잘 “비턴여사의 살림 교본에서 찾아보자”라고 했는데 레시피보다는 가사와 의약 정보(가령 ‘손상되지 않을 않는 동상 도포약’과 같은)를 참고하는 일이 더 많았다. 선반에 이 책을 두는 것은 벽에 빅토리아 여왕의 컬러 석판 초상화를 걸어두는 것이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얼굴이 그려진 머그잔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았다.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고 막연한 애국심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비키와 플로는 - 이렇게 부를 정도로 친근한 것 아니지만, 아무틈 - 20세기 문턱을 넘을 정도로 장수했다. 그러나 이사벨라 비턴은 1836년에 태어나 자식 넷과 요리책 한 권을 남기고 스물여덟에 요절했다. 코넌 도일은 결혼 생활을 탐구하는 소설 ‘특수한 합침 부분이 있는 이중창’에서 여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비턴 여사는 셋 kd에 제일 훌륭한 주부였던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그녀의 남편은 분명히 가장 행복하고 팔자 좋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이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턴 여사의 살림 교본’은 그녀가 죽은 뒤로 분량이 기념비적으로 불어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1915년 판은 1861년 판의 두 배 정도이다. 사후 비턴 여사는 하나의 구성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여신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데이비드가 지적했듯이 초기이 판본들에는 아내를 잃은 비턴 씨의 부고 문안이 실려 있다. 그러나 비통해 하는 홀아비에게서 저작권을 매입한 워드록출판사는 나중에 그 부분을 쑥 감추고 모드캡을 쓴 위엄있는 노부인이 어딘가에 살면서 - 아마 1915년에 이르러서도 - 그들을 지켜본다고 상상하도록 독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우리 집 부엌의 성경책을 물려받아 보는데 책갈피에서 소책자 하나가 나왔다. 여성단체에서 간행한 ‘부드러운 슬리퍼 만들기 안내서’로, 할머니의 물건이었다. 그 난도는, 예를 들어 헤스턴 불루먼솔의 레시피보다 높지 않아 보였다. 책의 본문도 다시 잘 들여다보았다. 옛날에 기묘하다고 느낀 것들은 여전히 기묘했다.가령 이런 것들이 있다. 휜눈썹뜸부기 구이 페시피, 뇌조 통조림 레시피(캔을 따서 뇌조를 꺼내어 굽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 요리라는 표제 아ㅐ 윌라비 구이(재료; 1, 윌라비, 다진 송아지 고기No.396. 우유, 버터)가 있는 걸 어렸을 때는 어째서 놓치고 못 봤는지 모르겠다. 유모가 될 사람이 젖을 검사할 때 유이할 점을 쓴 아주 좋은 글도 있다. 섹스에 모든 관심이 쏠리던 사춘기에 내가 어째서 그걸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식품 정보통들은 대체로 일라이자 액턴을 좋아하는 편이다. 비턴 여사는 그녀의 레시피를 많이 베껴 썼다. “영국인명사전”도 일라이자 액턴을 편애해서 1885년 초판부터 그녀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비턴 여사의 이름은 1993년에 비로소 변명하듯 간행된 ‘누락된 인물편’에 등재 되었다. 비턴 여사도 그렇지만 ‘비턴 여사의 살림 교본’의 명성도 좀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 크리스토퍼 드라이버가 그의 책 ‘식탁의 영국인(1983)’에 썼듯이 ‘비턴 여사의 책은 계속된 개정과 증보를 거쳐 점진적으로 그 가치가 떨어졌는데 이 때문에 188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영국 고유의 요리가 상대적으로 정체되고 개선되지 못했거나 반대로 그런 사실 때문에 책의 가치가 저하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비턴 여사의 책에 나오는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볼지도 잘 모르겠다. 조개관자를 60분이나 끓어라거나, 식초 1/4 파인트에 밑를 디저트 용 스푼으로 네 스푼 넣고 민트 소스를 만들라니, 그러면 현대인의 입맛에 안 맞아 질겁하지 않겠는가ㅣ. 그래도 비턴 여사와 그녀의 책은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배미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즉 백과사전이고, 철저히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진보적이고, 인도적이다.(육아 부분을 보라) 불도그 영국이라는 아버지와 달리 ‘비턴 여사의 살림 교본’은 문화적으로는 프랑스의 요리법이 식 생활 습관 앞에 적당히 굽실거린다. 그것은 당시로선 지나치게 호사스럽다기보다는 검소하면서도 버젓한 생활을 영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가장 작은 화폐 단위까지 쓰는 정확한 식재료 비용이 요리 시간 옆에 나한히 표시되어 있고, 그것으로 몇 인분이 나오는지도 알려준다.
이는 무엇보다도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생각하게 한다. 안정된 미래를 가정한 것이다. 확신과 기대, 시간표와 비용산출의 측면에서 ‘비턴 여사의 살림 교본’처럼 여행 안내서를 닮은 거소 없다. 부엌이라는 기차가 제시간에 운행하나 확인하고, 저녁이라는 목적지까지 가는 원활한 환승에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서 선택지의 목록이 길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매달 비용이 다른 네 가지 방법으로 8인 식단을 꾸리는 방법을 알 수 있다. 가령 4월 최상급의 저녁 요리(잎을 넣은 맑은 수프, 비둘기와 양 다리, 가리바리 크림과 속으 넣은 올리브)는 2파운드 2실링 6페니가 든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요리(보리 크림 수프, 송어 스튜, 저민 쇠고기, 건포도 푸딩과 인초비 물)이 1파운드 9실링 5페니로 해결된다. 이 5페니를 보라. 6페니로 반 올림 하지도 않았다. 비용 산출에 얼마나 자신만만했으면 그럴까. 다만 이 비용들은 1915년도 판에 있는 것들이다. 그 모든 확신과 낙관적 합리주의, 공손한 하인들과 멋진 냅킨은 아랑곳 없이. 이 책이 표방하는 세상은 1915년에는 이미 다 폭격에 날아가고 있었다.
(1915년은 치열한 1차 대전 중이었다.)